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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대 로마에서 군대가 비우호적인 지역으로 진격할 때 이용하던 탁 트인 길.
복수형은 limites.
따라서 이 단어는 감시탑과 요새로 방비를 강화한 로마의 군용도로를 뜻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국경(자연적·인공적 국경을 모두 포함)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탑과 요새는 대개 리메스를 따라 집중 설치되었고 감시탑이나 요새 사이의 도로는 일련의 방벽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일련의 방벽인 리메스는 영국과 독일 서부에서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로마 제국은 9년부터 라인 강과 도나우 강을 자연적인 국경으로 채택했으나 1세기말에는 독일의 슈바르츠발트 지역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와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138~161) 때는 라인강과 도나우 강 사이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전체 길이가 480㎞를 넘는 약 2.7m 높이의 기다란 방벽이 세워졌다.
이 울타리는 원래 나무로 되어 있었으나 나중에는 돌과 흙으로 만든 튼튼한 성벽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260년경 알레마니족(게르만 부족연합)이 리메스를 돌파해 로마 국경은 또다시 라인 강과 도나우 강까지 후퇴했다. 영국에는 타인 강과 솔웨이 강을 잇는 하드리아누스 성벽이 있었고 더 북쪽에는 포스 강과 클라이드 강을 잇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이탄(泥炭) 성벽이 있었다(→ 브리튼).
요새화한 성벽 구실을 하는 리메스는 2세기 동안 다른 국경에도 널리 퍼져 지리조건과 군사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 루마니아의 도브루자 지역에는 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 시대에 만든 리메스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동쪽과 서쪽에 늘어서 있는 요새들은 방벽으로 이어져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아나톨리아 지역에서는 길게 이어진 장벽을 쌓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았고 또한 쌓을 필요도 없었다. 로마인들은 이 지역의 도로와 강의 도하 지점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원주민과 대상들의 통로를 장악하고 파르티아와 사산 왕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정교한 리메스를 세웠다. 이 성벽의 주요부분은 7세기 아랍인에게 점령당할 때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유목민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도로·요새·감시탑으로 방어체제를 만들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무 울타리와 도랑을 만들고 돌과 흙으로 된 성벽을 쌓아 방어체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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