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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스라투르 전투와 그라블로트 전투

다른 표기 언어 Battles of Mars-la-Tour and Gravelotte

요약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때 일어났던 2번의 큰 전투(1870. 8. 16~18).

라인 지방에 있던 아실 프랑수아 바젠 원수 휘하의 프랑스군 13만 명은 독일의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이 거느린 2개 부대를 돌파하지 못하고 메츠 요새에 갇혔다. 마크 마옹 백작이 바젠군을 구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스당에서 참패했다. 프랑스군은 전부터 수세에 몰려 있었는데 8월 첫주 독일군에게 계속 패하자 프랑스군 사령부는 크게 당황한 상태에 있었다.

라인 주둔군이 메츠에서 베르됭으로 후퇴함에 따라 8월 12일 바젠이 라인군 지휘권을 맡았다. 그러나 8월 16일 마르스라투르 동쪽에 있는 비옹빌 근처에서 독일 장군 콘스탄틴 폰 알펜슬레벤이 이끄는 제3군단 3만 명에게 차단당했다. 알펜슬레벤은 바젠 장군의 1/4밖에 안 되는 병력으로 비옹빌을 점령하여 프랑스군의 서쪽 퇴각로를 막았다. 이후 벌어진 마르스라투르 전투는 서유럽 최후의 대규모 기마전투였으며, 양쪽 사상자 수는 각각 1만 6,000명 가량이었다.

17일 바젠은 메츠 서쪽에서 몇 ㎞ 떨어진 성곽 마을 생프리바라몽타뉴와 그라블로트 사이 남북으로 가로 놓인 언덕까지 군대를 철수시켰다. 프랑스군은 퇴각로인 서쪽을 바라보고 포진하게 되었다. 18일 아침까지도 독일군은 마르스라투르에서 메츠로 가는 길과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자기들의 오른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프랑스군의 배치상태를 알게 된 몇몇 독일 부대는 프랑스 전선과 정면대치하기 위해 방향을 동쪽으로 90° 전환했다. 몰트케는 전술상 우세한 프랑스 전열을 향해 자기 부대를 정면배치해야 했다. 그러나 바젠의 작전은 안전제일주의였기 때문에 몰트케는 처음에는 무승부가 될 것 같던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생프리바 주변에 있던 프랑스 북쪽 전열은 매복하고 있던 독일군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큰 타격을 주고 밤에 메츠로 후퇴했다. 깊은 계곡과 미리 준비해둔 참호 뒤에 포진해 있던 프랑스 남쪽 전열은 공격해오는 독일군을 크게 쳐부수었다. 그런데도 바젠이 베르됭으로 가는 길을 뚫기 위해 반격을 하지 않고 밤에 메츠로 철수하자 몰트케는 크게 놀랐다.

그라블로트 전투에서 프랑스군 쪽의 사상자는 모두 1만 3,000명인 데 비해 독일군은 2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함정에 빠뜨리는 데 성공했다. 몰트케는 일부 병력을 이용하여 바젠의 군대를 메츠에 가두어두고 나머지 병력으로 9월 1일 스당에서 마크 마옹을 격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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