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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그리스도가 두 본성, 즉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가졌다고 하는 칼케돈 공의회(451)의 결정을 받아들인 시리아와 이집트의 그리스도교인들.
Melkite라고도 씀.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한 본성만을 믿는 단성론자들이 동로마 제국 황제와 신학적 입장이 같은 그들을 조롱하여 왕당파 또는 황제의 신하들이라는 의미로 멜키트(시리아어로 '왕'을 뜻하는 'malka'에서 유래)라고 불렀다.
그 말은 본래 이집트 그리스도교인들만을 가리켰으나,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는 모든 중동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되다가 마침내 경멸하는 말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예루살렘 총대주교구와 특히 안티오키아 총대주교구의 신도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리스도 양성론).
멜키트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이집트와 시리아의 그리스 교민들과 아라비아화한 주민들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비잔티움 전례(典禮)를 채택했고 1054년 동서 교회 분열 때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미카엘 케룰라리우스를 따랐다. 그후 수세기 동안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는 로마 교회와 재결합을 시도했으며, 소수의 멜키트 가톨릭교도가 출현했다.
1724년 가톨릭교도인 키릴루스 6세가 여러 주교들과 신도 1/3의 지지를 받아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로 선출되면서 마침내 통합이 이루어졌다. 통합을 반대한 동방정교회측 멜키트 신자들은 독자적으로 실베스테르를 총대주교로 선출하고 그들에게 자치를 보장한 오스만 정부로부터 법적 승인을 얻었다. 가톨릭교측 멜키트 교회는 그로부터 약 100년 뒤 많은 박해와 예수회 및 레바논 마론파 교회들과의 종교적 갈등을 겪고 나서, 비로소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여 정상적인 활동과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알렉산드리아와 예루살렘 총대주교구에 가톨릭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소수 있었지만 현재 안티오키아·알렉산드리아·예루살렘 및 동방 전역을 통틀어 가톨릭 멜키트 총대주교는 한 사람뿐이다. 그는 각 총대주교구 안에 자신의 교구들(다마스쿠스·예루살렘·알렉산드리아)을 가지고 있으며 총대주교 대리자의 도움을 받는다. 대주교구는 알레포·홈스·라타키아(시리아), 베이루트·티레(레바논), 바스라(이라크), 페트라필라델피아(요르단) 등 7개가 있으며 아크레(이스라엘), 바알베크·바니야스·사이다·트리폴리스·잘레푸르졸(레바논)에 6개 주교구가 있다.
그들 고유의 아랍어로 비잔티움 전례를 준수하는 가톨릭 멜키트교도들은 25만 명에 달하며 브라질·아르헨티나·미국·캐나다 등 해외에 거주하는 신자들은 약 15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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