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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실용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를 함께 지닌 목재에 칠을 해서 만든 조형물의 역사와 발달.
목공예는 자연산의 목재를 직접 이용하기 때문에 제작과정이 단순하여 비교적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단층 목조를 골격으로 한 건축구조와 온돌 위의 평좌식 생활을 오랜 전통으로 하는 우리의 생활구조는 목공예의 다양한 종류와 폭넓은 사용을 촉진시켰다. 청동기와 철기시대에는 도끼를 비롯한 벌목용 도구를 통해 목공예의 존재가 간접적으로 확인되며, 최근에 창원 다호리 출토의 대바구니·목관 등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삼국시대에는 마족형 탁자가 그려진 고구려 벽화와 백제 무령왕릉 출토의 금은장식칠관, 그리고 신라의 궤개전·칠전을 비롯한 목공예 관계의 각종 관서는 목공예품이 부장용은 물론 일상용품으로도 다양하게 쓰여졌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뛰어난 공예기술을 바탕으로 당시의 귀족취향과 어울리는 나전칠기가 경함·염주합 등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으며, 그 우수성을 인정한 중국왕실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전함조성도감을 임시로 설치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가구는 쓰임새는 물론 조형미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엄격한 남녀유별의 유풍과 청렴·검소하면서도 격조있는 삶을 추구했던 당시의 숭문기풍을 바탕으로 남성 전용의 사랑방과 안방 및 부엌 등 수요층의 신분과 사용목적에 따라 가구양식도 각기 다른 특징을 보이면서 발전했다. 별도의 장식이 없이 나뭇결을 살린 단순한 구조를 통해 쾌적한 비례와 함께 수준 높은 조형미를 창출해낸 사랑방 가구는 백자와 더불어 조선시대 공예의 백미로 꼽힌다.
이밖에 염직·유리·가죽·종이·석공예 등이 각 시기의 생활구조와 맞물려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공예의 다양성은 조선시대의 경공장에 소속되었던 129종의 각종 공예기술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그러나 개화기와 근대기에 들어서 생활환경 및 제작수단이 크게 변화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공예전통이 전반적으로 해체되었다. 특히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조선미술전람회의 공예부를 통해 형성된 여러 부정적 체질은 오늘의 새로운 공예전통 수립에 적지 않은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식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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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목칠공예의 역사와 발달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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