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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 말기 원나라 장수인 나하추가 삼살(三撒:지금의 함북 북청)과 홀면 지역을 침입한 일.
나하추는 원 순제 말기에 심양(瀋陽)지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창춘[長春] 및 눙안[農安] 일대를 지배하던 원나라 장군이었는데, 요동지방을 경계로 중앙정부와 접촉을 끊고 만주 및 한반도 안의 원나라 기득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그때 마침 공민왕의 쌍성총관부 공격 당시에 쌍성총관으로 있다가 쫓겨난 조소생과 천호였던 탁도경의 지원요청이 있었다. 이에 응하여 1362년(공민왕 11) 2월에 삼살과 홀면 지역을 침입했다.
고려군은 동북면도지휘사 정휘(鄭暉)의 지휘로 이들과 여러 차례 싸웠으나 번번이 패하고, 이성계(李成桂)의 파견을 조정에 요청했다. 이에 공민왕은 상호군(上護軍) 이성계를 동북면병마사로 임명하여 현지로 파견했다. 7월이 되자 나하추는 수만의 대병력을 이끌고 조소생·탁도경의 무리와 함께 홍원의 서북방 달단동에 진을 치고 카라만호와 동첨에게 군사 1,000명을 주어 선봉부대로 삼았다. 이성계군이 덕산동 원평에서 나하추의 선봉부대를 격파하자, 나하추는 덕산동에서 결전을 벌이고자 했다. 그러나 이성계가 먼저 기습공격을 감행함에 따라 나하추 군대는 달단동으로 철퇴했다. 며칠 뒤 이성계군이 달단동으로 쫓아가서 공격을 시작하자 나하추군은 달아나기 시작했는데, 상당수가 죽거나 사로잡혔다. 고려군은 정주로 일단 회군하여 3군으로 나뉘어 재정비한 다음 전출하여 함흥평야에서 나하추군을 크게 격파하여 심양 쪽으로 패퇴시켰다. 그리고 나하추를 끌어들였던 조소생과 탁도경은 도망가다가 여진의 다루가치 부가[不花]에게 잡혀 죽음을 당했다. 고려군이 이들을 물리침으로써 고려의 동북방 변경지역은 일단 평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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