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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의 역사와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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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실용적 가치와 심미적 가치를 함께 지닌 금속 조형물의 역사와 발달.

선사시대부터 우리나라 공예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던 금속공예는 BC 700년경인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다. 초기에는 청동검·동모 등 무기 및 종교의식에 필요한 의기가 주로 제작되었으며, 농경문청동기·쌍두령·팔두령·다뉴세문경 등은 의기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 가운데 다뉴세문경은 청동기시대 미술을 대표하며 당시 공예기술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동검과 동모의 거푸집[鎔范] 발견은 청동기의 국내 주조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서 주목된다.

철기시대에는 무기·농기구 등이 주로 제작되었다. 강하면서도 성형이 쉬운 장점을 가진 철은 각종 생활용기는 물론 생산도구에 발전을 가져와 공예품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고분에서 발견된 귀금속 공예품을 통해 우리나라의 금속공예가 4~5세기경에 이미 정교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누금·타출·투각·감장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제작된 이 시기의 금속공예품들은 계세사상에 기초한 당시의 사후세계관에 따라 피장자의 내세를 위해 주로 무덤에 부장했던 것들이다. 관모에서 귀걸이·목걸이·반지·허리띠·신발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각 부위를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장했는데, 이것은 지배계층의 신분적 위계를 나타내기 위한 목적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귀금속 위주의 금속공예는 삼국·통일신라 시대를 기점으로 재료가 점차 구리·철 등으로 바뀐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져 일반공예품은 물론 대부분의 불교공예품도 구리를 소재로 제작되었다. 종·향로·금고·운판·정병 등은 그 좋은 예이다. 고급재료를 쓰지 않는 대신에 구리 그릇의 표면에 은실을 감입하여 정교한 상징문양을 새겨넣는 은입사 기법이 크게 성행하여 종교적 장엄효과와 함께 고려사회의 귀족적 취향을 반영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금속공예의 화려한 치장경향은 사라지고 실용위주의 일상용기를 제작하면서 제기에도 유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실용적 경향은 금속공예기술의 퇴보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특수층이 전용하던 금속기명이 서민층에까지 저변화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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