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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 국보(1979.05.22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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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 우징동의 속칭 사인암에 조성된 신라시대 마애불상군. 거대한 암벽이 ㄷ자로 솟아 자연석실을 이루고 있는데 내부 3면에 불상·보살상·반가사유상·공양상 등 10구와 200여 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은 마멸이 심해 완전한 판독이 어렵지만 이 석굴의 절 이름이 신선사이며 본존상이 미륵장육상임을 알 수 있다. 서쪽으로 트인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 바위면에는 모두 7구의 상이 위아래로 나뉘어 조각되어 있다.
국보(1979.05.22 지정). 본존 높이 820㎝. 거대한 암벽이 ㄷ자로 솟아 자연석실을 이루고 있는데 내부 3면에 불상·보살상·반가사유상·공양상 등 10구와 200여 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은 마멸이 심해 완전한 판독이 어렵지만 이 석굴의 절 이름이 신선사(神仙寺)이며 본존상이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임을 알 수 있다. 즉 여래형의 미륵불과 보살형인 반가사유상이 함께 조성된 것으로 당시 미륵신앙에 의해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경주산천단석산(慶州山川斷石山)조에는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했던 김유신이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는 구전이 남아 있어 신선사라는 절 이름을 화랑과 관련된 미륵신앙의 기도처로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
서쪽으로 트인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 바위면에 모두 7구의 상이 위아래로 나뉘어 조각되어 있다. 윗면 앞쪽 3구의 상은 우견편단(右肩偏袒)과 통견(通肩)의 여래입상으로 모두 손으로 굴의 안쪽을 가리키는 독특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 옆에 조각된 반가사유상을 향한 자세로 해석된다. 안쪽의 삼면관을 쓴 반가사유상은 정면으로 부조되어 있어 신라 반가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우견편단의 여래입상은 삼국시대 불상 중에서는 특이한 형식으로 주로 신라 7세기 전반의 금동약사여래입상에서 볼 수 있으며 이곳 단석산의 마애불상군 중에도 우견편단의 상이 보이는 것은 당시 이러한 불상양식이 유행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암벽 아래에는 우견편단의 여래입상과 손에 향로와 나뭇가지 형태의 공양물을 들고 안쪽을 향해 서 있는 2구의 공양자상이 있다. 다시 그 안쪽의 바위면을 돌아가면 석굴의 주존불인 거대한 여래입상과 보살입상, 명문, 다시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불상과 보살상은 미륵삼존상으로 보기도 한다. 여래입상은 거불로 자세나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 경직되고 도식적인 조형을 보이는데 매우 고졸한 느낌을 준다. 머리는 소발(素髮)이고 육계는 마치 상투를 묶은 듯하다. 얼굴은 둥글넓적한데 이목구비 역시 평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이 깊게 벌어져 둥근 띠매듭이 보이며, 옷주름은 둥근 U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손은 시무외·여원인을 취하고 있는데 자세가 어색하며 표현이 둔중하다. 비교가 되는 불상으로는 6세기말이나 7세기초 백제에서 조성된 태안이나 서산마애삼존불상등을 들 수 있다. 단석산 불입상의 경우는 매우 고신라적인 양식으로 표현된 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7세기 전반 정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도상의 불상표현이나 명문으로 보아 단석산의 불상군은 고신라 불교미술 내지는 신앙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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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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