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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32. 4. 5, 프랑스 생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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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93. 3. 17, 파리 |
국적 | 프랑스 |
요약 프랑스의 정치가.
제3공화정 초기에 반교권적인 교육법을 도입하고 프랑스 식민지 제국주의 확장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1855년 파리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나 곧 매서운 비평가로서 제2제정을 공격했으며, 특히 〈탕 Le Temps〉지에 실린 오스만 남작의 파리 행정을 공격한 기사들(1867~68)로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71)중에는 센 주(州)의 주지사로서 통치했고, 1870년 11월에는 파리 시장에 임명되었다. 파리가 포위당하고 식량부족으로 허덕일 때 행정을 맡았던 이유로 그는 '굶주린 자 페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 별명은 그의 활동기간 내내 그를 따라 다녔다. 그리스 담당장관(1872~73)이 되어 이후 6년 동안 보수적인 정부와 대통령 파트리스 마크 마옹에 반대하는 공화파 야당에서 활동했다.
1879년부터는 몇몇 요직을 거쳤는데, 총리를 2번(1880~81, 1883~85) 지냈으며, 외무장관(1883~85)을 지내기도 했다. 총리로서 그는 주로 1882년의 교육법을 통해 무상의무 세속 교육을 도입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정책은 그밖의 반교권 조처와 함께 실시되었는데 특히 교황과 프랑스 정부 간의 정교조약으로 공인받지 않은 예수회 등 여러 종교 단체를 해산하고, 이들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은 어떤 교육기관에서든 대표자나 교사가 되는 것을 금지한 일련의 법령(1880~81)이 대표적이다.
그는 또한 프랑스의 식민지 영토를 극적으로 확장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단의 열광적인 식민주의자들과 함께 대중의 무관심이나 반감에 부딪히면서도 프랑스가 튀니지(1881)와 통킹(1885)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통킹을 완전히 정복하는 데 필요한 경비가 계속 지출되자 분노한 대중은 1885년 3월 페리를 내각에서 축출했다. 그는 여전히 인기가 없었으나 1891년 보주에서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893년에는 상원의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 일은 격렬한 반감을 불러일으켜 한 정신이상자가 권총으로 그를 저격하는 사건을 초래했다. 그는 이때 입은 상처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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