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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너울은 조선시대 여자들의 쓰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고려시대에 들어온 몽고의 유습으로 보인다. 유래에 대해서는 〈연려실기술〉에 "천을 원립 위에 씌워 아래로 드리우며 얼굴 부분은 망사를 사용해 앞을 투시할 수 있게 했다"고 하며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궁녀들이 너울을 썼는데 그 색깔은 직책에 따라 다른데 대개 검정색이 귀하고 푸른색은 천한 것이었다"고 전한다. 유교통치이념 속에서 삼종지도를 강조하는 내외법은 여자들로 하여금 함부로 남자들을 만날 수도 없거니와 친척조차 정해진 촌수 이외에는 만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너울 등으로 얼굴을 가려 상대편 남자들이 볼 수 없도록 했다.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남녀간의 신분차이가 어느 정도 타파되면서 더이상 너울은 필요없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쓰던 쓰개로는 너울·족두리·가리마 등이 있다.
너울은 조선시대 여자들의 쓰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고려시대에 들어온 몽고의 유습으로 보인다. 유래에 대해서는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 기호조(奇虎條)에 "천을 원립 위에 씌워 아래로 드리우며 얼굴 부분은 망사를 사용하여 앞을 투시할 수 있게 했다"고 하며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궁녀들이 너울을 썼는데 그 종류는 푸른색, 검은색이 있고 직책에 따라 다른데 대개 검정색이 귀하고 푸른색은 천한 것이었다"고 전한다.
유교통치이념 속에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강조하는 내외법(內外法)은 여자들로 하여금 함부로 남자들을 만날 수도 없거니와 친척조차 정해진 촌수 이외에는 만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너울 등으로 얼굴을 가려 상대편 남자들이 볼 수 없도록 했다.
우리말에 '너울을 벗긴다'는 뜻은 겉에 위장한 것을 벗기고 속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바로 머리쓰개인 너울에서 비롯되었다. 너울은 개화기로 접어든 20세기 초반에도 더러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때에도 내외법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남녀간의 신분차이가 어느 정도 타파되면서 더이상 너울은 필요없게 되었고 장옷·삿갓·천의 등의 거추장스러운 옷들도 사라졌다.→ 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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