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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는 명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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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보 1호는 숭례문이지만 만약에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당연히 국보 1호가 되었을 법한 그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조선 시대 초기에 그려진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이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꿈속에 본 이상적인 자연을 화가 안견을 시켜 그리게 한 작품이다.

'만약에'라는 가정법을 쓴 건 〈몽유도원도〉가 아쉽게도 한국에 없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임진왜란 무렵에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 있었던 만큼 유명해진 것도 일본에서 먼저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학자들은 한국 그림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 그림 앞에서만큼은 달랐다. 보는 사람마다 '천하의 명품'이라고 감탄했다.

〈몽유도원도〉 안견, 1447년, 비단에 옅은 채색, 38.6x106cm, 일본 덴리대학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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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의 꿈을 꾼 안평대군은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했다. 또 글씨도 아주 잘 썼다. 그림도 좋아해서 중국과 한국 그림을 다양하게 즐겨 감상하곤 했다. 꿈을 꾼 것은 1447년, 그가 30세 때의 일인데, 좋아하는 신하 박팽년과 함께 '도원'이라는 신선 세계를 구경했다. 도원은 복숭아꽃이 피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복숭아꽃이 핀 마을이 어째서 신선의 고향인지 그 배경에는 중국 진나라의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가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이러하다. 예전에 중국의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갔다가 계곡에서 길을 잃게 되었다. 한참 뒤에 복숭아꽃이 만발한 평화로운 마을에 도착하게 됐는데, 마을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어부에게 친절하고 극진히 대접을 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진나라 때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 와 살고 있다며 어부에게 "바깥 세상의 전쟁이 끝났소이까?"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어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는 어부가 살고 있는 시대보다 수 백 년이나 앞선 시대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몇 백 년 동안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그곳에 살았다는 것이었다. 무척 놀랐지만 어찌됐든 어부는 융숭한 대접을 받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 후에 그는 그곳에 다시 가려고 했지만 길을 잃었던 계곡 어디를 가 보아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선이 사는 이상적인 곳을 '도원' 또는 '도화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몽유도원'이란 '꿈속에서 도원을 거닐다.'라는 뜻이다. 이 그림을 보면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보았다고 한 경치가 마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펼쳐져 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도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림에서 따라가 보면 우선 왼쪽 아래에서 시작해야 한다. 계곡을 건너면 높은 산봉우리를 마주하게 되고, 높은 산들의 아래쪽을 돌아서 산길을 다시 올라가면 동굴로 들어가게 된다. 동굴을 빠져나와서는 더 높은 산길을 가는데 그 후로는 산과 구름에 가렸는지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폭포가 있는 곳쯤에서 다시 길이 보이는데 이 길로 내려와 폭포 아래의 개울을 건너고, 바위 뒤쪽으로 빠져나가면 거기에 바로 복숭아꽃이 핀 마을이 펼쳐져 있다. 마을에는 복숭아 꽃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초가집도 보이고, 냇가에 띄운 조각배도 보인다.

이 〈몽유도원도〉는 〈조춘도〉를 그린 곽희의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는 게 특징이다. 산을 웅장하고 복잡하게 그린 점, 바위의 먹색을 짙게 또는 옅게 칠해서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 점 등이 그렇다.

그렇지만 아래쪽에 바위산을 쭉 그려 놓은 점이야말로 안견의 탁월한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바위산들이 있어서 마을은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산과 절벽들과 함께 아늑하게 감싸인 것처럼 보인다. 바위틈을 지나면 갑자기 별천지가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로 놀라운 상상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색채를 사용하는 감각도 아주 특별하다. 이 그림은 비단의 뒷면에 황갈색 물감을 칠했다. 그래서 그림 전체가 매우 부드러운 황색으로 일관되어 보인다. 현실 세계와는 다른 꿈속 세계의 색채를 표현하려고 이러한 기법을 쓴 것이다. 이와 같은 뛰어난 솜씨 때문에 안견은 조선 시대의 3대 화가로 손꼽히고 있다.

안견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국보1호가 될 만한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전하는 자료가 별로 없다. 〈몽유도원도〉를 제외하면 그가 그린 게 분명한 작품은 하나도 없는 형편이다. 심지어 언제 태어났는지 언제 죽었는지도 불분명하다. 단지 근래의 연구에서 충청남도 서산의 옛 고을인 지곡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세종대왕 집권기에 활동하며 안평대군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래서인지 안평대군이 소장했던 그림 중에는 30점이나 되는 안견 그림이 있었다고 한다. 안견의 솜씨는 그림 한 점에 천금을 줄 정도로 유명했는데, 이런 솜씨는 아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은 것 같다. 안견의 아들 안소희는 화원이 되지 않고 과거에 급제해 관리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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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규 집필자 소개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들어가 한국미술을 소개하는 《한국의 미》 전집 출판을 담당했고, 이후 중앙경제신문, 중앙일보에서 미술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1999년에 일본으로 유..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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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옛 그림이 쉬워지는 미술책 | 저자윤철규 | cp명 도서 소개

옛 그림은 배경지식이 전혀 없으면 무엇을 그렸는지 알기 쉽지 않다. 그림이 왜 그려졌는지, 누가 그렸는지, 무엇을 그렸는지를 이야기하며 옛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안내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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