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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교도들이 몸을 닦고 주문을 외우고 약을 먹으면서 칼노래를 부르며 칼춤을 추는 동학의 종교의식이자 수련방식 가운데 하나. 검무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돼지를 잡고 과일을 마련해서 깨끗하고 조용한 산에 들어가 단을 모으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행했다고 한다. 주문을 외어 강신을 청해 황홀경에 들면 나무칼을 잡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칼춤을 추는데 하늘에 한 길 남짓 솟아 한참을 머물렀다 내려온다는 것이다. 이 의식은 동양의 전통적인 음양사상에 따라 당시 서양 오랑캐가 출몰하면 주문과 칼춤으로써 적을 물리치고 나라와 백성을 보존한다는 반외세 혁명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1세 교주인 최제우가 좌도혹민의 죄로 처형당한 뒤 이 의식은 일반 민중 사이에서 은밀하게 전승되었다.
교도들이 몸을 닦고 주문을 외우고 약을 먹으면서 칼노래를 부르며 칼춤을 추는 동학의 종교의식이자 수련방식.
최제우가 득도한 이듬해인 1861년(철종 12) 박해를 피해 경주를 떠나 서공서(徐公瑞)의 주선으로 남원성 밖 교룡산성(蛟龍山城) 산골짜기에 있는 선국사(善國寺) 은적암(隱寂菴)에서 여덟 달 동안 피신하여 수양하는 사이 칼노래를 짓고 칼춤을 추었다고 한다. 노래가사는 〈용담유사〉에 한동안 싣지 않았고, 관변문서나 뒷날 필사본에 검가(劒歌)·검무 또는 시검가(侍劒歌)·격흥가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관변기록을 보면, 검무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돼지를 잡고 과일을 마련해서 깨끗하고 조용한 산에 들어가 단을 모으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행했다고 한다. 주문을 외어 강신을 청해 황홀경에 들면, 나무칼을 잡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칼춤을 추는데 하늘에 한 길 남짓 솟아 한참을 머물렀다 내려온다는 것이다. 최제우 스스로 밝혔듯이 이 의식은 한울님의 도움을 받아 서양 오랑캐를 제압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행해졌다.
서양의 학문을 음으로 보고 동학을 양으로 보는 동양의 전통적인 음양사상에 따라 당시 서양 오랑캐가 출몰하면 주문과 칼춤으로써 적을 물리치고 나라와 백성을 보존한다는 반외세 혁명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검결의식은 교도들이 많이 모인 대중집회에서도 공공연히 거행되었는데, 동학 초기부터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이르기까지 민중의 전투적 혁명의지를 고취하여 그 역사적 실천력을 담아낸 바 있다. 실제로 최제우가 체포되어 대구 장대에서 죽임을 당했을 때 적용된 좌도난정률(左道亂正律)의 중심내용이 바로 검결에 집중되어 있다. 최제우를 문초하고 처형한 경상감사 서헌순(徐憲淳:1801~68)은 "칼춤을 추며 흉한 노래를 불러 퍼뜨리고 태평스런 세상에 난리를 꾸미려 하고 은밀하게 당(黨)을 모은다"고 판결하고 국정을 모반하여 반란을 획책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검결을 지목했다.
1세 교주가 좌도혹민(左道惑民)의 죄로 처형당한 뒤 동학교문 안에서 이 의식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고 일반 민중 사이에서 은밀하게 전승되었다. 최제우를 처형한 가장 핵심적인 사유가 된 점이라든가, 후대 동학이나 천도교에서 한동안 이러한 사실을 뒷전으로 돌리려고 한 점은 검결이 그만큼 전투적이며 반체제적 혁명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를 통해서 동학이 종교운동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정치운동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창제배경
최제우의 집안은 원래 무반(武班)으로 그도 젊어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일삼았을 정도로 무인기질을 타고났는데 이런 기질이 검결의 한 배경을 이루었다. 김지하(金芝河)는 검결에 당시 경직된 지배 이데올로기와 유교 도그마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과, 동세개벽(動世開闢) 곧 후천개벽을 동세방략(動世方略)에 따라 풀어가려는 혁명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고 했다. 즉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웠던 남원 교룡산성에서, 끝없는 윤회의 사슬에서 대해탈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려는 은적암에서, 중요하지 않은 꼬리를 스스로 끊고 새로운 생체조직을 소생시키는 도마뱀 형상을 띤 뒷산 묘고봉(妙高峰)에서, 특히 장풍국(藏風局) 회룡고조라는 풍수사상으로 보아 기이한 특징을 지닌 지점에서, 물고 물리고 돌고 도는 궁궁을을(弓弓乙乙)의 형상을 갖춘 지연(地緣)을 좇아 검결이 창제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보아 검결은 민중적 삶에 기초한 '피난'과 '변혁'의 역동적 통일이 전형화된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검결은 동학농민혁명 때 남접의 조직 및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제우가 은적암에 피신해 있을 때 교도들에게 검결을 전파하였는데, 뒷날 남접의 중심인물이 된 서공서 및 신유갑(申由甲:법명은 三田), 서장옥(徐璋玉:법명은 一海)과 밤마다 은적암 뒷산 묘고봉에 올라 칼노래를 부르며 나무칼을 들고 함께 춤추었다.
검결의식은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동학농민군이 봉기했던 지역에서는 예외없이 수행되었다.
또한 고부민란 때는 칼노래와 칼쓰는 훈련을 통해 무장봉기의 예비과정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검결의식은 서양 오랑캐의 침공에 맞서는 보국안민의 방책을 종교의례라는 방식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검결의식을 행한 동학이 반외세·반봉건 혁명사상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내용
검결은 유·불·선의 전통과 민간신앙에 반봉건·반침략 의지를 창조적으로 종합하여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대장부 영웅의 우주개벽적 기개가 호탕한 기운으로 출렁이는 혁명적인 노래와 춤이다.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벽 후 오만 년 동안 처음 맞는 다시 없는 나의 때가 이르렀으니 한울님을 모시고 지극한 도를 깨친 대장부 영웅이 천하의 명검을 빼어들고 달려나가 생명과 진리의 칼춤을 추노니, 온 천지를 벗하여 홀로 우뚝 서서 해와 달과 온 세상, 온 우주를 뒤덮을 듯 용맹을 떨치는데 세속의 만고 명장인들 당할 자가 과연 누구이겠는가."
크고 넓은 경지에서 사람 살리는 큰 살림의 칼을 휘둘러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는 우주대변혁을 수행하는 대장부 영웅의 비장한 결의와 황홀감을 잘 노래했다. 노랫가락과 춤은 전하지 않고, 가사만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시호(時乎) 시호 이내 시호/부재래지(不再來之) 시호로다/만세일지(萬世一之) 장부로서/오만년지(五萬年之) 시호로다/용천검(龍泉劒) 드는 칼을/아니 쓰고 무엇하리/무수장삼(無袖長衫) 떨쳐 입고/이칼 저칼 넌즛 들어/호호망망(浩浩茫茫) 넓은 천지/일신(一身)으로 비켜서서/칼노래 한 곡조를/시호 시호 불러내니/용천검 날랜 칼은/일월(日月)을 희롱하고/게으른 무수장삼/우주에 덮여 있네/만고 명장 어데 있나/장부당전(丈夫當前) 무장사(無壯士)라/좋을씨고 좋을씨고/이내 신명(身命) 좋을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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