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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세기 한
국 문학의
탐험 4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조정래

소설로 빚은 민족 정신의 백두대간

요약 테이블
출생 1943년

『태백산맥』에서 『아리랑』까지

벌교는 행정 구역상 전남에 속하는, 주로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평범한 소읍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이 곳에서 보낸 한 소설가에 의해 벌교는 세습 봉건 지주와 일제의 수탈, 그리고 여순반란사건과 6·25 같은 고난에 찬 한국 현대사가 휩쓸고 지나간 땅으로 되살아난다. 『태백산맥』의 작중 인물 염상진이 자폭하자 그를 뒤쫓던 군경은 그의 떨어진 머리를 수습해 고향인 벌교로 갖고 와서 “악질 빵갱이 염상진 사살”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벌교역 앞마당에 효수한다. 벌교는 조정래(趙廷來, 1943~ )의 대하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로 떠오르면서 이념 갈등과 국토 분단, 그 상처의 연원을 표상하는 우리 시대의 지명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 『태백산맥』을 두고 김윤식은 “우리 문학이 여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해방 40년의 기간이 필요하였다.”고 쓴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

왼쪽이 〈태백산맥〉 1만6천5백 장, 오른쪽이 〈아리랑〉 2만 장의 원고들이다.

ⓒ 시공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조정래는 1943년 전남 승주군 쌍암면 선암사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 조종현은 대처승이었다. 1947년 선암사의 부주지인 아버지가 사답(寺畓)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준 일로 주지와 충돌이 생기자 그의 가족은 선암사를 떠나 순천으로 이사한다. 소작인들의 가난과 고통을 헤아리고 그들을 배려한 아버지의 행동은 1948년 10월에 일어난 여순반란사건 뒤 우익 일색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그의 가족이 모략에 휘말리고 갖은 고초를 겪는 빌미가 된다. 이 때 그의 아버지는 우익 단체인 서북청년단 단원들에게 몰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끌려가고, 이튿날에는 어머니와 형제 넷이 재판소 앞마당에 끌려나가는 수모를 겪는다.

1949년 조정래는 순천 남국민학교에 입학한다. 이듬해인 1950년 초,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아버지가 풀려나자 그의 가족은 순천을 떠나 논산으로 이주한다. 어린 시절 조정래는 이렇게 승주 · 순천 · 논산 등지를 떠돌며 자라는데, 그 와중에 토박이 아이들의 텃세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독하고 고집스런 면모를 보여준다.

누가 먼저 코피를 쏟을 때까지, 누가 앙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그리고 또 한 놈과의 싸움이 끝나면 조금 더 센 놈과, 그놈에게 이기면 좀더 센 놈과 맞붙어야 하는, 그런 끝도 없는 싸움이었다.······ 물론 나는 늘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할퀴어 피가 흐르거나 코피가 터져 진 일은 있어도 울어서 진 일은 없었다.
조정래, 「암울한 계절의 파편들」, 『나』(청람, 1978)

수난은 좀처럼 끝나지 않아 1951년 1·4후퇴 무렵 그의 가족은 다시 한 번 시련을 맞는데, 느닷없이 집안에 들이닥친 외국 군인들에 의해 아버지와 아저씨가 폭행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 조정래는 공포감에 휩싸인 채 그 장면을 고스란히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석구는 꼼짝 않고 쪼그리고 앉아 피 흘리고 있는 아버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높아 보였고, 모든 사람 앞에 나섰으며, 모르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엄하고도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렇듯 힘없고, 약하고, 볼품없고, 허망하게 당하는 것을 벌써 두 번째 보는 것이었다. 석구는 그게 그렇게 분하고 서러울 수가 없었다.
조정래, 『태백산맥 8』(해냄, 1988)

『태백산맥』에도 묘사되어 있는 이 사건으로 크게 충격을 받은 어린 조정래는 한동안 야뇨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1953년 휴전 협정이 체결된 뒤 그의 가족은 피난 생활을 마감하고 아버지의 형제가 살고 있던 벌교로 간다. 작가는 이 벌교 시절을 뒷날 행복한 시절로 돌아보곤 한다. 아버지는 벌교상고의 교단에 서게 되는데, 딸린 식구가 많아서 집안 형편은 어려운 편이었다. 어린 조정래는 동네 사랑방에서 펼쳐지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빠져 학교 숙제를 못 해 가서 야단을 맞거나 벌을 받기도 하지만 벌교는 그의 야뇨증을 낫게 해준 안식의 땅이었다.

1956년 아버지가 광주제일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기자 식구들도 광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1959년 아버지가 다시 서울 보성고등학교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조정래는 광주서중을 거쳐 보성고교에 진학한다. 농촌 사회 활동에 뜻이 있어 이과반에 적을 두고 있던 조정래는 3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국문과로 진학 목표를 바꾸고 입시 준비에 전념,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들어간다.

대학 시절 조정래는 교내 학술상 창작 부문상을 타는가 하면, 재학중 등단한 시인이 네댓씩이나 되는 동국대 국문과 주최 ‘문학의 밤’ 행사 때 1학년에 할당된 단 한 명으로 나서 시를 낭송하기도 한다. 같은 과 동기이자 뒷날 그의 아내가 되는 시인 김초혜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일찍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이건만 막상 등단하기까지 그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격는다. 조정래는 1970년 『현대문학』에 오영수의 추천으로 「누명」 · 「선생님 기행(紀行)」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다. 소설가로 문단의 말석에 이름을 올린 그는 『황토』(1974) ·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1977) · 『한, 그 그늘의 자리』(1978) · 『유형의 땅』(1982) · 『어머니의 넋』(1988) 등 다섯 권의 창작집과, 장편 소설 『대장경』(1976), 연작 장편 『불놀이』(1983) 등을 펴낸다. 이 작품들은 1985년부터 집필에 들어가는 대하 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정래는 1999년에 이르러 ‘해냄’에서 그 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정리해 모두 9권으로 된 『조정래 문학 전집』을 내놓는다. 제1권 『대장경』은 1981년에 출간된 장편 소설로 흔히 ‘팔만대장경’으로 알려져 있는 해인사 고려대장도감판 대장경의 조성 과정을 기둥 줄거리로 삼은 소설이다. 대장경을 둘 판당을 세운 대목수 근필, 개태사 주지인 승려 수기, 그리고 이름 없는 여러 민중이 나오는 소설 『대장경』은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민중에 대한 신뢰, 예술적 완성을 향한 집념 등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제2권에 실린 『불놀이』는 「인간 연습」 · 「인간의 문」 · 「인간의 계단」 · 「인간의 탑」 등 네 편의 연작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여기서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 사람들이 처지에 따라 이를 어떻게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맺힌 한을 풀어가는지 꼼꼼하게 재현함으로써 역사가 지닌 다양한 의미를 풀어 보여준다. 제3권에는 카투사들의 생활과 주한 미군의 부정적 행태를 다룬 「누명」과 미국적인 것에 환멸을 느끼는 한 소시민의 이야기인 「거부 반응」, 폭력적 인간과 사회 구조에 대한 비유적 보고서인 「선생님 기행」 등 단편 10편이 실려 있다. 작가는 2000년 『한겨레신문』에 대하 소설 「한강」을 연재했다.

조정래의 초기 작품은 어린 시절이나 역사 체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칼갈이, 제책소나 염색 공장의 노동자, 구두닦이, 택시 운전사 등 도시 빈민 계층을 내세워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주변부적 삶의 실상을 담거나, 무기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의 실존적 한계 상황을 그리거나, 예술가를 내세워 참다운 예도가 무엇인지를 더듬는다. 또 「청산댁」 · 「황토」 · 「유형의 땅」 · 『불놀이』와 같은 소설을 통해서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서 억울하게 짓밟히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내세워 한국적 정서의 핵심으로 일컬어지는 ‘한’의 실체를 그리려고 애쓴다. 이 가운데 「청산댁」은 조정래의 초기 작품 세계를 대표할 만한 소설인데, 그는 여기서 거대한 시대적 격변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부서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정희의 유신 독재 시대가 끝나고 다시 1980년 5월의 광주사태를 거쳐 암담한 시련의 역사가 펼쳐지는 동안 조정래는 갑오농민전쟁과 3·1운동,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중 항쟁의 역사를 대하 소설로 풀어낼 계획을 세우고 『태백산맥』의 집필 준비에 열중한다. 이즈음 작가는 “광주에서 큰 사태가 발생했다. 견디다 못해 아내와 아들을 이끌고 그곳을 찾아가 하룻밤을 자고, 여러 곳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참담한 죄의식과 소설을 쓴다는 일과······ 많은 것을 생각했다.”고 쓰고 있다. 1983년 조정래는 이제까지 지켜온 “직접 체험을 소설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창작 원칙을 전면 철회하고, 어린 시절에 본 여순반란사건 등 자신의 체험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서 『태백산맥』에 버무려 넣는다.

『태백산맥』

『태백산맥』은 1983년 『현대문학』 9월호에 처음 연재를 해서 6년 만인 1989년에 마무리된 대하 소설이다. 『태백산맥』의 집필 과정은 그야말로 고투였다. 작가는 뒷날 그 어려움에 대해 “5공의 짙은 어둠과 서릿발 같은 상황 속에서 역사 바로잡기를 하겠다고 나서고 보니 얼굴 없는 전화는 거의 매일 밤 걸려오지, 입 다문 사람들을 상대로 취재는 어렵지, 소설을 쓰고 사무실을 나가면 어김없이 형사의 문안은 받아야지, 나를 방송에 출연시킨 스태프진 모두가 한직으로 몰렸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여기저기서 충고성 경고는 날아들지, 소설을 쓰는 일의 힘겨움을 압도하는 그런 일들 때문에 피가 바작바작 타들 지경이었다.”고 술회한다. 밤이면 오곤 하는 협박 전화로 순간순간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작가는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태백산맥』은 1990년 9월 대검찰청에 의해 이적 표현물로 분류된 이래 10년이 넘도록 분류에서 해제되지 않는다. 1994년 봄에는 한 극우 반공 단체가 작가를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작가를 곤경에 빠뜨린 것은 당시의 격동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증언하기를 꺼린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간신히 하는 한마디는 ‘다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늙은 그들은 거의가 얼굴에 표정이 없었고, 헛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초점 없이 흐리게 마련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보장 없는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인위적인 망각’을 연습하다 보니 정말 그렇게 멍한 망각증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비감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조정래, 「‘태백산맥’ 창작 보고서」, 『작가세계』(1995 가을)

1989년 11월, 이런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고지 1만6천5백 장 분량의 『태백산맥』이 전 10권의 소설로 완간된다. 『태백산맥』이 나오기 이전의 조정래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평범한 작가 이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태백산맥』은 완간되자마자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와 문학 평론가들에 의해 ‘1980년대 최고의 작품’, ‘1980년대 최대의 문제작’으로 꼽힌다. 이와 아울러 조정래는 단숨에 우리 시대의 작가 정신을 담보한 인물로 떠오른다.

좌익 운동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헤치는 한편, 분단과 6·25의 비극성 그리고 우리 민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룬 〈태백산맥〉

집필 기간 6년, 총 10권의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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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의 시간은 해방과 분단, 6·25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격동기를 통과하며, 그것이 펼쳐지는 무대는 남도의 벌교를 기점으로 해서 지리산 일대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작가는 ‘여순반란사건’으로 알려진 좌익 반란 사건을 그리면서 군경의 토벌 작전에 밀려 지리산 빨치산으로 쫓기는 그들의 행적을 추적한다. 이야기는 6·25와 겹치며 확장되는데, 작가는 여기서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 분단 현실과 그 상황 전개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꼼꼼하게 짚어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설로서 『태백산맥』이 뛰어난 점은 이념이나 분단 문제를 추상이나 관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들의 구체적 경험 속에 녹여낸 것에 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역사를 하나의 전체로 조망하며 개별적 인물들의 생동하는 삶 속에서 그 세부를 묘사함으로써, 크고 작은 낱낱의 사건과 삽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이를 하나의 거대한 사회 · 역사적 흐름 속에 녹여내어 대규모 문제작 『태백산맥』을 동시대인 앞에 내놓는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개별적 인물들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 상황성의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염상진이다. 그는 노비 집안 출신으로 분단 상황과 전쟁에 이르게 된 우리 민족사에 대한 확고하고 명료한 역사 의식을 갖고 좌익 운동에 뛰어든 공산주의자다. 염상진 주위로 몰려든 농민 출신 빨치산들은 그를 무결점의 완전한 인간으로 떠받들며, 그는 민중주의 또는 착취가 없는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염상진과 대비되는 인물로는 지주 집안의 아들이며 진보주의자인 김범우가 있다. 염상진이 식민지 현실 속에서 중첩된 계급적 · 민족적 모순을 뛰어넘기 위해 좌익 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라면, 김범우는 중간자적인 지식인의 자리에서 역사의 격동에 휘말린 민족이 나아갈 길을 더듬으며 고뇌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김범우의 중도적 태도는 좌 · 우익 모두로부터 배척당하고, 그는 극단적인 두 세력 사이에 낀 힘없는 이상주의자로 낙인 찍힌다.

〈태백산맥〉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소화가 살던 집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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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은 여순반란사건과 빨치산 활동 등으로 이어지는 좌익 운동의 실상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깊이 파헤치고, 분단과 6·25의 비극성 그리고 우리 민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처럼 『태백산맥』은 오랫동안 금기시된 채 가려져온 역사적 사실을 복원해 문제 의식과 곁들여 제시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우리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정호웅이 말하고 있듯이 “언제 도래할지 모르는 궁극의 세상, 절대 평등의 인내천 세상을 지향하는 열망을 이끄는 것은 개개인의 이기적 욕망의 제어와 자기 희생의 정신”각주1) 이다. 여기에는 『태백산맥』의 주제가 스며 있다. 염상진이나 지리산 골짜기에서 숨을 거두는 빨치산들은 말할 나위 없고, 기독교 사회주의자인 서민영이나 민족주의자인 김범우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이끄는 것은 바로 그 “이기적 욕망의 제어와 자기 희생의 정신”이다. 조정래의 한 걸음 앞선 역사 의식이 배어든 『태백산맥』은 젊은이들의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유례없는 판매 부수를 기록하게 된다.

『아리랑』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끝내고 다시 1년쯤의 취재와 자료 정리 기간을 거쳐 1990년 12월 『아리랑』의 집필에 착수해 1995년 7월에 탈고한다. 『태백산맥』이 분단의 고통과 비극의 뿌리를 파헤치며 분단 극복의 가능성을 찾아보려 한 소설이라면, 『아리랑』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체제 속에서 왜곡된 민족 의식을 바로 세우려는 작가의 집념이 낳은 소설이다. 『태백산맥』이 벌교를 중심으로 그 주변인 지리산 일대와 해방부터 6·25까지라는 제한된 시공간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데 반해, 『아리랑』은 구한말인 1890년대부터 1945년까지의 한결 넓은 시간대를 아우른다.

이야기의 발원지는 식민지 시대에 조선에서 수탈한 곡물을 일본으로 실어내던 항구 군산이지만, 이 군산항을 기점으로 핵심 작중 인물의 궤적을 따라 『아리랑』의 소설 공간은 한반도를 넘어 만주 · 러시아 · 하와이 · 동남 아시아 등으로 드넓게 펼쳐진다. 작가는 여기서 우리 민중이 일제에 의해 어떻게 수탈과 억압을 당하고, 또 그것에 맞서는지를 추적하며, 토착 자본이 어떤 경로를 거쳐 무너지고, 아울러 기회주의적인 지배층은 어떻게 일제와 야합하는지를 보여준다.

일제의 폭압과 수탈에 맞서 싸운 우리 민중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그린 또 하나의 대하 소설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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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제1부 「아, 한반도」, 제2부 「민족혼」, 제3부 「어둠의 산하」, 제4부 「동트는 광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부는 37장 · 35장 · 48장 · 54장으로 되어 있다. 대하 역사 소설의 골격에 맞게 이 소설에서는 여러 작중 인물이 2대 또는 3대에 걸쳐 등장한다. 친일파로 백종두와 백남일, 장덕풍과 장칠문 부자가 나오고, 여기에 맞서 송수익―송중원, 송가원―송준혁, 공허 스님―전동걸, 지삼출―지만복, 김판술―김건오, 손판석―손일남 등이 역시 대를 이어 투쟁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아리랑』에서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은 역사적 실존 인물들과도 만난다. 이를테면 송수익이 실존 인물인 의병장 전해산에 이어 신채호와 이회영 등을 차례대로 만나는 것이 그 대표적인 보기다.

『아리랑』은 『태백산맥』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격동하는 역사를 그리되 이를 “개별적인 인물들의 생동하는 삶”으로 드러내며 풍부한 사실감을 더한다. 정호웅은 “작중 인물들은 삶을 위한 투쟁, 자신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시대적 현실로 진입하게 되고, 그들의 행위에는 이제 민족적 또는 역사적 의미가 실린다. 다시 이것은 자기 몫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과 투쟁, 세태와 풍속, 전통적 생활 양식을 보여주는 세부 묘사를 통해 생생한 현실감을 얻는다.”각주2) 고 말한다.

조정래는 『아리랑』에서 일제 강점기의 민족사를 단순히 수난과 굴욕의 세월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저항과 투쟁의 시기로 그림으로써 소설 속에 민족주의 정신을 선명하게 새겨 넣는다. 여기서 작가는 나라를 잃고 고향 땅을 떠나 만주 · 연해주 · 하와이 · 일본 · 중앙 아시아 · 동남 아시아 등지로 흩어져 고단하게 떠돌며 사는 우리 민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곡절과 애환을 어루더듬고, 그들이 어떻게 민족적 수난과 치욕을 안겨준 일제에 저항하는지를 보여준다.

송수익은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만주에 와서 군왕 신봉자들과 단호하게 결별했었다. 그 표시로 상투를 잘라버렸던 것이다. 상투가 무슨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왕권 재건을 독립 투쟁의 목표로 삼고 있는 복벽주의자들이 하나같이 상투를 신주 단지 모시듯 했기 때문이었다. 왕권의 부정은 곧 공화제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다시 불어닥친 바람이 공산주의였다. 그러나 자신은 공산주의보다는 민족 자결주의에 더 관심을 써왔던 것이다.
조정래, 『아리랑 6』(해냄, 1994)

『아리랑』에는 친일파와 항일파, 기회주의자 그리고 갖가지 이념의 분파주의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송수익은 의병장으로 일제에 맞서 싸우는 중심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는 온건 노선을 택한 다른 군왕 신봉자들과는 달리 일제에 맞서는 방법은 오로지 무장 투쟁밖에 없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관철하는 인물이다. 이윽고 그는 만주로 무대를 옮겨 처음에는 대종교 신자로, 나중에는 무정부주의자로 독립군을 지휘하다가 관동군에 잡혀 옥사한다. 다른 한편에 사회주의자 정도규가 있는데, 그는 이론에 해박하고 적극적인 활동가이지만 사회주의 세력의 확대보다는 궁핍과 압박에 시달리는 동포 노동자와 농민의 구제에 더 역점을 둔다.

『아리랑』은 하와이 이민, 동학 운동, 의병 투쟁, 병탄, 토지 조사 사업, 3·1운동, 조선공산당의 결성과 와해,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해방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대하 소설이다. 작가 조정래는 일제의 폭압과 수탈 정책에 맞서 싸운 저항의 역사를 중심으로 소설을 풀어나감으로써 민족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소설 속에 새긴다. 그러나 『아리랑』은 밝은 분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해방 전야, 일본군이 철수한 만주의 조선인 부락에 중국 사람들이 몰려와 조선 사람들을 쳐죽이는 유혈극이 벌어진다. 이렇게 작가는 한민족 앞에 놓인 비극적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다.

처절한 비명 속에 피가 튀는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싸움은 쉽사리 끝나지 않고 있었다. 조선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도 중국 사람들에게 덤벼들고 또 덤벼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 사람의 연장을 뺏어 싸우기도 했다.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광막한 벌판 저쪽으로 기를 쓰며 도망가고 있었다. 그들은 압록강과 두만강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이 거의 다 쓰러져갈 즈음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끝없이 광야 저쪽에 점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조정래, 『아리랑 12』(해냄, 1995)

조정래는 『아리랑』을 쓰는 동안 수시로 찾아온 위궤양과, 집필 막바지에는 오른쪽 어깨와 손가락의 통증에 시달린다. 게다가 협박 전화가 자꾸 와서 신경이 곤두서고, 극우 반공 단체에 의해 국가 보안법을 어긴 혐의로 검찰에 고소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도 작가는 『아리랑』의 무대가 되는 중국 · 동남 아시아 · 러시아 · 하와이 · 미국 등지를 답사하고 현지의 지형과 풍물을 스케치북에 그리거나 사진에 담는 등 집필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해방 50주년을 맞이한 1995년 7월 25일, 마침내 조정래는 집필을 시작한 지 4년 8개월 만에 원고지 2만 장 분량의 대하 소설 『아리랑』을 아퀴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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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개요

  • ・ 황광수, 「억압된 기억의 해방과 역사의 지평」, 『작가세계』 1995 가을
  • ・ 정호웅, 「주제의 중층성」, 『작가세계』 1995 가을
  • ・ 조남현, 「역사적 진실과 소설적 흥미의 상성(相性)」, 『작가세계』 1995 가을
  • ・ 김윤식, 「내가 보아온 ‘태백산맥’」, 『김윤식 전집 5』, 솔, 1996
  • ・ 김훈, 「인간성 위에 그린 혁명의 진정성」, 『선택과 옹호』, 미학사, 1991

장석주 집필자 소개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고려원’의 편집장을 거쳐 ‘청하’ 출판사를 설립해 13년 동안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일했다. 그 뒤 동덕여..펼쳐보기

출처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 저자장석주 | cp명시공사 도서 소개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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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조정래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장석주,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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