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900. 4. 26, 미국 오하이오 해밀턴 근처 |
---|---|
사망 | 1985. 9. 30,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물리학자·지진학자. 지진의 규모를 측정하는 리히터 척도 개발에 공헌한 물리학자. 독일 이민의 후손으로 태어나 카네기 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지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1935년 발표한 리히터 척도는 기존, 지진 피해 정도를 기준으로 만들어 사용되던 메르칼리 척도를 보완하여 진원 기준의 지진 규모를 측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이후 널리 사용되었다.
개요
지진의 규모를 측정하는 리히터 척도 개발에 공헌한 물리학자. 1928년 베노 구텐베르크와 협동으로 연구에 착수하여 1935년에 리히터 척도를 개발했다. 그전까지 사용되던 메르칼리 척도가 지진관측소에서 관찰한 지진의 피해 정도를 갖고 관측한 상대값인데 비해, 그의 이름을 딴 리히터 척도는 진원의 지진 규모를 측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초기 생애
찰스 프랜시스 리히터는 미국 오하이오 주 오버펙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릴리안 안나 리히터(Lillian Anna Richter)는 180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민온 독일인의 후손으로, 남편 프레드릭 윌리엄 킨싱어(Frederick William Kinsinger)와의 사이에서 딸과 아들을 낳았는데, 찰스 리히터가 아주 어렸을 때 남편과 이혼했다. 리히터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았다. 그의 가족은 1909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서 외할아버지 칼 오토 리히터(Karl Oto Richter)와 함께 살았다.
리히터 척도 개발
그는 남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1916~17), 1920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칼텍(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1928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7년부터 리히터는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 있는 워싱턴의 카네기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었는데 이때 지진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베노 구텐베르크의 지원 아래 패서디나에 세워진 지진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1935년 구텐베르크와 함께 진원에서의 지진 규모를 측정하는 표준 척도인 리히터 척도를 개발했다.
지진 피해 예방에 공헌
그는 1937년 칼텍으로 돌아와 에서 물리학과 지진학을 강의했으며, 1952년에 전임 교수가 되었고, 1959~1960년에는 일본을 방문하여 지진 연구와 이를 활용한 지진 공학에 참여했다. 그는 미국에서 지진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도면으로 만들어 대비하도록 했는데, 1960년대 들어 로스앤젤레스 시에서는 리히터의 지진 이론에 따라, 지진이 발생했을 때 떨어져서 인명을 해칠 우려가 있는 건물 부착물과 지붕 장식물을 제거하기도 했다. 리히터는 적극적인 자연주의자로 살아서 부인과 함께 자연 탐방을 즐겼으며, 1985년 9월 30일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서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저서
저서로는 〈지구의 지진활동도와 그에 따른 현상(Seismicity of the Earth and Associated Phenomena)〉(베노 구텐베르크와 공저, 1949, 개정판 1954)·〈기초지진학(Elementary Seismology)〉(1958), <횡렬 지진의 숨겨진 구조(Transversely Aligned Seismicity and Concealed Structure)>(1969), <지진과 핵 폭발(Earthquakes and Nuclear Detonations)>(1970), <지진의 빛(Earthquake Light in Focus)>(1976)이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과학자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