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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羅生門〉(1950)·〈이키루 生きる〉(1952)·〈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1954)·〈피의 옥좌〉(일본 제목은 구모노스조[蜘蛛巢城])(1957)·〈도데스 가덴〉(1970) 및 〈가게무샤 影武者〉(1980) 등의 작품을 만들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한때 군장교를 지냈으며 교사로서 일본의 체육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었다.

구로사와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미술 학교에 다니면서 서양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권위있는 미술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화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버리고 1936년에 PCL영화사의 조감독이 되었다. 1943년까지 이 영화사에서 주로 야마모토 가지로[山本嘉次郞]의 조수로 일했는데 야마모토는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 일본의 일류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시기에 구로사와는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졌으며 그의 작품 가운데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고 잡지에만 발표된 몇 편의 시나리오는 참신한 묘사에 대한 전문가들의 높은 평가로 상을 받았다.

1943년에 감독이 되어 자신의 시나리오로 첫번째 장편영화인 〈스가타 산시로 姿三四郞〉를 만들었다.

1880년대에 활동한 일본 유도의 명인(名人)들을 다룬 이 영화는 흥행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에는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소녀들의 에피소드를 묘사한 2번째 영화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들었다.

이 영화를 찍은 직후 주연 여배우 야구치 요코와 결혼하여 슬하에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두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무조건 항복한 1945년 8월에 그는 유명한 가부키[歌舞伎] 연극을 풍자적으로 개작한 〈호랑이 꼬리를 밟은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점령군이 일본의 봉건시대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1952년까지 배급되지 못했다.

〈우리 청춘에 후회는 없다 わが靑春に悔なし〉(1946)는 1933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 군국주의가 걸어온 역사를 전쟁 때 간첩 혐의로 처형당하는 한 사람의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영화가 쏟아져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이 영화는 예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은 〈술취한 천사 醉いどれ天使〉(1948)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쿄 시내에 살고 있는 주정뱅이 의사와 결핵 환자인 깡패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폭력과 우울한 분위기만이 아니라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멜로드라마이다.

깡패 역을 맡은 신인 배우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郞]는 이 영화로 일약 스타가 되었고, 그후 구로사와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했다.

〈라쇼몬〉은 1951년 베네치아 영화제에 출품되어 대상을 받았다. 일본 영화가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기는 이때가 처음이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 영화는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191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10세기를 무대로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 산적, 그리고 나무꾼을 다루고 있다(→ 〈라쇼몬〉). 4사람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강간사건과 살인사건을 회상하는데, 한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제시하는 이런 기법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영화의 개념을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탐구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이키루〉는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일본 영화사상 최대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화는 암에 걸려 반 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하급 공무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가족의 애정 속에서 위안을 찾지만 배신당하고, 쾌락을 추구하지만 곧 환멸을 느끼게 되는데 결국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 강렬한 도덕적 교훈으로 가득찬 이 영화에서 구로사와는 전쟁이 끝난 뒤의 일본 사회, 특히 공무원의 위선적인 측면과 가족 제도의 붕괴를 지극히 사실주의적인 방식으로 묘사했다.

이 영화는 패전이 가져온 절망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던 일본인들의 정신적 상황과 삶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7인의 사무라이〉는 그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을 뿐 아니라 흥행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영화이다. 한 농촌을 배경으로 주군(主君)을 잃은 몇몇 사무라이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마을을 약탈하는 산적떼와 맞서서 싸운다.

이 영화는 그가 감탄한 할리우드 서부극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완전히 일본식으로 제작되었다. 〈살아 있는 존재의 기록 生きものの記錄〉(1955)은 미국과 소련의 핵실험에 대해 한 일본인 치과의사가 느끼는 공포심을 묘사한 매우 정직한 영화였으나 결론이 너무 비관적이었기 때문에 흥행에는 실패했다.

구로사와는 유럽의 고전문학을 일본풍으로 각색한 영화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백치 白痴〉(1951)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동명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피의 옥좌〉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밑바닥 どん底〉(1957)은 고리키의 희곡을 각색한 것이다.

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能]의 무대장치와 연기 방식을 도입한 〈피의 옥좌〉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각색한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구로사와의 영화는 자연주의적 경향을 추구하고 있던 일본 영화 예술에 형식에 대한 감각을 더해주었다. 좀더 상업적인 그의 작품에는 폭력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도 일본 영화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1960년에는 구로사와 프로덕션을 차리고 사장이 되어 작품을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으나 줄곧 자금난에 시달렸다. 이때문에 1960년대에는 대부분 사무라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락영화를 많이 만들었으며 〈요진보 用心棒〉(1961)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붉은 수염 赤ひげ〉(1965)은 오락적 요소와 감상적 인도주의를 결합한 작품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일본 영화는 심한 침체기에 빠졌고, 그의 구상은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영화사로부터 대부분 외면당했다. 그래서 미국의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손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이런 계획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1968년에 교토 스튜디오에서 미국의 20세기폭스사가 제작하는 〈도라! 도라! 도라!〉를 연출하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는 진주만 공습을 다룬 전쟁 스펙터클 영화였다.

그러나 작업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아 예산 초과를 염려한 제작자는 그를 해고하고 다른 감독을 기용했다. 구로사와는 6년의 공백 기간을 가진 뒤, 1970년 마침내 〈도데스 가덴〉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그의 첫번째 천연색 영화로 빈민가의 사람들을 다룬 환상적인 희극인데, 그의 걸작들이 보여주었던 날카로움을 대부분 되찾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 일로 의기소침해진 그는 예술가로서 침묵을 지키다가 1975년 소련정부의 초청으로 시베리아에서 〈데르수 우잘라〉를 만들었다. 시베리아에 숨어 사는 한 은둔자를 묘사한 이 영화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 1980년에 개봉된 〈가게무샤〉는 14년 만에 만든 사무라이 영화로서 일부 비평가는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격찬했다.

〈라쇼몬〉이 선구적으로 성공을 거둔 뒤 일본의 다른 영화 제작자들도 국제적으로 상당히 많은 팬을 얻었지만, 서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것은 여전히 구로사와의 영화였다.

그의 영화는 일본 예술의 요소들―섬세한 감각과 철학, 화려한 시각적 구성, 그리고 사무라이와 같이 일본 역사와 관련된 주제의 선택―과 서구적인 행동감각 및 극적인 효과를 독특하게 결합하고 있으며, 서양의 고전문학과 통속적인 추리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를 자주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