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
술책

우리 그림에 초상화가 많은 이유

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고사 인물도와 초상화 읽는 법

1961년 겨울 프랑스 파리 거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고 포스터가 붙게 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 유럽에서 최초로 열리는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행사를 홍보하는 광고 포스터였다. 포스터 속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선정된 것은 바로 초상화였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조선 시대의 대유학자 송시열이었다. 검은 두건에 선비들이 입는 도포 차림으로 그려진 상반신 초상화였다.

앙다문 입에 그리 크지 않은 눈, 큼직한 코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인상적이다. 고집도 있고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다. 또 얼굴을 덮고 있는 무성한 흰 수염에 비해 까만 색의 짙은 눈썹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타협하지 않는 완고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송시열 초상〉 작자 미상, 18세기, 비단에 채색, 89.7x67.6cm, 국립중앙박물관

ⓒ 탐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수 없습니다.

〈송시열 초상〉 김창업, 1680년, 비단에 채색, 91.0x62cm, 제천 황강영당

ⓒ 탐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수 없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매우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한국의 초상화는 서양인이 그린 초상화와 비교하면 특별한 데가 있다. 선비 복장을 한 초상화를 보면 대부분 옷은 대강대강 그렸지만 얼굴 표현은 매우 섬세하고 꼼꼼하다. 전신 중에 일부에 불과한 얼굴만 집중적으로 표현하면서 그 인물이 가진 내적인 정신 세계를 담으려 했던 것이다. 이점이 프랑스 사람들의 눈에 특이하게 여겨졌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이 느낀 그대로가 바로 한국 초상화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조선 시대에 초상화가 그려졌던 이유와 관련이 깊다. 조선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초상화가 그려졌다. 이유는 한국적인 유교 정신과도 관련이 깊다. 안으로는 효도를 다하고 밖으로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유교는 실천하기 위해서 스스로 학문을 닦을 것을 요구한다. 이런 유교의 나라에서는 조상을 잘 모시고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나 뛰어난 문인 학자를 숭배하는 사상이 뿌리 깊었다.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이나 뛰어난 문인의 제사는 후손이 직접 지내지 않고, 그 인물을 배출한 고장이나 마을 전체가 나서서 사당을 지어 놓고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초상화 대부분은 사당에 걸린 것들이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운 초상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 조선 시대에는 문인들이 한데 모여 공부하는 서원이 전국에 수백 개가 있었다. 돌아가신 대학자들을 서원에 모셔놓고 단체로 제사를 지냈다. 서원은 알게 모르게 서로 경쟁했다. 학문적인 경쟁 외에 학자에 대한 존경심이 다른 서원보다 더 뛰어나단 것을 보여 주려고 했다. 그래서 서로 앞다투어 최고의 솜씨를 지닌 화가를 불러 조상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것이다.

한국의 초상화는 이런 환경에서 발전하다 보니 마치 인물이 살아있는 듯이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더불어 서원의 문인 학자들은 대학자 선배들의 정신세계를 흠모하기 때문에 초상화 화가들에게 그것을 그려내라고 요구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적이면서도 정신적인 내용을 담은 초상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 화가들에게 초상화를 그리는 일은 그야말로 잘 그려야 본전밖에 되지 않는 일이었다. 당시 초상화 화가들은 "터럭 한 올이라도 닮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늘 구박을 받았다.

서원들 간에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었기 때문에 한 학자의 모습을 놓고 서로 다르게 그린 경우가 생겨났다. 송시열 선생은 대학자였던 만큼 따르는 후진 학자도 많았다. 또 제사를 지내는 서원도 아주 많았다. 프랑스의 광고 포스터에 들어간 국보 〈송시열 초상〉과 제천의 황강영당에 걸린 〈송시열 초상〉이 닮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윤철규 집필자 소개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들어가 한국미술을 소개하는 《한국의 미》 전집 출판을 담당했고, 이후 중앙경제신문, 중앙일보에서 미술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1999년에 일본으로 유..펼쳐보기

출처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 저자윤철규 | cp명 도서 소개

옛 그림은 배경지식이 전혀 없으면 무엇을 그렸는지 알기 쉽지 않다. 그림이 왜 그려졌는지, 누가 그렸는지, 무엇을 그렸는지를 이야기하며 옛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안내 ..펼쳐보기

전체목차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한국화

한국화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우리 옛 그림에 초상화가 많은 이유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윤철규, 탐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