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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후기 문체를 올바르게 되돌린다는 뜻의 문체반정책(文體反正策)이 행해지면서, 모범적인 문체는 철두철미하게 경서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정조(正祖)의 문학관.
정조의 문학관은 〈홍재전서 弘齋全書〉 〈일득록 日得錄〉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철저하게 경학에 근거한 문학을 주장하는 도문일치론과 경국(經國)에 기여하는 현실 긍정의 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비평관(批評觀)으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정조가 모범적인 문학으로 존중하고 있는 것은 바로 6경(六經)을 비롯한 유가(儒家)의 경전과 사마천·반고로 대표되는 한(漢)나라의 문학, 모곤(茅坤)이 가려뽑은 당송8가문(唐宋八家文), 그리고 육지(陸贄)의 주의(奏議)와 주자서(朱子書) 등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에 있어서도 정조는 국초 이후 중기에 이르는 권근(權近)·서거정(徐居正)·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 등의 관각문학 대가들의 작품을 주로 칭찬하고 있다. 반면 왕세정(王世貞)·이반룡(李攀龍) 등 명나라 칠자(七子)의 의고주의(擬古主義) 문학과, 이에 대립한 원굉도(袁宏道) 등 명나라 말기의 공안파·경릉파의 문학을 모두 배격하고, 청나라의 문학 역시 명대 문학을 뒤따르고 있다 하여 배척했다. 한편 당시의 조선 문학에 대해서도 명·청 문학의 나쁜 영향으로 타락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고 혹평하고 있다. 정조가 이렇듯 당시의 문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경서를 멀리하고 사치에 빠져 있는 사대부 사회의 문란한 풍기를 반영하는 것도, 동시에 이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정조는 그러한 문체의 대표적인 예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 熱河日記〉를 지목하여 문책함과 동시에 문체반정책에 순응하도록 회유했다. 도문일치론을 바탕으로 문체반정을 표방한 정조의 복고적 문예정책은 당시 집권층인 노론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풍을 비판함으로써 노론 내부의 벽파를 시파(時派)로 전환시키려는 정치적 포석에서 나온 탕평책의 일환이었다. 정조는 이를 통해 벌열층인 노론 일파를 견제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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