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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콧

다른 표기 언어 Henry Stafford Northcote, Baron Northcote (of Ex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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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46. 11. 18, 영국 런던
사망 1911. 9. 29, 켄트 애슈퍼드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외교관·행정관료.
Sir Henry Stafford Northcote, Baronet이라고도 함.

노스콧(Henry Stafford Northcote)

ⓒ State Library of Victoria/wikipedia | Public Domain

1904~08년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을 지냈다. 뒤에 이드즐리 백작 1세가 된 헨리 노스콧 경의 둘째 아들로 이튼 칼리지에 다녔고 옥스퍼드대학교 머튼 칼리지에서 문학학사(1869)와 석사(1873) 학위를 받았다. 1868년 외무부 서기관이 되었으며 앨라배마 분쟁의 해결을 위해 1871년 부친을 따라 워싱턴 D. C.로 갔다.

1876년 이스탄불에서 솔즈베리 경의 비서로, 1877~80년 재무장관이던 부친의 개인비서로 일했다. 엑서터에서 출마하여 1880~99년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제1·2차 솔즈베리 내각에 몸담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직책에 있었다. 1887년 부친이 사망하자 준남작에 봉해졌다.

1899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 총독에 임명되었고 인도로 떠나기 전 남작작위를 받았다. 그무렵 구자라트를 비롯한 봄베이(지금의 뭄바이) 지역은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노스콧은 병원시설을 개선하고 부분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영세농민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재원이 부족했으므로 사업자금의 일부는 그 자신이 부담했다.

1903년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에 등용되어 이듬해 1월 시드니에서 취임한 이후 1908년 귀국할 때까지 약 5년을 임지에 머물렀다. 재직기간 동안 육·해로를 따라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걸쳐 연평균 1만 6,000㎞에 이르는 거리를 답사했다. 그는 상당한 명성과 신망을 누렸으며 부유한 환경 덕택으로 손님들을 훌륭히 접대할 수 있었다. 귀국 후 조지 5세 국왕의 대관식 때(1911)에는 영연방 오스트레일리아 기(旗)를 들었다. 후사없이 사망하여 작위가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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