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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54~76년 베니토 후아레스의 주도로 멕시코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정치·사회 혁명.
(영). The Reform.
이 개혁운동은 1854년 독재자 안토니오 포페스 데 산타 안나를 제거할 것을 요구하는 자유주의적 선언문 '아유틀라 안(案)'의 발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1855년 산타 안나가 몰락하자 후아레스를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은 푸에로스(fueros : 성직자와 군인의 특권)를 없애는 후아레스 법(Ley Juárez)을 제정했다. 1856년의 레르도 법(Ley Lerdo)은 특별히 종교적 목적으로 쓰이지 않는 교회 토지는 모두 팔아 처분할 것을 명령했다.
1857년 온건 자유주의자들이 지배한 의회는 자유·연방주의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 이로써 성직자의 특별 관할권이 없어졌으며 궁극적으로 군대는 민간인이 통제하게 되었고 부채로 인한 구금과 세습 작위가 폐지되었다.
1858년 보수적인 성직자·군인·지주들이 내전을 일으켰으나 1860년 자유주의 정부의 승리로 끝났다. 자유주의 정부는 라 레포르마 법(1859)에 따라 예배 장소를 제외한 교회 부동산을 보상없이 몰수하고, 수도원을 폐지했으며, 교회묘지를 국유화하고, 종교의식에 따르지 않는 민간 결혼을 제도화했다. 몰수한 교회토지는 토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분배되었다. 그러나 라 레포르마의 토지 정책은 완전히 실패로 끝나 개혁 말기에 이르자 대지주들의 숫자와 부는 오히려 늘어난 반면, 토지없는 가난한 농민들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1862년 후아레스 정부는 외세의 침입을 받았다. 즉 나폴레옹 3세가 옛 체제를 회복하려는 멕시코 보수주의자들과 손잡고 멕시코에 프랑스 세력을 심으려 했다. 나폴레옹의 하수인인 합스부르크 황제 막시밀리안이 잠시 권력을 잡았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프랑스군이 철수함과 동시에 이 정부는 무너졌다.
1867년 후아레스는 대통령에 재선되었고 1872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정책을 실행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1871년의 대통령 부정 선거를 비롯해 강화되는 권위주의 방식에 불만을 품은 자유주의자들과 맞서야 했고 부족한 재원문제도 그에게 짐이 되었다. 그의 후임인 세바스티안 레르도 데 테야다 대통령은 점점 심해지는 보수주의자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며 이들의 반대는 결국 1876년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군사 쿠데타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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