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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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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주요활동 | 1930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 3・1절 기념식에서 연설, 1938년 대한여자애국단 메리다지부 조직 및 단장 역임, 1940년 대한여자애국단 메리다지부 서기 역임, 1944년 대한여자애국단 메리다 유카탄지부 단장직 퇴임 |
포상훈격 | 2018년 건국포장 |
관련 인물/단체 | 대한인국민회, 대한여자애국단 |
1907년경 출생하였으나, 정확한 출생지는 확인되지 않으며 원적은 경기도이다. 1905년 4월 부모가 멕시코로 이민하여 그곳에서 태어난 한인 이민 2세이다. 1911년 베라크루스Veracruz주 남단의 와하케뇨Oaxaquenō(오학기나) 지방으로 300여 명의 한인이 집단 이주하였는데, 가족과 함께 오학기나로 갔던 것으로 보인다. 1914년 당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오학기나지방회가 설립한 일신학교(日新學校)의 병반(丙班)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 3・1절 기념식 및 광주학생운동 지지를 표명하는 집회에서 학생들과 더불어 연설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메리다지방회는 1909년 멕시코 최초이자 공식 한인 단체로 창설된 이래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38년 8월 29일 국치기념식을 마치고 메리다에서 정식으로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 메리다지부가 결성되었다. 동년 9월 22일 대한여자애국단 메리다지부 초대 단장으로 선임되어 1939년까지 연임하였다. 1939년 8월 10일 공포서(公布書)를 통하여 멕시코 재류 여성 한인들의 협력을 독려하며, 인권을 역설하여 국가와 사회에 대한 여성의 참여를 주장하였다. 그는 여성의 사회 참여를 배제하던 한국의 풍속을 비판하며 이를 망국의 원인 중 하나로 인식하였다.
1940년에는 대한여자애국단 메리다지부 서기를 맡아 1941년까지 연임하였다. 1943년 메리다지방회 3・1 독립선언 제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독립군에 관하여 연설하였다. 이어 1944년까지 대한여자애국단 메리다 유카탄지부 단장을 역임한 뒤 1945년 총무로서 활동하였다. 대한여자애국단의 메리다지부는 광복군후원금, 순국선열기념금, 군자금 등 의연금을 모금하여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송금하였으며, 한인 이민자 자녀의 민족교육과 독립운동 지원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집필자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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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보고서」, 1914.12.23, 『미주국민회자료집』 9,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 ・ 「在墨同胞人口登錄(大韓人國民會 中央總會 人口調査部)」, 『미주국민회자료집』 5, 2005
- ・ 『신한민보』 1909.5.26, 1930.3.20, 1938.9.22, 1939.8.10, 1940.3. 21, 1941.4.24, 1943.4.22, 1944.5.4, 1945.2.15, 1945. 11.29
- ・ 이자경, 『멕시코 한인 이민 100년사 - 에네켄 가시밭의 100년 오딧세이-』 상,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기념사업회, 2006
- ・ 김도형, 「멕시코 지역 대한인국민회의 조직과 활동」, 『국사관논총』 107, 국사편찬위원회, 2005
출처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인명사전으로>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하여 그동안 축적된 연구기반 위에서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사전적으로 종합, 정리하기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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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대순 –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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