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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중국 북동부 랴오닝 성, 타이쯔 강 유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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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885,000명 (2022년 추계) |
면적 | 4,743㎢ |
언어 | 중국어 |
대륙 | 아시아 |
국가 | 중국 |
요약 중국 랴오닝 성 중심부에 있는 도시. 지구급의 시이며 선양에서 남서쪽으로 약 50㎞, 거대한 공업도시인 안산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타이쯔 강 유역에 있다. 한족이 만주에서 제일 처음 정착한 곳이고, 4~5세기에는 계속해서 전연·후연·남연·북연의 영토가 되었다. 640년대에는 당의 영토가 되어 한반도 침략을 위한 기지로 이용되었다. 10세기초에는 거란족이 이곳을 점령해 그들이 세운 요나라에 편입시켰으며, 919년 요의 태조는 랴오양 고성을 재건해 한족과 발해 유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13세기초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으나 1215~16년 몽골족에 의해 진압되었다.
지구급(地區級)의 시이며 선양[藩陽:무크덴]에서 남서쪽으로 약 50㎞, 거대한 공업도시인 안산[鞍山]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타이쯔 강[太子河] 유역에 있다.
랴오양은 한족(漢族)이 만주에서 제일 처음 정착한 곳이다. 한(漢:BC 206~AD 220)은 BC 2세기에 요동군(遼東郡)을 설치하고 현 랴오양 시의 북서쪽에 평양현(平襄縣)을 세워 군청소재지로 삼았다.
4~5세기에는 계속해서 전연(前燕)·후연(後燕)·남연·북연의 영토가 되었고, 640년대에는 당(唐)의 영토가 되어 한반도 침략을 위한 기지로 이용되었다. 756년 남만주에 대한 중국 본토의 통치가 끝나자 랴오양은 8~9세기에 흥성했던 발해국(渤海國)의 남쪽 국경지역이 되었다.
10세기초에는 거란족이 이곳을 점령해 그들이 세운 요나라에 편입시켰으며, 919년 요의 태조(太祖)는 랴오양 고성을 재건해 한족과 발해 유민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928년에 동쪽 수도[東京]로 지정되었고, 그 뒤를 이은 금나라(12, 13세기초)에서도 계속 그 지위를 고수했다.
13세기초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으나 1215~16년 몽골족에 의해 진압되었다. 1269~1367년 랴오양은 요양로(遼陽路)의 주도였지만, 몽골족에 의해 대단히 많은 인구가 격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 초기에는 동쪽 변경지역의 매우 중요한 방어기지가 되었다.
1368~72년에 성곽을 쌓은 이 도시는 요새·주둔지의 중심지였으나 16세기말에 만주족이 일어나자 랴오양은 방어기지로 부적절함이 입증되었고, 1621년에 만주족의 우두머리인 누르하치의 군대가 이곳을 정복했다. 누르하치는 이 도시를 수도로 삼은 뒤,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거대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했고 1625년 궁궐을 선양으로 옮겼다. 버려진 새 수도는 폐허가 되었다. 이후 곧바로 랴오양은 부가 되었고 계속해서 행정중심지로 남게 되었다.
랴오양은 그 전략적 위치 때문에 러일전쟁(1904~05) 때 격렬한 전투가 여러 차례 치러진 곳이다. 중화민국이 수립되면서(1911) 현청소재지로 격하되었으나 계속해서 인구가 조밀하고 생산량이 많은 농업지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쌀·곡식·콩·면직물 및 멧누에 명주로 짠 비단과 다양한 채소와 식품을 생산한다. 양조·면직·착유 등 농업관련산업도 성장했다.
1930년대부터 근방에 있는 안산이 중국의 주요 공업기지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랴오양의 경제는 안산의 수요에 크게 종속되었다. 안산에서 소비하는 식품의 대부분을 랴오양에서 공급한다. 또 대규모 면방적·기계·시멘트 공장을 발전시켰다. 철도로 선양·안산·뤼다[旅大]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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