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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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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 | 고려시대 |
성격 | 다리, 석교 |
유형 | 유적 |
소재지 |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선죽동 |
분야 | 예술·체육/건축 |
요약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시대 돌로 가설한 다리. 석교.
내용
원래 이름은 선지교(善地橋)라 하였으며, 다리의 동쪽에 한석봉(韓石峯) 글씨의 비(碑)가 있다.
돌기둥과 노면(路面)이 맞닿는 부분에는 시렁돌을 철도의 침목처럼 올렸으며, 이 돌은 좌우로 거의 튀어나오지 않았다. 돌기둥 위에 마련된 노면에는 양쪽 가에 기다란 난간돌을 놓았고 그 사이를 여러 줄의 판석(板石)으로 깔았다.
노면 위에는 교량의 난간주 구실을 하는 돌기둥들을 3단으로 쌓았는데, 맨 아랫돌은 구형단면(矩形斷面)의 돌로서, 일정한 치수의 돌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중간돌 사이에는 각 돌기둥을 이어주는 8각의 돌을 꽂았고 맨 윗돌은 비석의 끝처럼 완만한 화강석을 사용하였다.
선죽교는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가 이성계(李成桂)를 문병하고 오다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李芳遠)이 보낸 조영규(趙英珪) 등 4, 5인의 철퇴에 맞아 피살된 곳으로 유명하다. 돌다리에 정몽주 혈흔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주위에 두른 석란(石欄)은 1780년(정조 4)에 가설하였고 옆에 비각이 있는데 정몽주의 사적(事蹟)을 새긴 비석 2개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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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한국의 교량사에 관한 연구」(황학주, 『대한토목학회지』24-3, 1976)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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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선죽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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