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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수술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기 신체에 송곳이나 칼과 같은 흉기를 댄다. 귀걸이는 이미 청동기 시대 유물에서 발견되며, 창세기 아브라함의 시종이 금 코걸이를 주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인간이 귀와 코를 뚫는 행위는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용을 위한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의 신체 변형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인데, 오늘날 여성들의 성형 수술도 그러한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인간이 성기에 칼을 대는 행위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오늘날 북반구 남성 대부분이 행하는 포경 수술은 인류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 포경 수술 지지자들은 음경의 표피가 과거 인류가 나체로 살던 시절에 귀두를 보호하기 위한 덮개였으나, 이제는 그러한 기능이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위생상 좋지 않다고 본다. 19세기 과학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러한 주장은 공감을 얻고 있다.

한편 남반구, 특히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여성들은 성기의 일부를 잘라내거나 변형하는 시술을 받고 있는데, 남성의 포경 수술과는 달리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이를 뿌리 뽑아야 할 악습으로 보고 있다. 여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관습이기 때문이다.

흔히 '여성 할례(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라고 불리는 이 관행은 전통, 그리고 관습의 영역에 속해 있으며, 거의 대부분 비전문적 시술자에 의해 이뤄진다. 아프리카에서는 연간 300만 명 정도의 여성들이 할례를 받는데, 시술 과정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할례를 받는 대상은 출생 직후의 영아에서 성인식을 치르는 10대, 그리고 놀랍게도 임신 중인 여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시술의 유형도 다양해서 음핵과 음순을 잘라내거나 아예 대음순을 꿰매 질 입구를 봉합하기도 한다. 소위 봉합형 할례 이후에는 약 6주 정도 두 허벅지를 꽁꽁 묶어두는데, 이는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꿰매진 대음순이 빨리 접합되도록 할 뿐만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실을 뽑거나 치료하는 행위를 막기 위함이다. 다만 소변과 생리혈이 빠져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봉합된 대음순 사이로 작은 나무 막대기 따위를 꽂아둔다.

시술은 대부분 부족 공동체에서 이를 전담하는 여인이 행하지만, 아주 드물게 어린 소녀들이 '후배' 소녀들을 상대로 행하기도 한다. 시술 도구로는 녹슨 칼, 면도날, 심지어 깨진 유리병 조각이 활용된다. 열악한 위생 환경에서 소독도 되지 않은 칼이 반복적으로 쓰이다 보니 각종 병균이 옮겨지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면역력이 약한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시술 이후 상처를 통해 각종 바이러스가 침투되어 질병을 앓다 죽기도 한다. 시술 부위가 곪아 터져 피부가 약해지고, 이로 인해 성행위와 출산 시 엄청난 고통이 유발된다. 또 상처는 종종 에이즈균이 침투하는 입구가 된다. 과격한 성기의 변형으로 성기능에 장애가 오고 성행위 시에도 쾌감보다는 고통이 수반되며, 이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거나, 요로 계통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페미니스트들은 할례를 결혼, 노동과 함께 아프리카 여성들이 일생 동안 겪어야 할 3대 고통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소중히 하는 북반구 사람들은 이 잔인한 관습이 왜 아직 남반구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음핵에 대한 혐오

여성의 성기를 절단하고 변형시키는 관습은 기원전 5세기 이집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이 관습에 대해 기록하면서도 어떠한 이유로 그런 시술을 했는지 이유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역사가와 인류학자들은 이러한 관행이 순결에 대한 강박 관념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인류 역사상 여성의 혼전 순결은 일부 지역에서 중시되었는데, 극단적인 곳에서는 아예 소녀의 음부를 봉합해버리거나 성적 쾌감을 자극하는 음핵을 제거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라 여긴 것이다.

할례에 관한 또 다른 설명은 성적 정체성에 관한 이집트인들의 믿음을 들 수 있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대방 성의 정령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여성의 음핵은 남성의 정령이 서린 곳이고, 반면 남성의 표피에는 여성의 정령이 있기에, 이들을 절제함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여성과 남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할례는 성인식과 같은 통과 의례에 해당한다.

여성의 음핵은 정말 미스터리한 기관으로 인식되어왔다. 자연과학, 특히 해부학이 발달했던 18세기에도 음핵의 존재 이유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다만 고중세 이래 음핵은 욕정과 정신병의 근원으로 이해되었고, 이는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영국,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 외과 의사들도 우울증에 걸린 여성이나 레즈비언을 치료하기 위해 음핵을 잘라냈다.

아프리카인들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인지 음핵에 대한 혐오는 인류, 특히 남성들의 공통된 강박 관념인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인들도 여성들이 음핵의 자극을 통해 성적 쾌감을 느끼고 성에 눈을 뜨며, 이로 인해 혼전 순결을 잃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할례를 하지 않은 여성은 아예 결혼 상대가 될 수 없는데, 이는 남성들이 그런 여성을 순결하지 못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봉합된 성기는 순결의 징표이며, 혼인 직전에 가족 구성원들이 이를 확인한 후 이를 다시 절개하여 연다. 물론 이는 첫날 밤 남편을 맞이하기 위한 것인데,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남성들의 암묵적인 요구로 인해 할례가 이뤄진다. 수단 일부 지역의 여성들은 질 입구를 좁혀야 하는데, 이는 명백히 남편의 성적 쾌감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보다 잔인한 것은 출산 후 넓혀진 질구를 다시 꿰맨다는 것이다. 역시 남편에게 쾌감을 주기 위해서인데, 할례의 끔찍한 고통은 출산 시마다 평생 수차례나 반복된다.

이 외에도 음핵이 성행위 시 남성을 공격하고, 아기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비상식적인 편견들이 있다. 음핵이 남성의 성기에 닿거나, 출산 시 아기의 머리에 닿을 경우 성기능 장애와 뇌수종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할례는 미관상, 그리고 위생상의 이유로 옹호되기도 한다. 음핵과 대음순이 보기 흉할 뿐만 아니라 소변, 질 분비물을 머금어 불결하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깨끗해지기 위해 그것들을 잘라내거나 봉합해버리는 편이 낫다고 하는데, 이 역시 타당하지 않다. 할례를 했을 때 '보기 좋아'진다는 것은 둘째 치고, 질 입구에는 오히려 빠져나가지 못한 소변과 생리혈, 질 분비물이 고여 각종 세균의 번식을 도울 뿐이다.

할례의 끈질긴 생명력

이토록 끔찍하고 잔인한 관행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사실 식민지시대부터 있었다. 유럽 식민지 정부는 야만적 풍습을 법으로 금했지만, 실제 그것들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유엔은 1980년대에 와서야 여성 할례를 주목했고, 1990년대부터 구체적인 근절 노력에 나섰다. 세계보건기구, 유엔아동기금(Unicef)이 중심이 되었고 NGO들도 동참했다. 유엔과 국제 사회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정부로 하여금 할례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토록 권고했고, 공무원과 부족 공동체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16개국에서 명시적으로 여성 할례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으며, 소수 국가에서는 미약하나마 10년 만에 할례를 받는 여성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가에서 이 잔인한 관행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그간 대략 1억 명 정도의 아프리카 여성이 할례를 받았으며, 하루에만 해도 평균 8,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특히 소말리아, 기니, 시에라리온, 수단에서 할례를 시행한 경우는 90퍼센트 이상이고, 부르키나파소, 차드, 에티오피아, 감비아, 기니비사우, 말리, 모리타니 등에서도 40~70퍼센트 가까이 된다. 물론 은밀하고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할례를 다 포착할 수는 없고, 아예 데이터를 구하지 못한 아프리카 국가도 20개나 되므로 실제 할례로 고통받는 숫자는 더욱 클 것이다.

유엔과 NGO들을 좌절시키는 사실은 아프리카에서의 할례가 부모의 교육 수준과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단에서의 할례 근절 운동이 70년 전부터 시작되었음에도 할례율은 90퍼센트나 되며, 교육을 받은 부모가 그렇지 못한 부모보다, 그리고 부유한 부모가 빈곤한 부모보다 할례를 더 강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통계는 교육과 계몽을 통해 할례를 없애겠다는 국제 사회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부모들 대부분은 할례가 고통스럽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관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일부 부유한 부모들은 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취를 병행하는 외과병원을 찾는데, 그래서 최근 동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도시에는 할례를 전문으로 하는 현대식 병원이 늘고 있다. 아프리카의 상류층, 그리고 유럽으로 이주한 아프리카인들이 딸의 방학을 이용해 그곳을 찾기 때문이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자국민 또는 영주권자가 가족에게 할례를 시키거나, 또는 외국에서 할례를 시키는 행위를 불법화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를 확인하고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다.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흑인 소녀들도 할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다가, '할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며 이를 당국에 고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할례를 법으로 금지한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딸이 부모를 고발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전족과 여성 할례

국제 사회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할례가 아프리카에서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초 국제 사회는 여성과 아동 인권 향상 캠페인, 교육과 계몽, 도시화의 진전으로 할례가 소멸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이러한 예측이 빗나갔음을 자각하면서, 최근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NGO들은 아프리카 정부를 비난한다. 할례를 범죄로 규정한 법만 제정했을 뿐, 사실상 할례 시술자와 부모를 처벌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보다 급진적 성향의 NGO들은 시술자와 부모들에 대한 적대감마저 표출했다. 그간 이들을 '무지하기 때문에 무죄'로 생각해왔지만, 그런 관대한 시선이야말로 할례 근절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무지하든 아니든 할례를 시킨 부모와 시술자에게 죄의식을 느끼도록 해야 하며, 정부는 이들을 구속, 처벌하는 모습, 즉 일벌백계의 사례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자칫 인종주의적 시각에 치우쳐 전통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아프리카인들의 집단적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는 할례의 고통과 위험성은 인정하지만, 할례 자체를 완전 폐지하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잔인할지언정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수천 년간 할례라는 관습을 통해 공동체가 요구하는 여성성과 가치를 익혀왔는데, 어느 날 이를 갑작스럽게 범죄시하는 것은 그들의 조상과 부모를 죄인 취급하는 것이며, 공동체의 가치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비유하자면 아프리카의 할례는 해류를 따라 표류하는 빙산과도 같다. 음핵을 자르거나 봉합하는 관행은 물 위로 드러난 자그마한 봉우리일 뿐, 그 밑에는 할례 관행을 떠받치는 거대한 얼음, 즉 사회적 합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성 우월주의다. 여성을 억압하고 성적 자유를 박탈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집단적이고 무의식적인 합의인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아프리카 할례 관습의 수혜자는 아프리카 남성들이다. 어머니와 딸들은 수천 년간 남성의 지배 구조가 낳은 잔인한 악습을 전통과 미덕으로 생각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할례는 중국의 전족 관습을 많이 닮았다. 어린 여자아이의 발을 꽁꽁 묶어 성장을 억제하는 이 기이한 관습 역시 여성을 억압하고 성적으로 착취하고자 했던 중국 남성들의 잔인한 폭력이었다. 그들은 1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성인 여성의 발을 선호했으며, 결혼 상대를 구함에 있어서 발의 크기를 꼼꼼히 따졌다. 발이 작다는 것은 그만큼 부모가 철저하게 딸의 발을 동여맸다는 뜻이고, 또 그런 부모 슬하에서 자란 규수일수록 남편에게 순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족을 한 여성은 특수하게 제작된 신발을 신지 않으면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실내에서 여성들은 조심스럽게 뒤뚱거리거나 무릎을 바닥에 대고 기어야 했는데, 그 모습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여성들은 당연히 사회적 활동도 제약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 또한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주의적인 사회가 바라는 결과였다.

전족 관습은 남성들의 성적 취향과도 관계가 있다. 이 관습은 그 기원부터가 여성의 작은 발을 선호하는 지배 계층의 성적 선호에 있었으며, 이들은 뒤뚱거리며 걸을 때마다 여성 성기 주변의 근육이 발달하여 성교 시 남성의 쾌감을 높여준다고 믿었다. 실제로 청나라 시대에는 전족 여성과의 성관계를 즐길 수 있는 매뉴얼이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중국 남성들의 이기적인 취향으로 인해 1,000년 동안 10억 명 이상의 중국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발이 곪고, 뼈가 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한족의 문화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 만주족 청나라 정부는 17세기에 전족 관행을 법으로 금지했지만 뿌리 깊은 지배의식을 가진 중국 남성들의 의식 구조를 쉽게 바꿀 수 없었다.

전족 관습의 소멸은 19세기 후반에 확산된 사회 진화론과 20세기 여성계의 반발, 그리고 이를 법으로 금지한 중국 공산당 정부의 강력한 단속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사회 진화론자들은 중국 여성의 전족 관습이 지속될 경우 중국인들이 대대손손 허약한 다리를 가지고 태어날 것이라 믿었다. 사회 개혁을 추구했던 공산당 정부는 전족을 없어져야 할 구시대의 악습으로 규정했고, 전족 여성용 신발 공장을 폐쇄하는가 하면, 지방 정부로 하여금 전족을 행하는 부모에게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오늘날 중앙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에 여전히 전족 관습이 남아 있긴 하지만, 1,000년이나 지속되었던 전족 관습은 매우 성공적으로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폐지되었다.

나는 할례받지 않은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

전족의 소멸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무엇보다도 중국에서는 외부의 압력이 아닌 내부의 자각을 통해 스스로 악습을 폐지했다. 물론 인간의 평등을 지향하며, 노동력을 중시하는 공산당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고, 중국인 다수가 억압적인 구체제의 악습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과연 아프리카에서도 이것이 가능할까. 애석하게도 아프리카의 사정은 100년 전 중국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우선 할례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감이 너무나도 미약하다.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이 할례를 하지 않은 여자아이를 조롱하는 동요를 부르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서 포경 수술을 하지 않은 성인 남성을 조롱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할례를 받기 전 소녀들은 할례의 고통을 다른 누군가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어머니들은 할례의 고통이 심하겠지만, 시집을 못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딸에게 말한다. 어떤 부모들은 음핵을 제거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여성 조상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며, 부족 전체에 불행이 닥친다고 믿는다. 사회적 편견과 조롱, 그릇된 오해와 정령 신앙, 이 모든 것들이 아프리카인들의 심성 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최근 들어 할례를 근절하겠다는 선언을 하고는 있으나 과연 얼마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그러한 선언들은 대부분 서방 국가들의 원조를 더 얻어내기 위한 립서비스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라이베리아의 엘렌 존슨 설리프 대통령의 최근 할례 근절 선언은 주목을 끈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아프리카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베리아 사회는 여전히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를 중시하는 부족장과 종교 지도자들이 지배하고 있어 대통령의 의지가 어느 정도 관철될지는 불투명하다. 실제로 대통령의 선언 직후 마을 부족장들이 정부의 할례 근절 정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여성 대통령이 할례 폐지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여러모로 아프리카에서 할례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할례 관습의 수혜자이며 사회의 지배자인 남성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례에 대한 남성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머니와 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다.

이를 인식한 일부 인권 단체들은 '나는 할례받지 않은 여성과 결혼하겠다'는 켐페인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다. 실제로 수단 북부 마을의 기혼 남성 대부분은 부인과의 성교가 고통스럽다고 토로한다. 봉합형 할례를 한 성기에 음경을 삽입하는 행위는 무척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고, 간혹 양쪽 모두 출혈을 겪기 때문이다. 남성들 대부분은 출혈과 감염에 대한 걱정과 불만을 토로했으며, 아예 젊은 남성들은 다음 부인으로 할례를 하지 않은 여성과 결혼하고 싶다는 견해를 내비쳤다(수단은 일부다처제 국가이다).

그러나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의사 표현일 뿐이다. 할례율이 90퍼센트에 가까운 수단에서 할례는 마치 자동차의 우측통행과 같은 사회적 합의인데, 이를 거부하는 것은 혼자 좌측으로 차를 모는 것과 같다.

이러한 이유로 아프리카의 할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는, 즉 위로부터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스스로 며느리만큼은 할례받지 않은 여성으로 삼겠다 선언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면 어떨까. 또 대통령이 기독교와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교리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면 어떨까. 신체를 훼손하는 할례는 신의 형상을 부정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는데,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인간의 육신이 신의 성스러운 형상을 본떠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할례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유엔과 국제 사회는 진정한 의지와 열의를 가진 지도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돕는 한편, 말로만 할례 근절을 외치는 지도자들과는 보다 대담하고 솔직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할례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조용하고 은밀한 집단 폭력이어서 지도자들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국제 사회의 목소리에 수동적으로 찬성하고는 한다. 지도자들의 이러한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프리카의 할례도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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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욱 집필자 소개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사를,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공공정책학을 공부했다. 현재에는 주 세네갈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세네갈, 말리, 감비아, 카보베르데, 기니, 기니비사우 등 서아프리..펼쳐보기

출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저자윤상욱 | cp명시공사 도서 소개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이 겪어온 고통과 모순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누가 언제 어떻게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리카는 그 굴레에서 벗..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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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누구를 위한 할례인가?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윤상욱,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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