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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데

다른 표기 언어 Matilde di Canossa 동의어 Matilde La Gran Contessa
요약 테이블
출생 1046, 토스카나 루카
사망 1115. 7. 24, 로마냐 본데노
국적 이탈리아

요약 토스카나의 여백.
(영). Matilda of Canossa. 별칭은 Matilde La Gran Contessa.

교황과 신성 로마 황제 사이의 싸움에서 그녀가 맡았던 역할로 유명하다. 이 싸움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대면이 바로 마틸데의 카노사 성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052년 아버지인 카노사의 보니파치오가 암살당하고 오빠와 언니도 죽어 그녀는 할아버지 아토 아달베르토가 세운 아토니 가문의 넓은 영지를 홀로 상속받게 되었다. 2년 뒤 마틸데의 어머니 베아트리체는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3세와 적대관계에 있던 상로렌 공작 고드프루아와 결혼했다. 1055년 어머니와 함께 황제에게 인질로 잡혀 독일로 갔으나 이듬해 황제가 고드프루아와 화해해 풀려났고 겨우 몇 달 뒤 황제는 죽었다.

고드프루아가 1069년에 죽은 뒤 마틸데는 그의 아들인 고드프루아(Godfrey the Hunchback)와 결혼해 로렌에서 살았다. 그들의 아이가 어린 나이로 죽은 뒤에는 이탈리아로 돌아가 어머니 베아트리체가 1076년 죽을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토스카나를 다스렸다. 마틸데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독일 황제들을 지지하다가 이탈리아를 분열시킨 당파싸움 때 교황(구엘프) 쪽으로 돌아선 적이 있었는데, 마틸데는 아버지를 따라 여전히 교황들에게 충성했다. 그녀는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가까운 친구가 되어 황제 하인리히 4세와 맞서는 그를 크게 지원했다.

1077년 1월 황제가 맨발로 교황을 찾아와 참회를 함으로써 교황의 위신을 꼭대기까지 올려놓은 사건도 바로 카노사에 있는 그녀의 성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1080년 황제가 파문을 당한 뒤에는 마틸데가 때로 몸소 갑옷을 입고 군대를 이끌기까지 하면서 1106년 황제가 죽을 때까지 종종 황제와 전쟁을 벌였다. 1082년에는 유명한 카노사의 보물 가운데 일부를 로마로 보내 교황의 군대를 위해 비용을 대기도 했다.

1089년 43세 때 마틸데는 바이에른·카린티아의 공작이자 에스테 가문 사람인 17세 소년 벨프 5세와 결혼했다. 그들은 6년 뒤에 갈라섰고 결국 불화가 생겼는데, 여기서 하인리히 4세는 에스테 가문 편을 들었다. 마틸데는 하인리히의 아들인 콘라트를 꾀어 1093년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반란을 일으켜 이탈리아 왕위를 차지하도록 부추겼다. 그녀는 마침내 1110년 하인리히 4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하인리히 5세와 평화조약을 맺었다. 그녀는 이 조약의 대가로 자신의 재산 중 봉건관계에 묶여 있지 않은 부분을 그에게 유증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재산은 그녀가 이미 교황청에 기증한 것이었으므로 뒷날 이 때문에 교황과 황제 사이에 논란이 생겨났다.

그녀는 만토바 근처에 묻혔으나 후대의 교황들은 그녀를 매우 존중했고 마침내 1634년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그녀의 유해를 로마로 옮겨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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