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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음식의 과학

레모네이드와 비타민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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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이후, 유라시아 대륙민들이 대양 건너편에 새로운 대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금과 은과 향신료가 넘치는 신대륙의 보물을 꿈꾸며 초라한 범선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갔다. 항해는 괴로웠다. 집채만한 파도와 배멀미, 초라한 식사와 고된 노동, 열악한 위생 환경..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언제 이들을 덮칠지 모르는 괴혈병에 대한 공포였다.

괴혈병(壞血病, scurvy)은 당시 장거리 항해를 하던 선원들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대상이었다. 1740년 남아메리카 탐험을 위해 1,955명의 선원들을 이끌고 대장정에 나섰던 영국의 제독 조지 앤슨이 3년 9개월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에게 남은 선원은 고작 145명 뿐이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1,810명의 선원들 중 무려 1,300명이 괴혈병으로 인해 숨졌을 정도로 괴혈병은 뱃사람들에게 있어 최악의 공포였다. 당시 괴혈병은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질환이었으며, 오랫동안 배를 타야하는 선원들을 제외하면 거의 발생하지 않은 질환이어서 땅에서 사는 인간이 바다 위를 돌아다녀 바다의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억측이 따라다니곤 했다.

괴혈병(壞血病, scurvy)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괴혈병이란 비타민 C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질환이다. 비타민 C는 콜라겐을 합성의 도우미 역할을 한다. 콜라겐은 인체 구성 단백질 중 가장 많이 존재하며 뼈, 연골, 피부 등의 세포들이 단단하게 결합하고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비타민 C가 부족해지면 콜라겐이 제대로 합성될 수 없기에, 세포 간의 결합이 약해져서 쉽게 멍이 들고 잇몸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다가 심해지면 내출혈이 심해져 죽음에 이르는 괴혈병이 발생한다.

비타민C.

사실 비타민 C는 야채와 과일, 생고기 등에 픙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에, 채소나 날고기를 먹는 경우-육식동물의 경우 날고기를 먹기 때문에 괴혈병에 걸리지 않는다- 거의 생기지 않는다. 비타민 C가 ‘지리상 발견기’ 이전에는 거의 문제시 되지 않았던 건 푸성귀는 가장 흔하고 구하기 쉬운 먹거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상에서는 달랐다. 식품 보관 기술이 부족하던 당시는 대부분의 선원들이 알코올 음료(물은 쉽게 썩어서 부패가 덜한 술이 주된 음료였다), 바짝 말려 돌덩이처럼 굳은 비스켓(건빵)으로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항해가 길어질수록 비타민 C의 부족으로 인해 괴혈병에 걸리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고, 선원들의 공포도 극에 달했다.

비타민 C의 화학적 구조.

장기 항해를 하는 선원들이 끔찍한 괴혈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의사였던 제임스 린드(James Lind, 1716~1794)였다. 해군의 의사였던 린드는 처음에는 괴혈병을 몸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일종으로 여겨서 이에 산(酸)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초는 고기의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12명의 괴혈병 환자를 2명씩 6그룹으로 나눠서 각각 다양한 산성 물질-사과 발효주, 묽은 황산염, 식초, 바닷물, 매운 양념을 첨가한 허브티, 그리고 오렌지와 레몬 등 신맛이 나는 감귤류 과일-을 주었다. 6일 후, 6그룹의 환자들 중 5그룹은 증세가 악화되어 실험을 중단해야 했으나, 오렌지와 레몬을 먹인 한 그룹의 환자들은 증상이 사라지고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그는 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1753년 감귤류(citrus) 과일즙이 괴혈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한다.

레몬

하지만 초기에 린드의 주장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직 영양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이었고, 과일즙은 어린애나 먹는 음식으로 치부되어 거친 뱃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말에 귀를 기울인 사람도 있었다. ‘캡틴’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 선장이었다. 쿡 선장은 1772년의 항해에서 양배추를 소금과 식초에 절여서 발효시킨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선원들의 식단에 추가시켰던 것이다. 단지 양배추 절임 하나만 추가시켰을 뿐인데 결과는 놀라웠다. 1772년에서 1775년까지 3년 간의 긴 항해 동안에 쿡 선장의 배에서는 적어도 괴혈병으로 죽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괴혈병이 식단의 문제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증명된 후 영국 해군에서는 마지못해 라임 주스를 괴혈병 치료제로 해군의 식단에 추가시킨다. 이후 린드가 주장했던 대로 괴혈병으로 고통받는 선원들이 거의 사라졌다. 참고로, 이들보다 먼저 전세계를 탐험했던 중국의 정화(鄭和, 1371~1434) 함대에서는 배에서 콩나물을 길러 먹음으로써 괴혈병을 예방했다고 한다.

양배추를 소금과 식초에 절여 발효시킨 사우어크라우트.

비타민 C를 오랫동안 공급할 수 있어 선원들의 괴혈병 예방에 많은 역할을 했다.

ⓒ Jason Lam | CC BY-SA

이후 오랫동안 감귤류의 주스나 사우어크라우트처럼 신맛이 나는 감귤류 과일과 채소가 괴혈병 예방약과 치료제로 쓰였다. 그러다가 1930년 드디어 헝가리의 생화학자 알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örgyi, 1983~1986) 에 의해 비타민 C가 처음으로 분리되어 그 본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후 비타민 C가 콜라겐 합성에 관여할 뿐 아니라,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제이며 체내에서 항바이러스제로 기능하는 인터페론의 생산을 증가시키는 기능도 갖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로 인해 비타민 C는 암과 각종 질환을 예방하고 면역 효과를 증진시키는 ‘불로장생의 묘약’처럼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타민 C 예찬론’의 선두 주자는 라이너스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1994)이었다. 노벨상을 단독으로 2번이나 수상한 훌륭한 화학자인 폴링은 1970년 「비타민 C와 감기」라는 논문을 출판하며, 본격적으로 비타민 C 전도사 활동을 시작했다. 폴링은 비타민 C는 김기를 예방하고, 암과 각종 질환을 치료하고, 면역력을 증각시키는데 매우 큰 효과가 있으므로 이는 많이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비타민 C 메가도스 요법’을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비타민 C의 성인 1일 권장량은 100mg 정도이지만, 폴링은 이보다 10~100배 많은 1일 1~10g의 비타민 C 섭취를 주장했고, 스스로도 매일 3g 이상의 비타민 C를 먹었다고 한다. 비타민 C는 수용성이어서 섭취하면 심각한 과잉증이 나타날 수도 있는 지용성 비타민 A처럼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쓰고 남은 것은 소변 속에 섞여 배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타민 C가 많이 든 주스나 영양제를 먹고 나면 소변이 노랗게 변하곤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양을 오랜 시간 먹게 되면 신장 결석이 생기는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지나친 섭취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좋은 음식을 우리 몸에 정말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함을 아는 중용의 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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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본 콘텐츠는 Daum 백과사전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공동제작하였습니다.

이은희 집필자 소개

이은희는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신경생리학을 전공하고 졸업후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했다. 대학원 시절부터 취미생활로 다음카카오에 '가타카에서 살아갈 날들을 위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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