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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187. 9. 5, 프랑스 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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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226. 11. 8, 오베르뉴 몽팡시에 |
국적 | 프랑스 |
요약
카페 왕조 출신 프랑스의 왕(1223~26 재위).
별칭은 사자왕 루이(Louis le Lion), 사자심왕(獅子心王) 루이(Louis Coeur-de-Lion).
짧은 통치 기간 동안 푸아투와 랑그도크에서 왕권을 확립했다. 1200년 5월 23일 카스티야 왕 알폰소 8세의 딸 블랑슈와 결혼했는데 루이가 죽은 뒤 알폰소 8세는 섭정을 맡아 프랑스를 다스렸다. 1212년에는 생토메르와 에르를 손에 넣어, 왕의 세력 아래 있던 아르투아 백작령을 당시 강대한 세력을 갖고 있던 플랑드르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했다.
잉글랜드 왕 존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 귀족들이 원조를 요청하고 대가로 잉글랜드 왕위를 루이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하자 1216년 잉글랜드로 원정을 갔다. 처음에는 승리를 거뒀으나 해전(海戰)에서 지고 귀족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1217년 킹스턴에서 평화조약을 맺었는데 이때 잉글랜드 귀족들은 그에게 1만 마르크를 몰래 지불했다. 즉위한 뒤 1224년에는 푸아투를 손에 넣었고 1226년에는 알비파(Albigenses:프랑스 남부 알비 지방에서 12~13세기에 일어난 이단파)에 대항해 성전(聖戰)을 벌였는데 아비뇽에 있는 주요 요새를 장악해 승리를 거뒀으나 병에 걸려 파리로 돌아왔다. 카페 왕조 출신의 왕 가운데에서는 처음으로 많은 왕자령(appanage)을 하사했으며 국왕재산 양도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자신의 재산관리를 강화했다(→ 알비 십자군). 그는 또한 충성의 맹세는 왕 개인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왕권 자체에 대해 해야 한다는 주장 등을 내세워 왕권강화를 이루었다. 그의 큰아들 루이 9세는 평화적으로 왕이 되었고 다른 아들들은 왕자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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