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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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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88 |
국적 | 원(元)·명(明), 중국 |
요약 중국 원말·명초의 무장.
나하추의 집안은 대대로 요동지방을 정벌하는 데 공이 컸다. 원 말기인 1355년 그는 강남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북방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희망이 받아들여져서 만주지역에 근거를 두게 되었다. 이후 고려에 침입했다가 패배하고 화친을 맺는 등 고려와도 교섭을 가지면서 자기 세력을 키워나갔다.
명초에는 만주 북부 일대를 지배하면서 원의 중요한 잔여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명 태조(太祖)는 나하추를 회유하고자 했으나 그는 1370년대 초반에 요동지방을 공격하는 등 명조에 대한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나 북쪽으로 도망한 원이 중국을 회복할 희망이 별로 없고 명의 회유도 계속되자 저항이 약화되었다. 그러던 중 1387년 명의 장군 풍승 등이 북으로 진격해오자 명군에 무조건 항복했다. 이로 인하여 그의 휘하에 있던 20만 대군이 명에 귀속되면서 명은 북방의 방위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되었다.
나하추는 항복한 후 해서후에 봉해졌고 다음해 윈난[雲南] 정벌에 나섰다가 도중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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