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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고대 도시
약 1만 년 전인 신석기시대에 인간은 이미 집단거주형태를 취했으나 약 5,000년 전까지만 해도 토양이 척박해지면 전 마을이 거주를 이동하는 반영구적인 정주형태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의 촌락으로부터 도시형태로의 발전에는 적어도 1,500년이 소요되었다(BC 5000~3500). 많은 인구가 도시에 모여 살 수 있도록 한 기술진보는 주로 농업과 관련된 것이었다. 신석기시대에 인간에 의한 식물과 동물의 관리는 점차로 개선된 경작과 가축의 사육으로 발전되었고 나아가 기술의 발달은 잉여생산을 가져와 인구의 일부는 예술·기술·서비스업에의 종사를 가능하게 하였다.
관개와 경작기술의 발전으로 정주규모가 커졌고 이에 따라 재화와 사람의 유통을 원활히 하여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신석기 인류는 동물의 가축화로 고기와 가죽을 얻었을 뿐 아니라 화물수송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가축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초기 교통발전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일은 바퀴의 발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BC 3500년경부터 사용된 최초의 바퀴는 초기에는 나무나 돌 등을 통째로 둥글게 깎아 사용했으나 차츰 바깥바퀴[外輪], 차축, 빗살 등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바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도로가 필요하였으며, 특히 고대 로마 시대에는 도로건설이 급격한 발달을 이루었다. 수상교통에 있어서도 뗏목, 마상이, 이집트의 갈대 보트, 목선 등이 개발되었고 항해와 관개를 위해 운하가 이용되기 시작했다.
BC 3500년경의 도시사람은 대체로 문자를 사용하고, 금속기술을 활용하며, 사회적 통제와 정치적 조직, 감성적 구심체(원시종교·사원)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고대 도시는 수메르 지역의 우르나 인더스 강 유역의 모헨조다로 등지에서 이미 BC 3000년경부터 존재했으며 BC 2000년경에는 나일 강 유역과 황허 유역에서도 나타난다.
도시는 투르게스탄으로부터 카스피 해를 지나 페르시아 만과 동부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육상무역로를 따라 급격히 번성했다. 농업과 무역에 기초한 경제기반과 그들의 정치적·종교적인 조직은 직업분화와 사회계층화를 유발했고 도시중심적인 시각에서 볼 때 도시는 이미 배후지역의 삶과 사회조직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도시의 성장이 원시생활에서 문명사회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은 아니다. 〈고대문명에서 도시의 역할 Role of Cities in Ancient Civilization〉에서 S. 피고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도시적 생활과는 다소 대조적으로 유목이 주가 되는 보다 불안정한 공동체가 아시아의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도시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유목민은 원시인이 아니었으며, 건축을 발달시키지는 못했으나 목가적인 생활과 함께 구전되어오는 나름대로의 위대한 전통, 추상적 미술, 수많은 공예를 발달시켰다. 자급적인 이들 유목민족들은 군사지도자들의 지휘 아래 남쪽의 정착농업 및 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위협했다.
BC 2000년경에는 아리아 유목민들에 의해 인더스 문명이 함몰되었고 기마와 마차를 이용한 다른 그룹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도시문명의 심장부를 침략하였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쟁기술과 약탈을 통한 공급체계가 요구되었고 이는 결국 기존의 도시사회를 준군사국가로 변모시켰다. 그 예로 히타이트·이집트·미케네의 도시국가들이 있으며, 이들 국가의 시민권은 곧 병역의 의무를 동반하는 것으로 급속히 바뀌어갔다. 그러나 BC 1200년경 이후에는 이들 도시국가들마저 무질서와 혼돈의 와중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BC 8세기에 와서 그리스의 암흑시대가 걷히고 페니키아와 그리스에 의해 동부지중해 너머로 혼합적 도시국가 형태가 전파되면서 안정되었다.
자립도시와 종속도시
그리스 로마 시대를 연 다양한 종족들은 서남아시아의 정신적 문화유산과 기술을 전수받아 야만적인 생활양식을 청산하고 도시적인 문화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역식민지역인 크림에서 카디스 지역, 나아가 전 지중해 연안 지방을 대상으로 문화의 꽃을 피워갔다. 그러나 도시적 문화양식의 정수(精髓)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즉 폴리스로 지칭된다. 당초 인근 부족장들간의 연합체였던 폴리스는 아시아 제국과 유목민 부류와는 다른, 작지만 자율적인 시민자치체로 발전되었다.
이들 시민들에게 도시생활은 웅장한 건축과 공공집회소 등으로 상징되는 도덕적 공공질서를 의미했다. 그러나 이전의 배타적인 시민권이 점차 완화되고, 새로운 상업적 부유층의 권한이 종래의 토지를 근간으로 한 지주시민층의 권한을 능가하면서 도시 내외에서의 사회적 경쟁의식은 도시국가의 주축인 보통사람의 삶을 점차 약화시켜갔다. 창조적이고 다양했던 도시국가 형태는 알렉산더 대제와 그 후임자들로 상징되는 거대한 제국과 왕권체제로 통합되어갔다.
나일 강과 인더스 강 유역 사이에는 새로운 도시들이 계속 건설되었고 생활양식과 문화는 동쪽으로 전파되어갔지만 개별 도시들은 과거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정치권을 상실한 채 거대한 정치-이념체(제국)의 일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리스 문화를 이어받은 로마 제국은 알프스 산맥 너머의 목가적 농업사회로 남아 있던 켈트족과 게르만족에게 도시문화를 전파했다.그러나 로마인들이 변경의 미개인들에게 문명과 질서를 전수해주었지만 도시는 독자적인 자치권이 배제된 제국의 군사주둔 행정통제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렸다(무니키피움). 주도적인 역할은 중앙집권화되었고 동부지방도시들의 문화는 단순히 중앙을 모방하는 정도였을 뿐 자체적인 정치·사회·문화 발전은 미미했다.
이들 도시에서는 그들의 사회적 지배계층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고 세금을 내는 것 이외의 경제활동은 빈약하였다.
이들은 지역의 농업활동에서 창출되는 잉여분을 지대(地代)와 공물로 착취했다. 로마 시민권이 점차 보편화되고 공식화되면서 공공의 의무는 개인적 야망 앞에 무력해졌고 도시적 자치기능이 위축되어, 도시의 역할은 조세를 납부하는 것 외에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상태에서 비잔티움 시대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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