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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의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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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천광역시 북서부 경기만에 있는 강화군의 행정구역의 변천.

삼국시대에 강화군은 고구려의 혈구군이라고 대부분의 문헌에서 기록하고 있으나 〈대동지지〉에는 백제의 갑비고차현이라 했다. 이는 많은 문헌들이 백제의 영토였다가 고구려가 남하정책으로 중부지방을 점령하게 된 이후의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통일 후 신라는 이곳을 해구군으로 개칭하고 한주(지금의 광주)에 예속시켰다. 이때 영현으로 수진현(본래 백제의 수지현 또는 신지현으로 고려 태조 때 진강현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에 강화에 합속됨)·호음현(본래 백제의 동음내현 또는 임음현·아음현으로 지금의 하점면 일대인데 고려 태조 때 하음현으로 개칭했으며, 1018년에 강화에 합속됨)·교동현이 있었다.

940년에 강화현으로 개칭했다. 몽고의 고려침입으로 1232년 도읍을 강화로 옮겨 지군사로 승격시켰으며, 1270년 개성으로 환도하기까지 38년 동안 도읍으로 있었다(→ 몽골의 침략).

조선에 들어 1413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18년 부윤으로 승격되었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일시 피난했다가 환도 후 유수부로 승격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강화성이 함락되어 청나라와 강화를 맺었다.

숙종대에 53개의 돈대를 설치, 강화 내성·외성 등을 축조하여 강화의 방비를 강화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프랑스 함대가 강화성을 함락하여 약 1개월간 머물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에는 미군 함정이 잠시 초지진·덕진진·광성보를 함락했다.

1876년 운요호사건이 일어나 일본과 강화에서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는 등 조선 후기 서양세력의 물결이 밀려오는 창구로서 강화의 위치는 매우 중요했다. 별호는 강도·심주(沁州) 등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의해 군으로, 1896년 부로 되었다가, 1906년 다시 강화군으로 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옹진군과 김포군 검단면 및 강화군 전 지역이 인천광역시에 통합되었다.→ 교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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