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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별도의 조직이 없었으나 교도가 늘어남에 따라 교단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최제우 당시에는 경주 지역을 관장하는 책임자를 '접주'라고 불렀다. 그후 최시형이 교단을 이끌면서 교세가 삼남지방으로 점차 확대되자 접주 위에 '대접주'를 임명했다.
갑오농민전쟁 당시에는 '포'(包)라는 명칭이 등장하는데 접(接)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아마 포는 '기포'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접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거나 접의 상부조직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포접제의 운영은 6임제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교장을 비롯하여 교수·도집·집강·대정·중정의 6가지 직임이 교화활동을 주도했다. 이러한 교단의 총괄기관으로는 중앙에 법소가, 각 지역에 도소가 있었다.
그리고 교단의 조직원리는 연원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즉 도통연원이라는 원칙하에 도를 전하는 자가 도를 받는 자의 연원이 되는 것이다. 이때 새로 입교한 자는 자신을 교인으로 인도한 연원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또 교인을 많이 끌어들인 자는 전체 교단 내에서 포교성적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지위를 획득했다.
따라서 이러한 연원제는 포교활동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원간의 파벌을 조성하고 경쟁하는 역작용도 일어났다. 결국 동학은 19세기말이라는 변혁기에 창립된 신종교로 당시 대다수 민중들의 종교적 욕구와 사회변혁에 대한 갈망에 상당히 기여했으며 후에 한국 신종교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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