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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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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7∼50년의 로마 정복 시기에 벨기에 종족인 트레베리족이 거주했다. AD 400년 이후 게르만족이 이 지방에 침입하여, 이곳은 프랑크족의 아우스트라시아 왕국과 나중에는 샤를마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843년 이 지역은 3부분으로 분할되었고, 963년에는 아르덴 백작 지그프리트 밑에서 독립체가 되었다. 지그프리트의 후손인 콘라트가 1060년 룩셈부르크의 백작 칭호를 얻었고, 그의 후계자들은 결혼을 통해 소유령을 확대했다.

룩셈부르크 백작인 하인리히 4세는 1312년 하인리히 7세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후 보헤미아를 덧붙인 세습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1440년대에 이 지역은 부르고뉴가에 넘어갔다. 16세기초에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고, 16세기 후반에는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일부가 되었다.

하인리히 4세(Heinrich IV)

룩셈부르크 백작, 신성 로마 황제. 퇴위식 모습을 표현한 그림.

ⓒ Michail / wikipedia | Public Domain

1701∼14년의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 뒤이어 스페인령으로부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지배 밑으로 들어갔다. 빈 회의(1815) 결과 이곳은 네덜란드 빌렘 1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830년 벨기에인들이 빌렘 1세의 지배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룩셈부르크의 대부분이 합세했다. 이 반란 이후 룩셈부르크는 벨기에와 네덜란드에게 각각 분할되었다. 네덜란드에 속했던 부분은 1867년까지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는 대공국이 되었다.

1867년 후 유럽 강대국들에 의해 룩셈부르크의 중립이 보장되었고, 그 공국은 나사우가로 넘어갔다. 1890년 대공국은 나사우-바일부르크의 아돌프 공에게 넘어갔는데, 그의 아들 빌헬름이 그를 계승했다(1905). 이곳은 1914년 독일에 점령되었다. 1919년 공국의 해방후 빌헬름의 맏딸은 자매인 샤를로트(1919∼64)를 위하여 공의 지위를 포기했다.

1921년 벨기에와 경제동맹을 맺었고, 국제연맹에 가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공국은 다시 독일군에 점령되었고, 대공 가족은 영국으로 도피했다. 1944년 해방된 후 중립노선을 포기하여, 1949년 NATO에 가입하고 나서 유럽경제공동체(EEC)에도 참여했다. 1964년 장 대공은 그의 어머니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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