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BC 430경(?) |
---|---|
사망 | 367(?) |
국적 | 시라쿠사 |
요약
시라쿠사의 전제군주.
(영). Dionysius the Elder.
시칠리아와 남이탈리아를 점령하여 시라쿠사를 그리스 본토 서쪽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로 만들었다. 그리스령 시칠리아가 카르타고에 점령되는 것을 막았으나 잔인한 군사독재는 헬레니즘에 해를 끼쳤다. 관청에서 서기로 일한 그는 BC 409년 시칠리아에서 있었던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BC 405년 전제군주가 되기 위해 전쟁의 위기를 이용했으며 이후 8년 넘게 무자비하게 그의 권력을 강화·확대했다. 시라쿠사 둘레에 성벽을 쌓고, 에피폴라이를 요새로 만들었다. 낙소스·카타니아·레오티니에 사는 그리스 시민을 그들의 도시에서 쫓아내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었으며, 그들의 집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의 용병에게 주었다. 이후 디오니시오스는 시칠리아 서부·남부를 점령했던 카르타고에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대항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카르타고와의 첫번째 전쟁에서 그리스는 모티아와 카르타고령 시라쿠사를 점령했으며, 적의 군사력을 시칠리아 북서쪽으로 국한시켜 놓는 등 디오니시오스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번째 전쟁은 BC 392년에 디오니시오스가 유리한 조약을 맺는 것으로 끝났다. BC 390년 이후 레기움과 남이탈리아에 있는 다른 그리스 도시들에 원정대를 이끌고 가 루카니아의 도움으로 투리이·크로톤·로크리를 무찔렀다. 레기움이 함락될 때(BC 386) 그리스령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되었다. 그는 일리리아와 이탈리아 북동쪽으로 이주민을 보냈다.
아테네의 작가 이소크라테스는 디오니시오스를 헬레니즘의 옹호자로 찬양했으나 그의 잔인한 정복은 그리스 시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으며, 그의 문학적 위장은 개탄의 대상이었다. BC 388년 그가 올림픽 축제에 호화로운 사절단을 보냈을 때 군중이 사절단의 천막을 약탈했다. 카르타고와 디오니시오스의 3번째 전쟁은(BC 383~375경) 비참하게 끝났다. 그는 크로니움에서 참패를 당하고, 1,000탈렌트의 배상금과 할리쿠스 강 서쪽 영토를 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을 무렵 카르타고와 한번 더 접전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왕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