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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방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독립군 운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1920년 일본군이 만주로 출병하여 무고한 한국인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 훈춘사건이라고도 한다. 당시 일본군은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에게 습격을 당해 많은 타격을 입었던 터라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만주에 군대를 출병할 것을 결심했다. 이를 위해서는 구실이 필요했는데, 마적단을 매수해 훈춘에 있던 일본영사관을 테러하게 한 뒤 범인을 조선인으로 몰아가고, 만주에 사는 일본인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일본군은 약 4개월 동안 만주에 있는 조선인을 무차별하게 학살했으며, 그 수는 수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되어 실로 참변이었음을 알 수 있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만주의 중국 군벌을 위협하여 공동으로 독립군 토벌작전을 감행했으나, 만주 거주 조선 민중의 저항과 중국 군대의 비협조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1920년 10월 일제는 중국 마적을 사주해 간도 훈춘 현[琿春縣]의 일본영사관을 고의로 습격하게 하고, 이를 빌미로 일본군을 대거 만주로 출병시켰다. 특히 독립군이 청산리와 봉오동전투에서 추격하던 일본군을 대파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무차별적인 한인학살 작전을 전개했다. 3~4개월에 걸쳐 수많은 한인 마을을 불태우고 재산과 식량을 약탈했으며, 한인들을 보는 대로 학살했다. 옌지 현[延吉縣] 이란거우[依蘭溝]에서는 30여 호의 전 주민을 몰살하고 마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10월 9일에서 11월 5일까지 27일간, 간도 일대에서 현재 확인된 학살피해자만 해도 3,469명에 이른다. 그 외 확인되지 않은 숫자와 3~4개월에 걸쳐 학살된 수를 합하면 적어도 수만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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