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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BC 587년 바빌로니아 제국의 침략으로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 유대인들은 이때부터 기원전 538년에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풀려날 때까지 약 50년 동안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 이 사건의 기간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해석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 기간동안 민족정신과 종교적인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전통이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시기에 안식일과 유대교 절기를 지켰고, 할례를 수행했으며,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바치는 일 대신에 기도를 드렸던 것을 보아 유대교 회당이 세워진 것도 이 시기로 추정된다.
개요
BC 587년 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 유대인들은 이후 5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BC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에 의해 풀려났다. 바빌론 유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민족정신과 종교적인 정체성을 버리지 않아, 이후 이들을 오늘날의 유대인의 기원이라고 보고 있다.
역사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된 후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 의해 BC 931년 성립된 유다 왕국은 BC 587년 시드기야 왕에 이르러 바빌로니아 제국이 침략하면서 멸망했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시드기야왕을 비롯한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이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고 한다. 바빌론 유수는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BC 538년에 공식적으로 끝났는데,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성서의 고레스 왕)은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했다.
다양한 이론
역사가들은 바빌론 유수와 관련한 다음의 사실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① 팔레스타인에서 몇 차례 폭동이 일어나자 그때마다 추방 조치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모든 유대인이 조국에서 강제로 추방된 것은 아니었다. ② 귀향이 허용된 후 돌아가고자 하는 유대인들은 수차례에 걸쳐 바빌로니아를 떠났고, 일부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에 계속 남아 있었으며, 이 결과 최초로 많은 공동체가 형성되어 디아스포라의 형태로 계속 살게 되었다는 사실 등이다(→ 디아스포라).
많은 학자들은 최초의 추방 시기를 BC 597년으로 추정하는데, 이 해가 여호야긴 왕이 폐위되어 그의 가족, 신하, 수천의 부하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간 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586년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가 예루살렘을 파괴했던 직후를 최초의 추방시기로 보는데, 만일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기간이 48년 동안이라고 할 수 있다. 유수 기간이 70년이었다는 전승(예레 29:10)을 받아들이는 학자들 중 일부는 이 기간을 BC 608~538년으로, 또다른 학자들은 BC 586~516년경(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해)으로 보고 있다.
의미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에서 심한 고통을 겪고 강력한 문화적 압력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민족정신과 종교적인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장로들이 유대인 공동체를 관리했고, 예언자 에제키엘은 언젠가 이루어질 귀향의 희망을 계속 일깨워주었다. 유대교 회당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도 이 시기로 추정되는데, 왜냐하면 바로 이 시기에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유대교 절기를 지켰고, 할례를 수행했으며, 성전에서는 그 이전에 했던 희생제물을 바치는 일 대신에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키루스 대왕을 은인이자 하느님의 종이라고 보는 견해가 히브리 성서 몇몇 구절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사야〉(45:1~3)에서는 실제 키루스 대왕을 하느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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