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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카세

다른 표기 언어 Théophile Delcass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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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52. 3. 1, 프랑스 파미에
사망 1923. 2. 22, 니스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외무장관(1898~1905, 1914~15).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몇 해 전 새로운 유럽 동맹체제를 결성하는 데 이바지했다.

델카세는 원래 레옹 강베타의 온건 공화주의 강령과 쥘 페리의 식민지 팽창정책을 열렬히 지지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1885년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893년 알렉상드르 리보 내각에서 상공부 및 식민부 차관을 지냈으며 1894~95년에는 식민부장관으로 일했다. 1898년에는 앙리 브리송 내각의 외무장관이 되었다. 내각이 6번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 외무장관으로 남아 있었는데, 제3공화국에서 7년 동안 각료직을 유지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3국동맹을 경계한 델카세는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지속하고 영국과 새로운 협정을 맺는 것이 프랑스에 가장 이롭다는 결론을 내렸다.

1904년 그는 영국과 광범위한 문제를 논의해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영국-프랑스 화친협정(1904. 4. 8)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협상은 1940년까지 유럽 외교의 기본 골격으로 남아 있었다. 동시에 그는 영국과 러시아의 협상(1907)을 주선함으로써 세 강대국을 3국협상으로 묶어놓았는데,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의 핵심을 이루었다.

델카세는 모리스 루비에 총리가 자신의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에 1905년 사임했으나 사실상 그의 사임은 독일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는 곧 프랑스 내의 반독일 감정을 고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 그가 이루어놓은 3국의 유대관계는 더욱 강화되었다. 델카세는 1909년 프랑스 해군의 취약점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해군장관(1911~13)이 된 그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영국과 프랑스 함대가 상호협력하기로 영국과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 르네 비비아니 내각에서 외무장관으로 있다가 1915년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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