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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로마의 지도자가 된 교황은 도시의 미관과 편의를 도모하는 대대적인 사업을 벌였다. 성 베드로 성당의 개축과 여러 궁성들의 신축도 이러한 사업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이 시기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로마가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가톨릭교회가 도시계획을 완성해 가는 모습이다. 각 교회를 연결하는 도로가 정비되었고, 이 도로들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광장이 보수되고 치장되었다. 이렇게 단장된 새 광장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분수가 설치되었으며, 이 분수들은 오늘날에도 관광명소로 또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찬사를 받는다.

처음에는 단지 남아 있는 분수와 우물을 정비하는 일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교황 레오 10세(재위 1513~1521)는 1513년에 산타 마리아 인 돔니카(Santa Maria in Domnica) 옆에 나비첼라 분수(Fontana della Navicella)를 만들게 하였다. 이것은 옛 로마시대에 이시스(Isis) 여신에게 바쳐진 봉헌기념물을 모방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교황 식스투스 5세(재위 1585~1590)는 1588년 로마에 남아 있던 고대 유적 중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가 만들어 그의 이름을 딴 셉티초니움(Septizonium) 님페움을 보수하였다. 이는 이후 바로크 시대의 교황들이 고대 로마의 유적을 개선, 복원하고 그것을 현대식으로 활용하려는 의지에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 다시 말해 바로크 이전의 분수는 고대 유적에서 모티브를 빌려 왔으며, 이는 고대 로마시대의 물 문화를 배우려는 의지가 내재해 있었음을 암시한다.

분수의 제작과 설치는 다른 예술작품들처럼 교황들이나 귀족들의 취미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국가 사업으로 공공을 위한 복지시설과 다름없었다. 상수도가 미비했던 그 시대에 분수는 도시민들에게 생명줄과 같았다.

더욱이 분수를 만드는 일은 교황들이 지원했던 고대 로마 수로의 개·보수와 관련된 매우 신중한 사업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 특정한 사업을 위한 기관도 세웠다. 교황 직속의 분수설립위원회(Congregatione Sopra le Fonti)는 어느 곳에 어떤 분수를 어떻게 세울지를 정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교황 식스투스 5세는 펠리체 수로(Acqua Felice)의 물이 넘치는 것을 알았고, 열여덟 개의 새로운 분수를 만들기 위한 위치를 결정하였다.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분수를 만들었지만, 재정의 빈약함으로 인해 예술적 창조성은 발휘되지 못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전형적인 분수는 3단 접시 형태를 띠었는데, 세 개의 수저(혹은 접시)가 위아래로 층을 이루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이것은 이미 이전 시기인 고딕시대에 유행했던 형식이다. 예를 들면 니콜라와 조반니 피사노가 만든 페루지아의 도시 분수가 그렇다. 당시 로마는 이렇듯 건축학적으로 안정적인 분수를 선호했다.

이러한 형태를 취한 분수 중에서 유명한 것이 파르네제 광장(Piazza Farnese)에 있는 분수이다.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과 클로버 잎을 합쳐 놓은 듯한 기본 수저가 있고, 그 위에 화강암을 깎아 만든 중간 수저(혹은 접시)가 놓여 있다. 중간 수저는 카라칼라 목욕탕 근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원래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고대에 목욕을 위한 욕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윗부분은 비교적 화려하게 조각된 분수 봉(기둥)과 열린 조개를 연상시키는 접시가 있고, 그 위에 제3의 꽃봉오리와 유사한 형상의 분수 봉이 세워져 있다. 1540년 교황 파울루스 3세(파르네제 가문 출신)는 이 분수를 자신의 궁전 앞에 세우게 했다. 교황의 명령에 따라 안토니오 다 산 갈로(Antonio da San Gallo)라는 예술가가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르네상스의 봄기운을 제일 먼저 맞아들인 피렌체는 조각 장식을 한 분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위에 얹어진 접시를 받치기 위한 기둥은 이제 인간과 동물의 형상물로 치장되었다. 로마도 피렌체를 따라 조각 장식을 한 분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