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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다른 표기 언어 Malaysia
요약 테이블
인구 34,678,525명 (2024년 추계)
수도 쿠알라룸푸르
면적 330,411㎢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Malaysia
기후 열대우림기후
민족 구성 말레이인(67%), 중국인(20%), 원주민
언어 말레이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 양원제
종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화폐 말레이시아 링깃 (RM) 환율계산기
국화 hibiscus rosa sinensis
대륙 동남아시아
국가번호 60
GDP USD 314,500,000,000 (2017)
전압 240V / 51Hz
도메인 .my

요약 아시아의 국가.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650km 떨어져 있는 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 두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인종 분포를 보이며 말레이인과 중국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이며 국교는 이슬람교이다. 화폐단위는 링깃이다. 정치체제는 양원제를 운영하는 입헌군주제로 국가원수는 국왕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말레이 반도의 남쪽 절반을 차지하는 서말레이시아는 길이 약 800km, 폭 325km이며 북쪽은 타이, 남쪽은 싱가포르, 서쪽은 말라카 해협, 동쪽은 남중국해를 경계로 한다. 보르네오 섬 북서부를 차지하는 동말레이시아는 길이 약 1,075km, 폭 384km로 사라와크 주와 사바 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서쪽은 남중국해, 동쪽은 셀레베스 해, 남쪽은 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 섬과 접한다. 사라와크 주의 영토 안에는 영국 보호령이던 이슬람 왕국 브루나이가 있다. 수도는 콸라룸푸르이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주요 항로 중 하나인 말라카 해협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인종 분포를 보인다. 말레이인과 중국인들이 가장 큰 인종집단을 형성하며, 두드러진 소수 종족으로는 여러 부족의 토착민들과 남아시아계가 있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이고 중국어와 오스트로네시아어·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가 사용된다. 국교는 이슬람교이고 불교, 그리스도교, 힌두교 및 몇몇 지역 종교들이 있다. 화폐단위는 링깃(ringgit)이다.

말레이 반도는 주로 산악 지형이다. 동말레이시아에는 해안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이 평야는 언덕 쪽으로 높아지다가 산악지형의 중심에 다다른다. 말레이시아는 대부분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다. 수목작물, 특히 고무와 야자유는 가장 중요한 환금작물이다. 쌀도 주요한 산물이다. 석유 채굴 및 생산과 주석 채굴은 제1의 외화 획득원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시멘트와 전자·고무·철강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 역시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체제는 양원제를 운영하는 입헌군주제이다. 국가원수는 국왕이고 정부수반은 총리이다.

말레이 반도에는 적어도 6,000년 동안 사람들이 계속 거주해왔다. 2~3세기경에 작은 말레이 왕국들이 있었으며 그때 인도의 모험가들이 이 지역에 들어왔다. 1400년경 수마트라 추방자들이 도시국가 말라카를 세웠다. 이 도시국가는 1511년 포르투갈인들에게 점령당하기 전까지 교역과 이슬람교의 중심지로 황금기를 맞았다. 1641년 네덜란드가 말라카를 점령했다. 1819년 영국은 싱가포르 섬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1867년 해협식민지(말라카, 싱가포르, 페낭 섬)의 지배권을 획득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중국인들이 말레이 반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941년에는 일본이 말라야를 침공하고 1942년에는 싱가포르를 점령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영국의 지배 정책에 대한 반대 움직임은 1946년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48년 페낭 섬이 말레이 반도에 합류했다. 말레야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말레야·싱가포르 및 영국의 이전 식민지들이면서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사라와크와 사바가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합류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경제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중·후반 지역적 경제 침체를 겪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회복되었다.

2018년 5월 총선에서 말레이시아 야권연합(PH)이 61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 간 말레이시아를 집권했던 마하티르 전 총리가 15년 만에 총리직으로 복귀했다.

말레이시아 국기

ⓒ PhotoRoman/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지도

자연환경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대륙 본토와 섬 지역 모두에 영토를 보유한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서말레이시아는 전체면적의 1/2이 해발고도 150m 이상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이다. 해발고도 2,000m 이상, 길이 500km인 메인 산맥을 비롯해 남북방향으로 뻗은 산맥이 여럿 있다. 중앙부의 산지와 접해 있는 해안 양쪽으로 저지대가 펼쳐지는데 서쪽은 사람들이 몰려사는 주거지인 데 비해 동쪽은 좁고 습한 삼림지대이다.

동말레이시아는 동쪽 16~32km, 서쪽 32~64km의 폭으로 펼쳐진 해안평야들과 구릉 및 계곡지대, 말레이시아 최고봉인 북동쪽 모서리의 키나발루 산(4,094m)을 비롯해 해발고도 1,200~2,000m 정도의 높은 산들이 있는 산지로 구성되어 있다. 서말레이시아에서는 파항 강(435km)이, 동말레이시아에서는 사라와크 주의 라장 강과 사바 주의 키나바탕간 강이 주요 강으로 손꼽힌다.

키나발루 산(Gunung Kinabalu)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 wikipedia | Public Domain

말레이시아는 11(12)~3월의 북동계절풍과 6~9(10)월의 남서계절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적도기후지대이다. 연평균 기온은 저지대에서 25~30℃이며 내륙 산악지방에서는 22~28℃를 오르내린다. 연평균강우량은 말레이 반도 2,500㎜, 사라와크 주 2,300㎜, 사바 주에서는 3,300㎜를 나타내는 등 아주 높은 편이다. 상대습도도 높아서 평균 80~85%이다.

무덥고 습한 기후로 열대식물들이 울창하게 자란다. 국토의 3/4가량을 차지하는 삼림은 대부분 상록우림으로 덮여 있으며 그밖에 대나무·녹나무·흑단·백단향·티크·야자수·홍수림 등도 분포한다. 코끼리·코뿔소·호랑이·표범·들소·말레이곰·멧돼지·오랑우탄·긴팔원숭이 등 동물상도 다양하다. 동말레이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개체수가 많고 다양한 조류군(群)이 서식하는 곳으로 코뿔새·앵무새·넓적부리새류·칼새·비둘기·딱따구리를 비롯한 수많은 종의 새가 발견된다. 수목작물, 특히 고무·팜유·코프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환금작물이다.

말레이시아의 동물들

왼쪽 상단 시계방향으로 말레이 호랑이, 코뿔새, 대모, 코 원숭이의 모습

ⓒ Muffin Wizard / wikipedia | CC의 BY-SA 3.0

말레이시아는 브라질과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주석 매장량이 많으며 석유와 천연 가스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국민

말레이시아의 인구 증가율은 2010년 이후로 점점 감소하였다. 2024년 기준 인구는 3,467만 명이며, 인구밀도는 약 105명/㎢이다. 총인구의 4/5가 서말레이시아에 거주한다. 이전의 높은 출생률은 특히 중국인과 인도인들 사이에서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으로서는 보건수준이 양호해 평균수명이 남자 70세, 여자 76세를 기록하고 있다. 총인구의 3/4 가량이 도시에 거주하며 지금도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계속되고 있다. 15세 미만의 인구가 전체의 1/4을 차지한다,

말레이 반도는 세계 주요 항로 중 하나인 말라카 해협과 맞닿은 탓에 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집합소가 되어 왔다. 그 영향으로 말레이시아는 다양한 인종분포를 보인다. 말레이인이 약 2/3를 차지한다. 대개가 이슬람교도들이며 언어는 국가 공용어인 말레이어(바하사 말레이시아어)라 불리는 오스트로네시아어이고 통용어는 영어이다. 말레이시아 전역에 137개의 생활 언어가 있으며, 그 중 41개가 말레이시아 반도에서 사용된다.

이밖에 중국 남동부에서 이주해온 중국인들이 3/10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인도인, 파키스탄인, 드라비다어와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스리랑카 출신의 타밀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인은 주로 불교·도교·유교 신자이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도 더러 있다. 인도인과 스리랑카인 대부분은 힌두교도들이고 파키스탄인들은 주로 이슬람교도들이며 인도에서 온 시크 민족언어집단은 시크교를 믿는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약 61%는 이슬람교, 20%는 불교, 9%는 그리스도교, 6%는 힌두교 1.3%는 유교, 나머지는 도교 및 다른 전통 중국 종교를 믿는다. 이슬람교도의 인구 비율은 1991년 59%였으나, 2000년 60%, 2010년 61%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서말레이시아의 주민들 가운데 자쿤족·세망족·세노이족을 비롯한 오랑아슬리 종족들은 전통종교를 고수하지만 일부는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동말레이시아의 인종분포는 서말레이시아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중국인이 주요 인종집단을 이루며, 오스트로네시아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의 부족집단과 약 25개의 종족집단이 살고 있다. 사라와크에는 한때 머리사냥 풍습을 갖고 있던 이반족(바다 다야크족)이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다. 사라와크의 구릉지대에는 비다유족(육지 다야크족)이 살고 북동쪽 해안에는 바잔족이 농사를 지으며 산다. 사바에서 가장 큰 토착종족은 카다잔족이다.

말레이시아의 종교 분포

말레이시아의 종교 분포 그래프

ⓒ Begoon / wikipedia | CC BY 3.0

경제

말레이시아는 전적으로 시장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는 나라로, 원자재 생산과 수출에 크게 의존하던 것이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1970년 부유한 소수집단(보통 중국인이나 인도인 상인)에 대항해 인종폭동이 일어난 후 정부는 말레이인을 비롯한 토착민족들의 빈곤을 줄이기 위해 새 경제정책을 고안했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1인당 GNP가 브루나이와 싱가포르에 이어 동남아시아에서 3번째로 높다.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5, 노동력의 1/4을 차지한다. 1955년 이후 토지개혁이 추진되었지만 농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거의 혜택이 없었다. 많은 수의 말레이인들이 영세농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 빈곤하게 산다. 말레이시아의 주산물인 쌀의 생산량은 국내 수요의 거의 전부를 충당한다. 주요환금작물로서 주로 소규모 농장에서 재배되는 고무는 전세계 생산량의 1/4을 차지한다. 야자유 생산량의 1/2은 개인적인 소자작농들이, 1/3은 소자작농 조직체인 연방토지개발공사가 담당하며 일본·타이완·한국·중국 등에 수출되는 통나무가 주요 외화획득원이다. 광범한 조림사업이 1981년에 시작되었다.

광업은 정부가 관장하는 석유 생산 및 수출과 정부가 개발에 참여하는 주석 생산 및 수출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석유와 주석은 말레이시아 제1의 외화획득원이다. 석유는 주로 일본·싱가포르·한국으로 수출되나 주석은 매장량이 고갈되어 생산에 위협을 받고 있다. 구리와 보크사이트도 많은 양을 채광·수출한다. 제조업은 GDP의 약 1/4을 담당하고 노동력의 1/5 이상을 고용한다. 국내 제조업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장려되어 중국을 비롯한 해외이주민들이 대부분의 제조업을 관장한다. 중요한 제품으로는 고무제품과 시멘트, 철강제품, 라디오와 텔레비전 세트 등을 들 수 있다. 전기는 대부분 국내 연료로 발전되고 국가가 주로 관리하는데 1994년에는 발전량이 399억kWh에 이르렀다.

말레이시아의 도로 중 2/3 가량이 포장되어 있다. 서말레시아에는 몇몇 간선도로가 있지만 사바와 사라와크의 도로 사정은 열악하다. 서말레이시아의 철도망은 잘 발달된 반면 사라와크에는 철도가 없고 사바에는 화물과 승객 수송용 단거리 철도망이 있을 뿐이다. 동말레이시아에서는 내륙수로가 여전히 주요 역할을 담당한다. 쿠알라 룸푸르에는 국영 말레이시아 항공사를 비롯해 많은 국제 항공사들이 취항하고 있으며, 전국에 걸쳐 5개의 지방공항과 그보다 작은 공항들이 있다.

남북 고속도로(North–South Expressway)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

ⓒ mailer_diablo / wikipedia | CC의 BY-SA 3.0

1949년에 창설된 말레이시아 노동조합협회가 국내의 모든 조합을 총괄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주요 무역대상국은 일본·싱가포르·미국·영국·독일이다.

정치와 사회

페르 다나 푸트 라(Perdana Putra)

말레이시아의 연방 정부 관리센터

ⓒ JaseMan / wikipedia | CC BY 2.0

입헌군주를 명목상 최고통치자로 하는 연방제국가이다. 연방정부는 외무·국방·치안·사법(이슬람법과 현지법이 지배적인 곳은 제외)·연방시민권·재정·상업·산업·통신·교통을 주관하며 주(州)정부는 이민·행정사무·관세 문제들을 관할한다. 9개 주는 주행정위원회의 자문에 따라 세습 통치자가 다스리고 나머지 4개 주는 연방이 위임한 수장이 통치한다. 연방정부의 명목상 수장인 국왕은 9개 주의 세습통치자 술탄들로 구성된 통치자협의회가 5년 임기로 선출한다. 그러나 1957년에 제정된 말레이시아 헌법에 따라 실질적인 정치권력은 상원(데완 네가라)과 하원(데완 라키아트)으로 구성된 의회가 행사한다.

상원은 총 7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44명은 총리의 제안에 따라 최고통치자인 국왕이 임명하고 나머지 26명은 각 주의 입법부에서 선출된다. 현재 국회는 222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에서 최대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당수가 총리가 되고 내각을 구성한다. 내각의 각료들은 총리의 추천을 거쳐 국가최고원수인 국왕이 임명한다. 2018년 5월 총선 이전까지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민족집단을 대표하는 정당 연합인 국민전선(BN)이 정권을 잡고 있었으나, 총선 이후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가 집권하게 되었다.

나집 라작(Najib Razak)

말레이시아의 총리

ⓒ Jonas Steinhöfel / wikipedia | CC의 BY-SA 3.0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취업자들은 산업재해·노령·불구의 경우 수당을 받게 되어 있다. 일반적인 보건수준이 다른 개발도상국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정부 주도의 공공의료체계와 민간 주도의 의료체계가 갖추어져 있으며, 각 주의 주도들에는 모두 600~7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보유하고 종합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6~15세의 어린이들에게는 비강제적인 무상교육이 실시된다. 취학연령의 어린이들 가운데 90% 이상이 6년제 초등학교에 다닌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차례로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종합대학교들 가운데 하나로 진학한다. 말레이시아 출판계는 민간소유로 운영되지만 국가의 안전이나 질서 또는 도덕성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는 것은 출판금지법에 따라 규제를 받는다.

문화예술

여러 민족과 다양한 문화를 지닌 말레이시아는 중국·인도·서양에서 들어온 문화뿐만 아니라 말레이 제도에서 유래된 여러 전통이 한데 융합된 곳이다.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 섬 문화가 이 지역의 토착문화이다.

말레이시아

전통 도기, 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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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어로 된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으로는 〈세자라멜라유 Sejarah Melayu〉(1535경)를 들 수 있는데, 중세의 도시국가인 말라카(지금의 멜라카 시)에 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축제나 결혼식에서 낭송하거나 노래로 부르는 4행시인 〈판투니스 pantunis〉도 전해진다.

중국의 전통적인 연극장면들을 볼 수 있는 콸라룸푸르의 국립박물관, 중국의 도자기·가구·의상들이 전시된 말라카 박물관, 보르네오 섬의 민속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사라와크 박물관 등에서 말레이시아 문화가 지닌 다양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역사

말라카(Melaka)

말레이시아의 항구 도시

ⓒ wikimedia commons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말레이 반도에는 적어도 6,000~8,000년 동안 사람들이 계속 거주해왔고 BC 2500~1500년경에 신석기 문화가 확립되었다. 2, 3세기경에 소(小)말레이왕국들이 있었으며, 그때 인도의 모험가들이 이곳에 당도했고 이후 1,000년 이상에 걸쳐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1400년경 수마트라 추방자들이 말라카(1400경)를 세우고 중국의 보호를 받았다.

도시국가 말라카는 상업과 이슬람교의 중심지로서 황금기를 맞았으나 1511년 포르투갈에게 점령당했다. 1641년 네덜란드인들에게 점령되면서 항구도시 말라카는 중요한 무역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잃고 말았다. 17세기말 미낭카바우족이 수마트라 섬에서 말레이 반도로 이주하면서 모계사회의 문화를 가져왔고 18세기에는 셀레베스 섬의 부기족이 말라야(지금의 서말레이시아)를 침략하여 셀랑고르와 조호르라는 술탄국을 세웠다. 1819년 영국은 싱가포르 섬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1867년 해협식민지(말라카, 싱가포르, 페낭 섬)의 지배권을 획득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중국인들이 말레이 반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896년 말레이 반도의 여러 주들이 영국 고문관들을 받아들이면서 페라크·셀랑고르·네그리셈빌란·파항으로 이루어진 연방주가 성립되었다. 1890년대부터 영국은 말라야에 투자를 늘려 수송기관과 고무농장을 발전시켰다. 1941년에는 일본이 말라야를 침공하고 1942년 싱가포르를 점령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말라야를 단일국가로 개편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 영향으로 말레이인들 사이에 민족주의가 대두해 식민상태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1946년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 결성되었다. 1948년 페낭 섬이 말레이 반도에 복속되었고 같은 해에 말레이시아 공산당(MCP)이 성립되었다. 1955년에는 말레이시아중국인협회(MCA)와 UMNO이 반공산주의·반식민주의 노선을 함께 취하고 손을 잡으면서 총 52개의 국회의석 중 51개를 차지했다. 결국 영국인들이 지배권을 포기함에 따라 1957년 말레이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 대영제국)

말레이 반도(Malay Peninsula)

말레이 반도, 수마트라의 동부 해안의 역사를 나타낸 지도

ⓒ Gunawan Kartapranata / wikipedia | CC의 BY-SA 3.0

1960년대에 연방 내의 회원가입 상황이 여러 번 바뀌다가, 1963년 말레이시아가 세워지면서 마침내 현재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정치적인 소요가 계속되었으나 1970년대초부터 안정을 되찾았고 경제적으로도 번영하기 시작했다. 1973년 연립여당인 국민전선(BN, Barisan Nasional)은 범말레이 이슬람당을 포섭함으로써 그 세력을 넓혔다. 1970년대 중반에는 MCP가 체제를 동요시키기 위해 주도한 테러 행위가 시작되었다. 1970년대말 베트남 난민들이 몰려들어오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그들의 입국을 막는 정책을 채택했다.

1981년 비특권계급 출신의 마하티르 빈 무하메드가 총리로 선출되었지만 그의 독단적인 스타일과 말썽많은 정책으로 인해 UMNO는 1987년 해산되는 위기를 겪었다. 1988년 그는 반대파를 누르고 UMNO를 해체, 신(新) UMNO를 만들었다. 마하티르의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는 대대적인 경제 발전과 현대화 정책을 추구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며, 1990년대에는 푸트라자야를 행정 수도로 개편해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인구 과밀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독재정치를 펼쳤기 때문에 비말레이인과 재야인사들의 반발을 샀다.

무하메드 총리 이후 2000년대에는 2003년부터 2009년까지 UMNO의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BN의 나집 라작이 총리로 재임했다. 2016년 3월 나집 라작 총리의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전임 총리였던 마하티르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동안 몸담았던 BN을 탈퇴하고, 정계에 복귀해 2017년 7월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의 의장으로 선임되었고, 9월에는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PPBM)을 창당해 PH에 합류했다. 마침내 2018년 5월 9일 치러진 총선에서 PH가 승리하면서 61년 만에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말레이시아와 한국과의 관계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국기

ⓒ argus/Shutterstock.com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외교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 한국과는 1960년 2월에, 북한과는 1973년 6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상주대사관을 설치했다. 대외적으로는 비동맹중립노선을 표방하며 남북한 등거리외교정책을 펴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철저한 반공정책을 펴고 있어 한국과 경제·언론·체육·문화·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국에서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을 시작으로 2005년 노무현 대통령, 2010년 이명박 대통령,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2001년 살라후딘 11대 국왕, 2011년 미잔 국왕이 한국을 방문해 회담을 가졌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국의 해외건설시장으로 1971년부터 진출하기 시작한 한국 건설업체를 비롯해 은행·상사·지사 등 37개 업체가 진출해 있다. 2016년 한국은 말레이시아와의 교역 중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선박, 집적회로반도체, 경유, 합성고무, 평판디스플레이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천연가스, 집적회로반도체, 중유, 개별소자반도체, 컴퓨터부품 등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말레이시아 수출액은 94억 777만 달러이며, 대말레이시아 수입액은 124억 7,099만 달러이다.

말레이시아는 ASEAN 10개국에 소속돼 있으며 아세안의 일원으로서 한국과 다자간 FTA를 체결했다. 이 밖에 무역협정(1962), 문화협정(1965), 항공협정(1967, 1973 개정), 이중과제방지협정(1983), 비자면제협정(1983), 과학기술협력협정(1985), 투자보장협정(1988), 해운협정(1988) 등이 체결돼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말레이시아와 한국은 어학연수 등의 교육 면에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2023년 기준 말레이시아에는 13,152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한국에는 3,683명의 말레이시아 국적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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