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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셔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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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셔스가 아랍 선원들에게 알려진 것은 10세기 또는 그 이전으로 보인다. 16세기초에 포르투갈인들이 찾아왔지만 정착하지는 않았으며, 그뒤 1598∼1710년에 네덜란드인이 점령하여 나소의 모리스 총독 이름을 따서 모리셔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1638∼58년, 1664∼1710년에 정착을 시도했다가 포기하고 떠났으며 해적이 섬을 차지했다.

1721년에는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모리셔스를 점령하여 프랑스 섬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그후 40년 동안 서서히 정착이 이루어졌다. 이 섬은 1767년에 프랑스 해군부가 행정을 맡게 될 때까지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다스렸다. 이 식민지는 설탕산업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중이던 19세기 초 영국과 인도 상선들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았다. 1810년 영국이 이 섬을 점령하고 1814년에 평화를 되찾자 파리 조약으로 정식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프랑스동인도회사(Compagnie Française des Indes Orientales)

프랑스 동인도회사의 문양

ⓒ Frank Schulenburg/wikipedia | Public Domain

관습·법규·언어는 프랑스식으로 남아 있지만 이름은 네덜란드가 붙였던 모리셔스로 바뀌었으며, 1835년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인도 노동자들이 노예를 대신했다. 모리셔스는 1850년대에 번영을 누렸으나 사탕무 생산경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한편 1866∼68년에는 말라리아가 돌아 포트루이스에 선박들이 접근하지 못했으며, 포트루이스는 1869년 수에즈 운하 건설 후 더욱 쇠퇴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 설탕값이 올라 경제가 활성화되었으나 1930년대 공황이 닥치면서 상황이 급변하여 1937년에는 노동분규가 절정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경제를 호전시키지 못해 1945년 이후 경제개혁을 시도했으며, 정치와 행정제도를 개편하여 마침내 모리셔스는 1968년 영연방 내에서 독립을 맞았다. 1979년말에 불어닥친 사이클론 '클로데트'와 1980년대초 세계 설탕값 폭락 등에 자극을 받아 정부는 수입을 줄이고 수출을 다양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농업다양화 정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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