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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절대국가주의가 갖는 장점으로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꼽을 수 있다. 절대국가는 권력과 경제력, 정신적 권위의 중앙집권을 통해 유럽 사회에 질서와 진보를 가져왔으며 공동의 목적을 위해 개인적인 역량을 다시 결집시킬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국가사회의 출현으로 도시의 정치적·경제적 자주성은 상실되었지만 이제 그들은 노동의 지역간 분화를 가능하게 하는 보다 큰 상호 의존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새로운 중상주의 노선은 국가의 부를 크게 신장시켰지만 개별도시의 성장을 촉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인 재정은 전쟁을 통해 소진되어버리곤 했다.
도시와 농촌에서 산출된 소득의 대부분이 군주의 권력과 명성을 높이는 데 소비되었고, 궁중생활의 영화와 바로크 궁전 및 교회의 화려함 등은 상인들의 기업활동과 농민·장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대표되는 식민지 지역에서는 이 시기에 많은 신도시 건설이 이루어졌으나 지배국에서는 식민지역과의 교역을 통해 수도·항구 등만 급속한 성장을 이룬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한편 절대군주의 통치하에서는 몇 개의 정치·상공 중심지가 지방의 소읍 및 농촌의 희생 위에 발전·성장했다.
18세기에 이르러 정치적 영향력과 특권을 갖지 못했던 상인계층은 체계적으로 향상되는 생산을 상업활동과 효과적으로 연계시키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구시대의 제약에 묶이게 되자 절대군주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즉 상인계층은 다른 불만세력들과 결합하여 절대군주의 과도한 권력에 제동을 걸고 봉건시대의 흔적을 없애는 한편, 공공정책 결정과정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높여나갔다. 이러한 자유주의 풍조가 가장 활발했던 서부유럽 사회에서는 도시민과 신흥 엘리트 그룹이 매우 강력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는 신흥상인계층의 진보적 경향이 다소 약했고 대개 기존의 권력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영국과 네덜란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도시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1800년 무렵에는 세계인구 중 3%만이 인구 5,000명 이상의 읍에 거주하고 있었다. 인구가 10만 명 이상 되는 도시는 45개밖에 안 되었고, 그중 유럽에서는 절반도 안 되는 수의 도시가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아시아 지역은 전세계 도시인구의 2/3를 점하고 있었으며 에도(지금의 도쿄)가 인구 140만 명으로 18세기 최대의 도시였는데, 그 규모는 전성기의 고대 로마와 비잔티움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대도시가 많이 있다거나 상업 엘리트가 많았다는 것만으로 그 사회의 활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산업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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