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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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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스페인 북서부 지방
인구 2,700,864명 (2020년 추계)
면적 29,574㎢
언어 갈리시아어
대륙 유럽
국가 스페인

요약 스페인의 주. 옛 갈리시아 왕국의 영토와 거의 일치하며 서쪽과 북쪽은 대서양에 면해 있다. 410년경부터 수에비족이 통치하는 독립 왕국이었으나, 585년 서고트족에게 멸망했다. 1479년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통합되었고, 1495년 훈타델레이노데갈리시아 왕족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981년 오늘날의 자치체가 되었다. 산맥이 내륙을 에워싸고 있어 동쪽으로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와 레온, 사모라 주, 남쪽으로 포르투갈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축산이 중요한 산업이며, 공업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비고 항구는 스페인의 주요 어항에 속한다. 면적 29,574㎢, 인구 2,700,864(2020 추계).

갈리시아(Galicia), The flag of Galicia

ⓒ wikipedia | Public Domain

역사/자연환경

이 자치지역은 1981년 자치법에 의해 구성되었다. 옛 갈리시아 왕국의 영토와 거의 일치하며 서쪽과 북쪽은 대서양에 면해 있다.

갈리시아라는 이름은 BC 137년경 로마 군대가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 이곳에 거주하던 켈트족 갈리아인(Celtic Gallaeci)에서 따온 것이다. 갈리시아는 로마시대와 서고트족 시대에 이르러서는 세력을 넓혀 남으로는 두에로 강, 동으로는 레온 시 너머까지 뻗어 브라가에 있는 브라카라아우구스타 대교구의 일부를 형성했다. 410년경부터 수에비족이 통치하는 독립 왕국으로 있었으나, 585년 서고트족에게 멸망했다. 1479년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통합된 후 정치적 자치권을 많이 잃었으며, 1495년 훈타델레이노데갈리시아 왕족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9세기 중반에 갈리시아어를 문학작품에 사용하는 등 문화부흥을 꾀했는데 이는 향토지역에 대한 의식이 점차 싹텄음을 의미한다. 1936년 국민투표에서 갈리시아 자치체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으로 나타났으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강력한 중앙집권정부가 투표결과를 무효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1981년 오늘날의 자치체로 탄생했으며, 이때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갈리시아 평의회'와 단원제의회도 함께 신설되었다.

갈리시아는 구릉지가 많지만 그 높낮이는 비교적 고른 편이며 지역의 절반 이상이 해발 200~600m로, 200m 이하의 구릉지는 전체 면적의 1/5도 안된다. 산맥이 내륙을 에워싸고 있어 동쪽으로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 레온, 사모라 주와 남쪽으로 포르투갈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내륙은 개석(開析)현상이 심한 산맥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산맥은 대서양과 비스카야 만 연안의 해안평야지역 쪽으로 가면서 점점 낮아진다.

수많은 강과 그 지류들이 갈리시아를 지나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여기에서 스페인의 다른 지역으로 수력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연간 강수량은 적당한 편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1,000㎜를 넘지만, 심하게 침식된 토양이 수분을 거의 다 배수시켜서 강수량의 혜택을 조금밖에 받지 못한다. 마을들은 대체로 규모가 작고 외떨어져 있으며, 교구를 중심으로 촌락이 산재해 있다.

지형은 경작보다는 축산에 더 알맞아 축산이 중요한 산업활동이다. 그런데도 농업인구가 많고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농촌지역은 '미니푼디오'라고 하는 영세농지로 세분되었으며 농민들은 대체로 미니푼디오를 갖고서 경작한다. 그러나 미니푼디오를 경작한 뒤부터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할 수가 없어서 18세기 이후 갈리시아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20~35년에 해외 이주율이 특히 높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럽의 산업국가들로 이민을 가는 사람 외에도 스페인의 마드리드·비스카야·바르셀로나 등으로 떠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특히 남성 이주율이 높았기 때문에 인구 구성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했고, 또한 인구의 노령화 추세와 경제 생산력의 감퇴로 불균형은 심각했다.

경제

1차 산업(농업·임업·어업)이 이 지방 경제를 이끈다. 주요 농작물은 감자나 옥수수이며, 주로 돼지를 사육하는 영세자급농업이다. 농촌에 만연된 불완전고용문제로 많은 떠돌이 노동자들이 때가 되면 계절 일자리를 찾아 갈리시아에서 스페인 도처로 떠난다. 이 지역의 산지에는 목재가 굉장히 풍부하다. 또한 비고 항구는 스페인의 주요 어항 중 하나이다.

공업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이 1차 생산물 가공에 집중되어 있다. 어류가공업이 특히 중요하며 곳곳에 제재소가 있다. 라코루냐에 정유소를 세워 이 지역의 공업발달을 촉진시켰으며 엘페롤델카우딜로와 비고에는 대형조선소를 세웠다. 그러나 갈리시아의 경제는 아직 저개발상태로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낮다.

문화

갈리시아의 문화와 고유 방언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1668년 완전 분리될 때까지 스페인보다는 포르투갈 문화에 더 가까운 특성을 보이면서 비교적 고립상태에서 발달했다. 갈리시아어를 문학작품에 사용하는 것은 13세기 무렵 절정에 달했다. 프로방스어의 운율에 가까운 갈리시아어의 운율은 그당시 비교적 다듬어지지 않은 카스티야어의 운율보다 훨씬 세련되고 다양했다(→ 카스티야 방언).

그러나 그후 카스티야가 정치적·문화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자 갈리시아어를 문학작품에 사용하는 일이 드물게 되었고, 20세기 갈리시아의 거의 모든 작가들도 카스티야어를 사용했다. 20세기에 갈리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는 라몬 메넨데스 피달(1869~1968)로 그의 작품은 주로 스페인의 언어학과 문화에 관련된 것들이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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