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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780경, 프랑코니아 마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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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856. 2. 4, 빈켈 |
국적 | 프랑크 |
요약
대주교, 베네딕투스 수도원 원장, 신학자.
Hrabanus Magnentius라고도 함.
그의 저술이 독일어와 독일문학 발전에 공헌하여 '독일인의 스승'(Praeceptor Germaniae)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802년 프랑스 투르에 가서 저명한 수사 겸 학자 알비누스 밑에서 공부했으며 803년 마인에 있는 지금의 프랑크푸르트 근처 풀다 신학교를 맡아 그곳을 유럽인의 탁월한 학문의 전당으로 발전시켰다.
그가 모아놓은 원고와 예술품은 풀다를 서유럽에서 가장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학교로 만들었다. 822년 풀다 수도원장으로 선출된 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확대하고 수도원 건물을 확장했으며, 미술 학생들과 수사들이 이 수도원을 꾸몄다. 풀다는 전독일을 관장하는 그리스도교 선교기지가 되었다.
카롤링거 왕조의 황제 로타르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권력을 잡기 위해 싸울 때 그의 정치 자문역할을 했기 때문에 840년 독일의 루트비히 왕이 로타르 세력을 제거했을 때 추방당해야 했다. 은퇴 후, 페터스베르크 근처에서 저술활동과 금욕적인 생활에 몰두했고, 루트비히와 화해하여 847년 마인츠의 대주교에 임명되었다. 사목 활동에서 그의 사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널리 알려졌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가 850년 기근 때 수백 명을 굶주림에서 건져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라인 강 동부의 독일인들에게는 예술과 학문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는 필수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성직자와 평신도를 위해 많은 논문과 개론서를 썼다. 이것이 그의 독창적인 생각이나 글은 아니지만, 초대 그리스도교 저서 및 고전을 모아 이를 요약하거나 인용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그의 가장 방대한 저작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De rerum naturis〉(842~847)인데, 〈우주에 관하여 De universo〉로 부르기도 한다. 이 책은 9세기까지의 지성사를 22권으로 엮어놓은 지식 백과사전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플라톤주의와 6세기 라틴 교회의 저명한 그레고리우스 교황을 인용하여 교육적인 논문 〈성직제도의 형성에 관하여 De institutione clericorum〉(810경)를 썼다. 이 논문은 그리스도인의 인문과학 연구에 대한 변증이다. 〈문법학에 관하여 De arte grammatica〉에서는 6세기의 저명한 라틴 수사 알비누스와 8세기의 앵글로색슨 수사 겸 학자이며 역사가인 비드의 글을 인용했는데, 이것은 중세 논리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성서의 거의 전권에 관한 주석을 썼다. 이중 특히 구약의 모세5경과 마태오의 복음서 주석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그리스와 시리아의 복음서를 종합한 2세기 타티아누스의 라틴어판 〈4복음서 Diatessaron〉를 풀다 학파가 독일어로 번역할 때 이를 감독함으로써 독일문학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또한 고대 색슨 서사시 〈헬리안드 Heliand〉 번역도 감독했다. 그의 저술이 완벽하게 편집된 적은 없으나 아무런 비평을 곁들이지 않고 모은 글들이 〈라틴 교부학 Patrologia Latina〉(J. P. 미뉴 편집, 제107~112권, 1864) 시리즈에 수록되었다. 에른스트 뒤멜러는 라바누스가 군주·교황·학자 들과 교환한 중요한 편지들을 편집했다(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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