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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그리스 중부의 포키스 지방, 코린트 만에서 약 9.65㎞쯤 떨어진 파르나소스 산의 험준한 단애 중턱에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독수리 2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에 놓아주면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날아가게 했더니 2마리가 델포이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지점은 돌멩이로 표시되어 있고 그 돌을 옴팔로스라 했으며 그 주위에 신전을 지었다. 델포이는 인보동맹에서 중심역할을 했다. 이무렵 델포이 신탁소의 명성은 절정에 이르러 사사로운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델포이 신탁소의 조언을 청했다. 델포이 유적지에는 19세기말까지 카스트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러다가 1890년 마을이 가까운 지역으로 옮겨지고 이곳은 델포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그리스 중부의 포키스 지방, 코린트 만에서 약 9.65㎞쯤 떨어진 파르나소스 산의 험준한 단애(斷崖) 중턱에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독수리 2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에 놓아주면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날아가게 했더니, 2마리의 독수리가 델포이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 지점은 돌멩이로 표시되어 있고 그리스인들은 그 돌을 옴팔로스(세계의 중앙)라 했으며 그 주위에 신전을 지었다.
또한 전설에 따르면 델포이에 있는 이 신탁소는 원래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것이었고, 거대한 뱀인 가이아의 아들 피톤이 이곳을 지켰으나 나중에 아폴론이 피톤을 죽이고 자신의 신탁소를 세웠다고 한다. 발굴 결과 델포이에는 미케네 문명 말기(BC 14세기)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델포이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BC 6세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BC 590년경 제1차 신성전쟁이 일어나 델포이 순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고 있던 델포이 근처의 크리사 시를 파괴하고, 자유롭게 델포이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델포이는 인보동맹(隣保同盟)에 가담해 중심역할을 했고 BC 582년부터 재개된 범국가적 제전 피티아 경기를 4년마다 개최했다. 이무렵 델포이 신탁소의 명성은 절정에 이르러 사사로운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델포이 신탁소의 조언을 청했으며, 이 신탁이 국가정책을 바꾼 경우도 많았다.
또한 그리스 본토에서 해외로 식민단을 내보낼 때에도 반드시 델포이의 신탁을 들었는데, 이곳의 명성은 그리스어권 지역 전체에 널리 퍼졌다.
BC 356~346년에는 포키스인들이 강제로 이곳을 점령하고 신전의 보물을 빼앗았다가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에게 쫓겨났다. 그뒤 로마 시대 초기에도 종종 약탈당했는데 네로 황제가 델포이 근처에서 조상(彫像) 500개를 빼앗아갔다는 말도 있다.
그리스도교가 퍼지면서 이 유서 깊은 이교의 성지 델포이는 쇠락했다. AD 4세기 중엽 그리스도교를 반대한 황제 배교자 율리아누스가 델포이 신전을 복구하려 했지만 델포이의 신탁은 황제의 열성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사라져버린 옛 영광을 한탄할 뿐이었다.
델포이 유적지에는 19세기말까지 카스트리라는 근대적인 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1890년에 마을이 가까운 지역으로 옮겨지고 이곳은 델포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1892년에 시작한 발굴로 고대 성지의 윤곽이 드러났는데 2세기 그리스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의해 각 폐허들이 어떤 건축물의 유적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전이 있는 성소는 거의 장방형에 가까운 넓은 공터로 담장에 둘러싸여 있고 신성한 길이 성소를 구불구불 돌아 아폴론 신전까지 뻗어 있으며 길 양 옆에는 기념비와 보물창고들이 들어서 있었다.
기념비들은 아폴론 신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국가나 개인이 세운 봉헌물이었다. 성소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아폴론 신전이 있었는데 현존하는 유적은 BC 4세기에 세워진 신전 중 일부로 주춧돌과 몇 개의 계단, 둥근 기둥들만이 남아 있다. 신탁소는 신전 뒤에 있는 작은 방 안에 있었다. 그 자리에는 그보다 먼저 2개의 아폴론 신전이 있었는데, BC 600년경에 세워진 첫번째 아폴론 신전은 BC 548년에 불타버렸고 당시의 유적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고대 기둥머리 몇 개와 벽돌 덩어리들이다.
BC 6세기말에 세워진 2번째 아폴론 신전의 유적으로는 많은 벽돌 덩어리와 페디멘트를 장식했던 조각품 몇 개가 남아 있다. 수많은 보물창고들 가운데 아테네의 보물을 넣어 두던 창고는 유적에 남아 있던 건축자재로 고스란히 다시 지어졌는데, 그 벽에는 유명한 아폴론 찬가의 악보가 새겨져 있다.→ 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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