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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야기를 따
라가는 한옥
여행

최태하가옥

하늘과 맞닿은 한옥

요약 테이블
소재지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281
이용 시간 10:00 ~ 17:00
최태하가옥

ⓒ 시공아트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따금 건축 감상의 실마리를 내주지 않는 한옥이 있다. 이런 집은 사람을 미궁으로 밀어 넣고도 태연하다. 이때는 당황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속을 보이지 않는 한옥의 성품을 탓하지 말고, 그저 기다리며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한다. 충분한 기다림을 확인한 연후에야 내밀한 속내를 보여 주는 한옥이 있는 것이다. 언뜻 불친절해 보이는 이 한옥이 중요민속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된 최태하가옥이다. 최태하가옥은 법주사에서 멀지 않다. 보은의 자랑인 법주사 팔상전도 구경하고, 우리나라 8경에 이름을 올린 속리산도 올라 보자.

괴이한 홰나무는 수수께끼의 시작이다

건축적 상식을 뛰어넘는 한옥을 만나면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삶의 흔적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제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을 차지하고 앉은 건물, 모호하게 시작해서 느닷없이 끝나는 공간의 움직임, 스무고개라도 하듯 엉뚱한 곳에 자리 잡은 건축 재료들. 그러나 숱한 이야기를 품은 과거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쑥 제 얼굴을 드러내기도 한다.

방문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홰나무는 수수께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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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지정한 건축 문화재의 정문이 철 대문이라니! 혹시 집을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기까지 했다. 1970년대 도시에서 흔히 쓰이던 철문이 사랑채로 들어가는 정문 노릇을 하고 있다. 약간은 실망스럽고, 약간은 당혹스럽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대문이야 시대에 따라 바꿔 달 수도 있는 것. 그렇게 느긋하게 마음먹은 것은 개인적 성품의 온화함 때문만은 아니다. 말하자면, 문짝처럼 사소한 일에 마음을 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수령이 200여 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홰나무가 대문 위로 머리를 풀어 헤치고 서 있었다. 오랜 세월이 덧입혀진 자연의 숭고함에 순간 압도당했지만, 이곳이 살림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이내 아연해졌다. 도대체 이처럼 크고 괴이한 나무가 살림집 마당을 차지하고 있다니! 자그마한 사랑채는 나무에 눌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낯섦은 수수께끼의 시작일 뿐이었다.

최태하가옥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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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위풍당당한 사랑채가 나타나기 십상이지만, 최태하가옥은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멀리 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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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사랑채 옆으로 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다시 문이 나온다. 순간 들어갔던 문에서 튀어나와 다시 문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이 집은 특이하게도 솟을대문이 사랑채 옆에 붙어 있다. 한옥의 일반 상식을 무너뜨린다. 이 특별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미궁으로 빠지고 만다. 길을 잃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철문, 나무, 사랑, 솟을대문을 하나하나 눈으로 되짚으며 다시 안으로 들어선다. 솟을대문에 이어 안채로 이어지는 중문이 나오고, 중문을 들어서면 이번에는 안채의 지붕이 생소하다. 사랑채에는 기와를 올리고 안채에는 왜 이엉을 얹었을까? 무슨 까닭이 있는 것일까? 이제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기로 한다. 담장으로 둘러쳐진 공터는 또 무엇인가? 집 구석구석을 돌아보지만 물음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 궁금증을 풀 단서는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한옥 감상은 때로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기도 하다. 작은 실마리를 잡고 그 의미를 물어 나가야 한다. 그 실마리를 집의 구조에서 찾아낸다면 쉽겠지만, 때로는 단순한 생활의 흔적이 풀이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 살기 위해 지은 집이라면 생활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생활이 불편하면 집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그래서 그 흔적을 통해 집의 구조를 풀어 나갈 수 있다. 집의 구조와 생활의 자취는 기찻길처럼 늘 함께한다.

특이하게도 솟을대문이 사랑채 옆에 붙어 있다. 일반 한옥과는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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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앉아 집 자체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한옥의 매력이다. 이를 '자경(自景)'이라고 하는데 최태하가옥의 사랑채는 자경이 특히 빼어나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으면 앞에 있는 홰나무나 뒷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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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을 꾸러미로 꾸려 사랑으로 돌아와 툇마루에 앉는다. 다시 홰나무를 마주한다. 마당에 이렇게 큰 괴목(槐木)을 심은 살림집은 본 기억이 없다. 단정한 느낌이라도 든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지만, '단정'하고는 도무지 거리가 멀다. 애초에 사랑채를 다른 목적으로 짓지 않았다면, 이런 광경을 연출할 수는 없다. 크게 자라는 나무를 마당에 심는 것이 풍수적으로도 좋지 않은 데다 형태를 존중하는 우리 정서상 제멋대로 가지를 뻗는 나무를 살림집 마당에 심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채가 안채보다 100년 이상 앞서 지어졌다는 집주인 최재덕의 의견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부재의 크기와 화려한 창호의 모습은 기와집과 다름없지만, 지붕에는 이엉을 얹은 안채

민간 신앙의 한 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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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품은 집, 초가

안채와 사랑채 모두 19세기 말에 지어졌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그러나 당시에 지어진 여느 사대부의 집보다 안채의 공간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다. 최재덕의 증조부가 사헌부 감찰을 지내 감찰 댁이라는 택호(집주인의 고향이나 관직을 붙여 부르는 집 이름)가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소통의 중심 공간이 사랑채가 아니고 안채라는 점이 아무래도 낯설다. 시기적으로 성리학이 흔들리던 시기임을 감안해도 사랑채를 집의 한구석으로 밀어 두고, 솟을대문까지 안채로 이어지도록 집을 짓는다는 것이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다. 사실 솟을대문이 아니라도 이 집의 모든 문은 안채로 통한다. 그래서 집안의 내력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태하가옥은 원래 보은에 사는 화순 최씨 종가다. 종가의 며느리였던 김선묵은 남편과 자식을 먼저 보내고 홀로되자, 대를 잇기 위해 최태하를 양자로 들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말하자면, 이 집이 지금의 꼴을 이룰 당시 집의 중심인물이 김선묵이라는 여인임을 알아야 안채를 중심으로 짜여진 집 전체의 공간 구성이 이해된다.

둥지로서의 집은 하늘을 품는다. 그래서 하늘은 우리의 마음이 향한 곳이다. 둥지를 닮은 이 집 어디를 보아도 자연에서 오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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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가 집의 중심이라면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도 안채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채가 중심 건물이라면 왜 굳이 안채에 이엉을 올려 초가로 지었을까? 이것은 어느 정도 풍수와 관련 있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마을의 모습이 학을 품은 형상인데, 알을 품은 학에게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없어 지붕을 가볍게 하려고 기와 대신 이엉을 올렸다는 이야기다. 풍수를 중히 여겨 지붕까지 바꿨다면, 저렇게 크고 무거운 홰나무를 보존한 까닭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안채 툇마루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자니 집이 조용히 전해 준 실마리는 기둥 위에 있었다. 바로 안채의 보아지(기둥 위에서 보를 받친 작은 나무 부재)에 새겨진 길상문이다. 길상문은 장수나 행복 따위의 좋은 일을 상징하는 무늬인데, 보아지에 숨은 길상문은 壽福貴富(수복귀부)다. 네 개의 보아지에 수명을 뜻하는 壽자를 처음으로 하여 차례로 한 자씩 그려 넣었다. 다른 집에서라면 보기 힘든 장면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많은 의문점이 풀렸다. 일단, 최태하가옥이 현재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된 데에는 풍수가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랑채 앞에 자리한 홰나무가 아무래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사랑채가 먼저 이곳에 있었고, 이후 안채를 지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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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지에 새겨진 길상문. 둥지 속의 새가 소망을 품었다. 한 여인의 소망을 품었다. 그리고 먼 시간을 달려와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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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늘 하늘을 동경하고, 하늘과 같이 호흡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 하늘은 여느 민족의 하늘처럼 인간과 동떨어진 하느님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에게 하늘은 돈 달라고 복 달라고 빌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이 샤머니즘과 갈라지는 부분이다. 하늘은 우리가 직접 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은 곳이다. 그리하여 신성하지만 살가운 하늘이다. 한옥의 지붕은 특히 하늘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지붕과 관계된 이름에는 '새'라는 말이 많이 들어간다.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지만 옛날에는 기와를 '디새'라고 부르기도 했다. 처마 끝 부분을 예쁘게 마무리해 주는 기와를 여전히 막새라고 부르고, 합각 쪽에 대는 서까래를 집우새라고 말한다. 그리고 추녀 옆으로 막 날아오를 듯 날렵하게 생긴 서까래를 드르새라고 부른다. '새'라는 이름은 기와집의 지붕 재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어서 초가에 얹는 이엉, 예를 들어 띠나 억새 등 볏과 식물 모두를 새라고 한다. 이는 하늘이 신분의 귀천을 떠나 우리 민족 모두의 소통 대상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한옥에서 하늘은 늘 그렇게 우리에게 가까이 있었다.

솟대, 여인의 소망을 담다

하늘을 동경하는 문화는 어느 정도 솟대 문화와 관계있다. 솟대 문화는 원시 시대 농사에 새를 이용하던 조전(鳥田)에서 출발한 것으로 요즘 이를 이용한 것이 오리 농법이다. 이처럼 농경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솟대 문화는 우리 전통 문화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최근까지 남아서 마을을 지키던 신앙이다. 나무는 땅에서 하늘을 향해 자라난다. 그래서 나무는 땅과 하늘을 잇는 신령한 생명이다. 거기에 앉은 새가 하늘의 전령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보아지'는 나무 위에 앉은 새이기도 하다. 거기에 길상문을 넣은 것이다. 그러니 안채의 기둥은 단순한 기둥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잇는 나무이고, 하늘의 전령인 새가 머무는 둥지인 셈이다. 집이 솟대인 한, 솟대와 가장 어울리는 집은 기와집이 아니라 둥지를 닮은 초가다. 초가는 기와집과 달리 집을 구성하는 어떤 것도 인공적이지 않다. 다듬지 않은 돌과 흙을 버무려 쌓은 기단, 그 위에 아무렇게나 놓은 주춧돌, 다시 그 위에 세워진 나무 기둥, 그리고 지붕을 덮은 이엉까지. 초가는 이 땅에 씨 뿌려져 자라난 자연이다. 김선묵은 집을 솟대로 만들어 하늘과 소통하고 싶었을 것이다. 솟대를 닮아 부정 탈 것이 없는 초가에는 가족을 모두 잃고 양자를 들인 한 여인의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이곳의 길상문은 산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솟대 문화로 풀면 사랑채의 홰나무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집을 초가로 지을 정도로 풍수를 중시했다면, 풍수적으로 재앙이 될 홰나무를 그냥 남겨 둘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홰나무가 사랑마당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홰나무가 이제 단순한 정원수가 아니라 하늘과 땅을 잇는 신령한 나무가 되었다는 뜻이다. 사랑채의 기와를 굳이 걷어 내지 않은 까닭이다. 홰나무가 있었기에 사랑채는 사랑채로서의 위신을 지켜 올 수 있었다. 그것이 안채를 지어 집을 늘리면서도 나무를 베어 내지 않은 이유다.

최태하가옥은 땅에서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신령스러운 집이다. 그렇게 솟아올라 나무가 되고 새가 되어 하늘과 하나가 되었다. 최태하가옥에서 인공이 가장 많이 가미된 담장과 사랑채도 인공적인 재료라고 해야 오로지 지붕을 덮은 기와뿐이다. 기단을 만든 돌들도 자연에서 가져와 최대한 자연스럽게 쌓아 올렸다. 주춧돌도 막돌을 쓰고 그 위에 그렝이질(기둥 밑동을 주춧돌에 맞게 잘라 내는 일)을 한 기둥을 올렸다. 최근 보수를 하며 다시 쌓은 담장이지만, 역시 자연스럽게 흙과 돌이 땅인 양 뒤섞이며 솟아올라 기와를 받고 있다. 집에 대한 이런 태도는 안채 아래 지어진 찬광(반찬거리를 넣어 두는 광)에까지 이어진다. 보통 찬광은 청판(마루판 등 판재)을 깔고 벽체로 얇은 판재를 쓰지만, 이곳에는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청판 대신 바닥에 흙을 깔고 두툼한 흙벽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 이엉을 덮어 둥지를 지었다. 땅이 자연스럽게 솟아올라 찬광이 된 것이다.

신령한 나무를 마주한 때문일까? 마치 벽이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듯하다. 막돌을 쌓아 만든 기단은 안채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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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광은 음식을 보관하는 곳이다. 음식 없는 생명은 있을 수 없는 것. 찬광을 흙과 돌로 쌓은 까닭이다. 전통 한옥의 찬광을 이렇게 만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개는 나무 판으로 벽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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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에 오르는 시간, 신령한 나무가 그림자를 길게 늘여 배웅에 나선다. 나무로 집을 짓는 우리의 전통에서 집은 하늘과 하나 되는 곳이다. 최태하가옥이, 집을 경제적 가치만으로 따지는 우리에게 오랜 시간을 거슬러 와 알려 주는 집의 가치다. 동양의 시간은 신의 심판을 기다리며 앞으로만 내달리는 서양의 시간과 달라서 늘 우리에게 회귀한다. 그래서 고택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렇게 체온을 가지고 돌아온 옛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다. 차창 밖으로 밑동으로만 남은 한 해가 들판에 실려 뒤로 달려간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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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오르는 길

보은에는 우리나라 어디에 가도 보지 못할 건물이 하나 있다. 바로 법주사의 팔상전이다. 국보 제55호로 지정된 팔상전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5층 목조탑이다.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벽면을 두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팔상전 외에도 보물로 지정된 원통보전과 대웅보전이 줄지어 있어 건축 기행을 하는 이라면 황금 같은 곳이다.

건축 기행은 느긋해야 한다. 때문에 많이 움직이는 산행과 결합하여 일정을 잡는다면, 음양의 기운까지 맞출 수 있어 금상첨화다. 법주사 인근에서 하룻밤 쉰 후, 우리나라의 8경 중 하나인 속리산에 올라 보자. 법주사에서 출발해 법주사로 돌아오는 등산로는 3개가 있는데, 법주사 → 세심정 → 복천암 → 문장대 → 신선대 → 경업대 → 금강골 → 법주사로 연결되는 12km 남짓의 등산로가 적당하다. 최태하가옥이 꿈꾸었던 하늘에 좀 더 가까이 올라가 볼 수 있다.

최태하가옥 → (35분) → 법주사 팔상전(속리산)

최태하가옥 인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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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집필자 소개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들어가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빠져들었다. 현재 한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활동으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출처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 저자이상현 | cp명시공아트 도서 소개

저마다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살림집 한옥 17곳과 성당, 절집, 서원 등 24곳의 개성 넘치는 전통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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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최태하가옥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이상현, 시공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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