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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539경, 카파도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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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602, 콘스탄티노플 |
국적 | 비잔틴 |
요약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영). Maurice.
분열된 후기 로마 제국을 새롭게 잘 정비해 중세 비잔티움 제국이 태동하는 바탕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했다.
처음에 공증인으로 행정부에 들어갔으나 578년 동방 제국의 군대 지휘관이 되었다. 페르시아인들과 싸워 거둔 공훈으로 황제 티베리우스 2세의 눈에 들어 그의 후계자로 뽑혔다. 582년 8월 5일 황제가 되어 티베리우스의 딸 콘스탄티나와 약혼했으며, 티베리우스가 죽은 다음 날인 8월 13일 즉위식을 올렸다.
페르시아와 싸워 호스로우 2세가 페르시아 왕위에 오르도록 도운 뒤 만족스러운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동방에 평화가 회복되자 북방으로 관심을 돌려 제국 내에 영구 정착지를 세우고 있던 슬라브족과 아바르족 유목민들을 공격했다. 이 싸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602년 아바르족을 제국 편이 되도록 했다.
서방에서는 전쟁으로 피폐한 이탈리아에 새로운 종류의 민간 행정기구를 세우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민간기구만으로는 이탈리아에 남아 있는 비잔티움 영토를 롬바르드족으로부터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로마와 라벤나에 총독을 임명했다. 이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도 총독령을 만들어 베르베르족의 공격을 막아내는 기지로 삼았다(→ 카르타고 총독령). 이 두 총독령(exarchate)의 민간행정기구는 군장교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뒤 비잔티움 제국에서 운영한 테마(군관구)의 토대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테마).
페르시아·슬라브·아바르·롬바르디아와 벌인 전투로 제국의 재정이 고갈되어 마우리우스는 과중한 세금징수가 불가피했다. 이때문에 군대 안에 불만이 커져가다가 그가 도나우 강 너머에 겨울병영을 짓도록 일부 부대에 명령을 내리자 반란이 일어났다. 하급장교 포카스의 지휘를 받는 반란군이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해오자 시민들도 여기에 동조해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마우리키우스는 폐위되었으며 포카스가 제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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