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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

다른 표기 언어 金冠

요약 금관은 순금제뿐 아니라 금속제 관모를 통칭한다. 고대의 관모는 일상용과 껴묻거리용으로 나뉜다. 일상용은 주로 비단 등을 사용하여 신분의 위계질서를 나타내고 실용성을 갖추었다. 반면 껴묻거리용은 사자의 영혼을 위한 주술적인 상징 의미를 담기 위해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치장했으며, 금·금동·은 등의 귀금속 재료를 주로 사용했다. 금관은 삼국시대의 신라고분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순금제뿐 아니라 금동·은·동 등 금속제 관모를 통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의 관모는 크게 일상용과 껴묻거리용으로 나누어지는데, 생전에 사용하던 관을 사후에 그대로 묻는 경우보다는 당시의 사후세계관(死後世界觀)에 따라 별도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일상용은 주로 비단 등을 사용하여 신분적인 위계질서를 나타냄과 동시에 착용시에 편리하도록 실용적인 면에 관심을 두었다. 껴묻거리용은 실용적인 면보다는 사자(死者)의 영혼을 위한 주술적인 상징 의미를 담기 위해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치장했으며, 재료 또한 금·금동·은 등의 귀금속을 주로 사용했다(→ 장례).

안악3호분과 덕흥리고분의 피장자 초상화에 등장하는 흰 비단의 백라관(白羅冠)이나 사마르칸트의 사절도(使節圖) 벽화에 보이는 절풍건(折風巾) 계통의 관모를 쓴 신라 사신의 모습은 〈삼국지〉·〈후한서〉 등의 고구려 관모에 관한 기록과 함께 일상용 관모의 형식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금관은 껴묻거리용 관모의 대표적인 형식으로서 삼국시대의 신라고분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삼국의 금관 형식은 관장식에 내재된 상징 의미와 더불어 세 나라간의 문화적 특성과 차이점을 보여주는 단서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고구려의 금관은 지금까지 3점이 알려져 있다.

평양 청암동 토성 및 평양 근처의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그리고 내관(內冠)의 일부로 추정되는 진파리(眞坡里) 1호분 출토의 투조금동관식(透彫金銅冠飾) 등이 그것이다. 청암동 출토 금동관은 투각으로 구름 무늬와 방형 무늬를 새긴 테두리 위에 5가닥의 인동당초무늬[忍冬唐草紋] 입식(立飾)을 세웠으며, 또다른 평양 출토 금동관은 테두리 위에 삼산보관식(三山寶冠式) 입식을 갖추고 있다. 원형 테두리와 입식으로 구성된 기본형식은 신라의 것과 큰 차이가 없으나 문양과 입식의 형태, 투각기법이 유난히 많은 점 등은 고구려 것의 특색이다.

진파리 1호분의 투조금동관식은 앞의 금동관과는 달리 투각된 금동판을 양쪽에 겹쳐 만든 것으로, 연주 무늬 테두리 안에 봉황과 용을 위아래 공간에 각각 투각했고, 중심의 원 안에는 태양의 상징인 삼족오(三足烏)를 배치하는 등 독특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고구려의 금관은 남아 있는 것이 적어 전체적인 특징을 말하기가 쉽지 않지만, 고분벽화 등 다른 미술품에서 나타난 웅건한 힘과 강직성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백제에서는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이 원형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예이며, 공주 무령왕릉에서 유물과 함께 발굴된 순금제 관장식까지 포함해서 모두 2점에 불과하다.

이처럼 백제나 고구려의 금관이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문화적 수준의 차이라기보다는 도굴이 용이한 양국의 분묘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반남면의 금동관은 내외관의 형식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특히 반원형의 내관은 고구려의 진파리 1호분 출토 투각금동관장식과 제작형식이 매우 유사하여 주목을 끈다.

그리고 금판의 외곽을 타오르는 화염 무늬 형태로 오려내고 내부에는 유려한 식물 문양을 투각한 무령왕릉의 왕 및 왕비용 관장식은, 비록 많지 않은 유물이긴 하지만 백제 금속공예의 높은 수준을 입증해주기에 충분하다.

금관을 비롯한 삼국시대의 각종 공예품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의 분묘구조를 가진 신라지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금관총·금령총·서봉총·천마총·황남대총의 금관이 대표적인 것으로 꼽힌다.

천마총 금관

국보 제 188호인 천마총 금관, 경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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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 위에 입식을 세운 것이 기본형이며, 모두 금판을 오려서 만들었다. 특히 출자형(出字形)과 녹각형(鹿角形)이 주종을 이룬 입식은, 금실을 꼬아 규칙적으로 매단 곱은옥[曲玉]이나 금제달개[金製瓔珞] 장식과 더불어 백제·고구려의 금관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다. 순금제뿐 아니라 금동관의 형식도 눈에 띄는데, 이 경우 입식의 수나 장식 등에서 금관에 비해 훨씬 간략하게 처리되고 제작기술면에서도 뒤지는 편이다.

그밖에 가야지역에서도 몇 점의 금관이 출토되었는데, 그 형식은 신라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신라금관의 전형에서 다소 간략하게 만들어진 점이 다르다. 테두리 위에 출자형입식만 세운 형태가 대부분이며, 대구광역시 달성군 달서면 37호 제1석곽에서 출토된 금관처럼 녹각형입식이 생략된 예도 있다. 재료에 있어서도 순금제보다는 금동제가 주류를 이루는 것도 신라와 다른 점인데, 가야적인 특징을 지닌 유물로는 그밖에도 경상북도 고령 출토의 금동관과 고령 지산동 5호분 1호석실에서 수습된 금동관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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