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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1. 2. 13, 오스트리아 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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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76. 8. 30, 미국 뉴욕 시 |
국적 | 오스트리아/미국 |
요약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사회학자.
창의력과 독창적인 방법론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사회학의 학문적인 지위를 확립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가 빈대학교를 다닐 무렵은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임상 강의를 하고 대학 내에 부흘러 심리학연구소가 세워져서 지적인 열기가 가득하던 때였다.
1925년 응용수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오스트리아의 한 단기대학에서 응용수학을 가르치다가 빈에 응용사회연구소를 세우고(1929) 경험적 연구에 바탕을 둔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빈대학교 응용심리학 강사로 있을 때(1929~33) 사회학의 활용에 흥미를 느끼고 자극을 받은 뒤부터 여생을 사회학 연구에 헌신하여 〈응용사회학 개론 An Introduction to Applied Sociology〉(1975)이라는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1933~37년 록펠러 재단 연구 보조비를 받아 미국에서 심리학 연구를 했으며 나중에 시민권을 얻었다. 그는 미국 사회과학계에서 가장 큰 연구 성과를 거둔 학자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연구에 대한 자극을 주는 학자 가운데 1명이 되었다. 프린스턴대학교에 있는 록펠러 재단의 라디오 리서치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1937~40). 1940년 이 연구소(후에는 응용사회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음)가 컬럼비아대학교로 옮겨간 뒤에도 계속 소장직을 맡았으며 같은 대학의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
그가 책임을 맡고 있는 동안(1940~50)이 연구소는 프로그램과 인원이 확대되었으며 경험적인 사회조사와 전문가 배출기관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70년에는 컬럼비아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으며 1970~76년에는 피츠버그대학교 객원교수를 지냈다. 라자스펠드는 전에도 오슬로대학교(1948~49)와 소르본대학교(1962~63) 객원교수를 지낸 적이 있었으며 소르본대학교에서 미국 사회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명예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 연구한 동료학자들로는 빈 시절부터 알았던 한스 차이젤, 소르본대학교 시절의 레이몽 부동, 새뮤얼 스토퍼 등이 있다.
컬럼비아대학교의 최고 이론가인 로버트 K.머턴과 함께 연구하여 사회학사상 가장 유명한 연구 팀으로 알려졌다. 머턴은 그의 업적을 기려 〈질적인 사회조사와 양적인 사회조사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Social Research〉(1979)라는 논문집을 펴냈다.
라자스펠드는 양을 측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리사회학(數理社會學)을 이용했다. 양적인 탐구와 질적인 통찰력을 결합시킨 것이 그가 사회학에 끼친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 그가 주로 연구한 9개 주제별 분야는 실업, 매스컴, 투표와 정치활동, 교육과 심리학, 사회조사(방법론과 절차), 수리 사회학, 시장조사 등으로 20세기 후반의 사회적 쟁점들을 얼마나 폭넓게 연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매스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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