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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0세기 한
국 문학의
탐험 4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오정희

여성성의 뜻을 캐묻는 소설

요약 테이블
출생 1947년

「완구점 여인」에서 「옛우물」까지

한국 여성 소설의 한 정점에 작가 오정희(吳貞姬, 1947~ )의 자리가 있다. 그의 소설은 “개인적 · 존재론적 차원에서 신화적인 차원, 원형 상징의 공간”(이혜원)으로 나아간다. 이 작가가 즐겨 다루는 것은 “삶의 불구성, 낙태, 불임, 가족간의 왜곡된 관계, 비정상적인 성장, 중산층 중년 여성의 심리적 갈등”(하응백)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높은 미학적 성취다. 이에 따라 오정희의 작품들은 한국 여성 소설의 계보학에서 정점의 자리를 확고 부동하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불안과 고뇌 등을 섬세하게 파헤쳐 보인 작가 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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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가 단편 「완구점 여인」으로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당선되던 해, 그는 갓 스물이 지난 앳된 얼굴로 한국 문단에 나타난다. 그는 이미 열아홉 살 때 “정결한 사랑, 문학과 나 사이에 어떤 매개항도 두지 말 것. 아름답고 힘 있는 문학을 살(生) 것.”을 결심한다. 오정희가 등단작을 쓰던 스무 살 때 그의 소설은 이미 충분히 무르익어 농염하게 실존의 의미를 머금는다. 삶의 현존을 감싸고 도는 의미에 대한 통찰력, 겹으로 둘러싸인 의미를 명료하게 포착해내는 복합적이면서도 명확한 구도,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하고 대담한 작중 인물들의 행위, 암시와 절제로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문체의 기교, 섬세하고도 집요한 묘사 등 오정희의 소설은 한국 단편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 그는 당돌하게도 당선 소감을 묻는 인터뷰에서 “가능하면 앞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오정희는 1947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난다. 형제가 많은 편이어서 그는 4남 4녀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난다. 그의 부모는 해방 무렵에 황해도 해주에서 월남해 별다른 생활 기반 없이 곤궁한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오정희가 네 살 되던 해에 6·25가 터지는데, 바로 아래 동생을 임신한 어머니 때문에 피난하지 못하고 인공 치하의 서울에서 몇 달을 보낸다. 그는 1951년 1·4후퇴 때 출산 뒤 몸조리도 제대로 못 한 어머니와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그의 가족이 간신히 군용 트럭 한 귀퉁이를 얻어 타고 가다가 무작정 내린 곳은 충남 홍성군 홍주읍 오관리라는 마을이다. 물살이 세고 폭이 넓은 개울과 다리, 타관에서 흘러든 피난민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과 적대감, 허기진 채 동생과 방안에 갇혀 있던 이 시절의 기억들을 오정희는 「유년의 뜰」에서 알뜰히 털어놓는다. 식탐이 많아 아랫목에 묻어놓은 그릇가의 밥 알갱이를 떼어 먹고 동생의 고구마를 빼앗아 먹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도벽이 있는 아이, 전쟁을 겪으며 지나치게 조숙해져 불순하게 심사가 뒤틀려버린 아이가 바로 오정희의 유년기 자화상이다.

전쟁통에 소식을 알 수 없는 아버지를 둔 가족의 뒤틀린 삶과 황량한 어린 시절의 삽화들을 담은 두 번째 창작집 〈유년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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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에 오정희는 피난지에서 좀 떨어진 홍주읍의 홍주국민학교에 입학한다. 어머니가 장사를 하러 나가 외할머니와 함께 입학식에 간 그는 분홍색 인조견 치마에 노란 솜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외할머니의 실수로 속옷 챙겨 입는 것을 빠뜨린다. 그는 할머니가 무서워 차마 말은 못 하고, 수치심과 불안 속에서 입학식을 치른다. 휴전 이태 뒤인 1955년, 제2국민병으로 징집되어 나가 있던 아버지가 돌아와 석유 회사 인천출장소 소장으로 취직되면서, 그의 가족은 5년 여에 걸친 홍성에서의 피난살이를 정리하고 인천시 중앙동으로 이주한다. 그의 가족은 인천 자유공원 언저리에 있는 일명 ‘차이나타운’ 또는 ‘중국인촌’이 내다보이는 작은 일본식 집에 짐을 부린다.

오정희는 신흥국민학교 2학년으로 전학하는데, 가뜩이나 소심한 그로서는 갑자기 바뀐 도시 학교의 분위기 속에서 심한 열등감에 시달려 학교 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다. 대신 그는 학교가 파한 뒤 자유공원 꼭대기에 올라가 묵묵히 인천 앞바다를 바라보거나, 신문 연재 소설부터 야담류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이 시절의 오정희는 소심함 못지않게 한편으로는 장난기와 당돌한 구석도 있는 아이였다. 집 근처 언덕의 중국인촌에 세들어 사는 ‘양공주’들의 하이힐과 플레어드 스커트와 페티코트 등의 이국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그를 온갖 비밀스럽고 괴기스러운 상상 세계로 이끌어가곤 한다. 이 때의 체험과 상상 세계가 뒷날 「중국인 거리」에서 그려진다.

조용히 학교를 오가던 오정희가 느닷없이 학교에서 눈길을 끄는 일이 생긴다. 초등 학교 3학년 때인 1956년 어느 날, 작문 시간에 쓴 「오늘 아침」이라는 산문이 담임 선생의 눈에 띈 것이다. 난생 처음 학교에서 칭찬을 받은 그는 방과 뒤에 남아 글짓기 지도를 받게 되고, 같은 해 가을 경기도 내의 백일장에서 산문으로 특선을 차지함으로써 단번에 ‘글 잘 쓰는 아이’로 소문이 난다. 글쓰기를 통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열등감을 한꺼번에 보상받은 오정희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임을 깨닫고 드디어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1959년 아버지의 전근과 함께 꽤 넓은 마당이 딸린 서울 마포구 신수동 집으로 이사하고, 그는 수송국민학교 6학년으로 전학한다. 이 무렵 그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수업을 마친 뒤 과외에 시달리고, 때로는 잠을 쫓는 약까지 몰래 복용하며 중학교 입시에 매달린다. 이와 같은 입시 중압감 속에서도 그는 대학생 오빠가 사들인 니체 · 헤세 · 지드 ·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가방 속에 몰래 넣고 다니면서 보거나 이광수 · 김동인 · 박화성 · 최정희 · 황순원과 한국 전후 작가들의 소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치운다.

1960년 이화여중에 입학한 오정희는 병약하고 반에서는 물론 전교에서도 가장 작은 축에 드는 아이로 꼽힌다. 그는 학교 정구 코치와 절친한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구부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병약한 몸을 튼튼하게 만들겠다는 뜻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을 품은 딸의 생각을 돌려놓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한 선택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막내동생이 교통 사고로 죽자, 집이 싫어진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운동장에서 라켓만 휘둘렀고, 이런 맹연습 끝에 3학년 때는 주전 선수 자리를 꿰찬다. 그는 합숙소나 정구 코트 벤치에서 틈틈이 독서를 하고, 가끔은 사랑과 우정을 소재로 한 짧은 글을 써보며 소설가의 꿈을 은밀하게 키워간다.

그러던 중에 운동 선수의 동계 고등 학교 진학 특전 제도가 없어지자 오정희는 중학교 3학년 늦가을부터 선수 생활을 집어치우고 고교 입시 공부에 매달린다. 1963년 이화여고에 입학한 뒤 그는 한동안 입시 중압감 속에 파묻혀 있던 내면의 열등감이 다시 꿈틀거린다. 그는 친구 · 가족 · 세상에 대해 강한 불신과 적의를 품고 반항아가 되어 결석과 조퇴를 밥 먹듯이 한다. 이 시절 그는 책가방을 든 채로 혼자 교외선을 타고 돌아다니거나, 심한 문학병을 앓으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어느 날 그는 마침내 등록금과 속옷, 일기장, 서머셋 몸의 『서밍업』을 가방에 챙겨 넣고 가출을 감행한다. 그는 어느 민박집에 잠시 머물면서 춘천 어느 병원의 간호 보조원 자리까지 약속받으나, 실행에 옮기기 직전 어머니에게 덜미를 잡혀 집으로 돌아온다. 최소한의 효심을 발휘해 “성공해서 돌아올 테니 찾지 말라.”는 편지를 띄웠는데, 편지 봉투에 찍힌 소인을 본 어머니가 그를 찾아낸 것이다.

1966년 오정희는 작가가 되려는 뜻을 품고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김동리 · 서정주 · 박목월 · 김수영 · 김현의 강의를 듣는다. 그는 이동하 · 김형영 같은 선배와 이경자 · 윤정모 · 김민숙 · 송기원 · 이시영 같은 동기와 함께 공부하며 작가 수업을 쌓는다. 특히 이경자와는 대번에 “인생의 미궁 속에서 아직 불도 지피지 않은 문학의 등잔불을 들고 음울하게, 온갖 열등감의 헝겊 쪼가리들에 감싸여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 상통함을 느끼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작품 속에서도 문득문득 드러나듯이, 유년 시절부터 내재해 있던 오정희의 돌출적이고 기상 천외한 말과 행동들은 이경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정희는 괴물이다. 그 애는 자기 오빠가 인턴인가 뭔가로 있는 서울대학병원에 가 보자고 했다. 시체실이라는 게 있는데 밤이 되면 유령인가 귀신인가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뒤숭숭한 유혹인가. 귀신을 볼 수 있다니. 아마 우리는 밤에 그 곳에 갔으리라.
이경자, 「내 마음의 굴뚝」, 『오정희 문학 앨범』(웅진출판, 1995)
1970년 서라벌예대 졸업식 때 어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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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오정희는 몇 편의 소설을 써보며 문학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감당할 만한 재능이나 광기가 없다는 생각과, 여기에 겹치는 스무 살 시절의 지적 열망과 절망에 사로잡혀 참담한 시간을 보낸다. 2학기 가을 무렵부터는 아예 학교 나가는 일을 작파해버리고 방안에서 뒹굴며 정처없이 유랑에 나설 것인가, 고아원 보모가 될 것인가, 아니면 중이 될 것인가, 앞날에 관한 온갖 궁리를 하며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이처럼 괴로움 속에서 보낸 나날이 오정희의 문학에는 오히려 밑거름이 된다. 마침내 그는 1968년 『중앙일보』 신춘 문예에 응모한 단편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첫발을 내딛는다.

「완구점 여인」

소녀의 집에 어릴 적 가정부로 들어온 여인은 어느 순간, 소녀의 어머니 자리에 앉는다. 가슴이 두껍고 걱실걱실한 목소리를 가진 계모는 쉴새없이 아이를 낳으면서 차츰 소녀에게 냉담해지고 아버지 또한 소녀에게 무관심해진다. 가족에 대한 미움이 자꾸 커질 즈음 동생의 죽음을 겪은 소녀는 이제 세상에 대해 전면적인 거부감과 적의를 품는데, 이는 도벽 · 살해 · 방화 욕구 등으로 표현된다. 소녀는 학교가 파한 뒤 어두운 교실에 혼자 남아 서랍을 뒤지면서 “뻣뻣한 스커트를 허리께까지 훌쩍 걷어올리고 그대로 선 채 오줌을 누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거나, 분필 토막으로 변소에 “선생님 나쁜 년, 엄마 나쁜 년”이라고 낙서를 해대며 증오심을 해소한다.

언제부터인가 소녀는 휠체어를 탄 완구점 여인에게 매혹된다. 소녀는 날마다 상점의 유리문을 통해 불구의 여인을 바라보거나, 교실 서랍에서 훔친 돈으로 완구점에 있는 오뚝이를 사 모은다. 완구점 여인의 휠체어를 보며 소녀는 죽은 동생을 떠올리곤 한다. 소아 마비이던 동생은 휠체어를 타고 손이 닿는 높이의 흰 벽에 종일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삶의 전부이다시피 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막 이층 계단을 밟는 누나를 반기면서 나오다 휠체어가 굴러 떨어져 죽은 것이다.

어느 날 소녀는 시간이 너무 늦어 집에 갈 수 없다는 핑계로 완구점 여인과 나란히 누워 관능적인 접촉을 한다. 그 뒤로 소녀는 심한 수치심과 관능의 유혹을 동시에 느끼며 밤마다 여인의 꿈을 꾼다. 그러나 소녀는 유리문을 통해 여인의 모습을 훔쳐보거나 편지를 쓰기만 할 뿐 여인을 찾아가지는 못한다. 얼마 뒤 완구점 유리문에 ‘내부 수리중’이라는 팻말이 붙더니, 그 자리에 새로 다방이 들어선다.

「완구점 여인」은 가족과 주변 세상으로부터 내동댕이쳐진 한 소녀의 소외감, 고아 의식, 좌절감, 방황, 그리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구체적인 사건의 서술 없이 몇몇 삽화와 이미지만이 몽롱하게 드러나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오정희는 여기서 자신의 존재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때로는 끔찍하게 여겨질 정도의 불안과 고뇌 등을 결코 미화하지 않고, 섬세하고 예리한 칼날로 환부를 도려내듯 속속들이 파헤쳐 보인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흔히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폐적인 몽상에 잠기거나 자신이나 타인에게 충동적 · 파괴적 행동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중 인물들은 이런 수단이나 행위로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거부당한 영혼들과 철저히 단절된 삶, 죽음의 냄새들로 채워지곤 한다. 이렇게 끊임없는 결핍을 견뎌나가는 작중 인물들의 삶에 때로 독자들은 원인 모를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정희 문학의 한 특징이다.

1969년에 「주자(走者)」 · 「산조」 등을 발표한 오정희는 1970년에 서라벌예대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조교로 일하며 「번제(燔祭)」 등을 선보인다. 1971년부터 그는 잡지사와 출판사를 옮겨다니며 일하고 「봄날」 · 「관계」 · 「직녀」 등을 내놓다가 1974년에 결혼한다. 결혼 뒤 그는 가정을 건사하는 일과 글쓰는 일에 모두 충실하리라 다짐하지만, 살림을 제대로 못 하는 데 따른 열등감과 소설가로서 작품을 써내지 못하는 두려움이 겹쳐 몹시 힘든 시기를 보낸다. 쓸데없이 자꾸 냉장고 문을 여닫는가 하면 냉수나 차를 쉬지 않고 마셔대는 일로 그는 초조함을 달랜다. 문단에 나온 지 몇 해 만에 결혼 생활과 출산을 경험하며 서서히 범속한 일상에 매여 고정되기 시작하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그는 불안과 함께 일탈 욕구에 시달린다.

오정희는 1975년 「목련초」, 1976년 「안개의 둑」 · 「적요」 · 「미명」, 1977년 「불의 강」 · 「야곱의 꿈」 · 「동행」 등을 발표한다. 그가 첫 창작집 『불의 강』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것은 1977년의 일이다. 1978년에는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전임 강사로 임용된 남편을 따라 춘천으로 이사하고 「꿈꾸는 새」 등을 발표한다. 1979년에 들어 오정희는 「중국인 거리」 · 「비어 있는 들」 · 「저녁의 게임」 같은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는다. 그에게 제3회 ‘이상 문학상’을 안겨준 「저녁의 게임」은 어릴 적에 화투를 배워 “자나깨나 화툿장이 눈앞에 어른대는 통에 한 학년 위의 오빠를 꾀어 학교를 가지 않고 벽장 속에 숨어들어가 화투를 치던, 끝내 어머니에게 들켜 죽지 않을 만큼 매맞”은 체험이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오정희의 첫 번째 창작집 〈불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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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화투판을 벌이는 아버지와 딸, 그 사이사이에 낀 대화, 과거에 대한 회상, 그리고 짧은 외출 등으로 연결되는, 아주 단순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여기서 권태롭고 공허하고 무의미하지만 충실히 이행하는 ‘화투’라는 행위를 통해, 삶이 일종의 무료한 게임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저녁의 게임」은 이야기의 완만하고 단순한 흐름과 의식의 흐름을 쫓는 수법이 잘 조화된 작품이다. 여기에 나오는 여주인공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좀 다르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무작정 가출 또는 일탈을 시도하는 게 아니라, 책임량을 완수하듯 저녁 시간 아버지와의 게임이 끝난 뒤, 즉 철저하게 일상의 의무를 다하고 나서 비로소 바깥 나들이에 나선다. 그런데 이런 나들이가 오히려 어떤 충동적이고 격렬한 일탈 행위보다 일상의 허위성과 권태를 인상 깊게 전달하는 것이다.

「저녁의 게임」과 같은 해에 발표된 「중국인 거리」는 인천의 중국인촌 언저리에서 살던 때의 체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김병익으로부터 “우리 단편 문학의 한 뛰어난 범례가 될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오정희의 수작이다.

「중국인 거리」

「중국인 거리」에서는 북풍이 실어 나르는 탄가루 때문에 늘 거무죽죽한 공기, 회충약을 먹은 탓에 노오랗게 보이는 하늘,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해 잔뜩 부른 배를 내밀고 다니는 어머니, 입만 열면 커서 양갈보가 되겠다고 말하는 친구 치옥이, 일곱 마리의 새끼를 모조리 잡아먹고 피범벅이 된 입으로 야옹야옹 밤새도록 울어대는 고양이, 아편을 피우는 늙은 중국인의 모습이 무채색의 판화처럼 펼쳐진다.

젊은 남자의 눈길을 느끼고, 알지 못할 슬픔이, 비애라고나 말해야 할 아픔이 가슴에서부터 파상(波狀)을 이루며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는 주인공 ‘나’는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절에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다.

그런데 다 깎은 뒤 거울 속에 남은 것은 여전히 됫박머리였다.
이왕 깎은 걸 어떡하니 다음 번에 다시 잘 깎아주마.
그러길래 왜 아저씨는 이발만 열심히 하지 잡담을 하느냔 말예요.
나는 바락바락 악을 썼다. 마침내 이발사는 덜컥 의자를 젖히며 말했다.
정말 접시처럼 발랑 되바라진 애구나, 못 쓰겠어.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주둥이부터 나왔니?
못 쓰면 끈달아 쓸 테니 걱정 말아요 아저씨는 손모가지에 가위부터 들고 나와 이발쟁이가 됐단 말예요?

맵시 없는 머리를 만들어놓은 이발사에 대한 ‘나’의 분노는 단순히 외모에 대한 관심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발랑 되바라진 애”의, 이제 막 인생에 대한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한 소녀의, 자신의 욕망을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강렬한 거부와 항변이다. 사춘기는 자의식이 팽창하는 시기다. 부풀어오른 자의식은 필경 현실 구조의 강제에 부딪쳐 억제를 강요당한다. 이런 억제에 직면할 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심리 기제는 분노다. 흔히 청소년기가 ‘이유 없는 반항’이나 ‘성난 젊은 시절’이라는 말로 축약되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인 거리」의 작중 화자 ‘나’ 또한 바로 이와 같은 시기에 당도해 있는 것이다.

나는 따스한 핏속에서 돋아오르는 순(筍)을, 참을 수 없는 근지러움으로 감지했다.
인생이란······.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뒤를 이을 어떤 적절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다만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내일들을 뭉뚱그릴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 있을까.

따뜻한 핏속에서 근지럽게 돋아오르는 순(筍), 이것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자의식이다. 자의식의 순이 돋아오른다. 그 자의식의 촉수는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인생 앞에서 의문의 미로를 더듬는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인생의 본질과 심연을 이해하고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의문은 “한없는 상상과 호기심의 효모”가 되어 상상력을 부풀어오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입 속으로 모르는 것의 이름을 부르듯이 “인생이란······” 하고 혼자 중얼거려보는 것이다.

오정희는 1980년에 들어 전쟁통에 소식을 알 수 없는 아버지를 둔 가족의 뒤틀린 삶과 황량한 어린 시절의 삽화들을 담은 「유년의 뜰」을 발표한다.

기생 출신의 외할머니, 아버지를 기다리며 술을 마시다가 급기야는 수상한 외박을 하는 어머니, 밤 외출을 자주 하는 언니,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을 하며 언니를 때리는 것으로 제 욕망 · 슬픔 · 분노를 분출하는 큰오빠, 미국인 부부의 양자로 들어간 고아들을 부러워하며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작은오빠, 병약한 동생, 이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주인공 소녀. 「완구점 여인」에 나오는 아이처럼 도벽과 게걸스러운 탐식 습관이 있는 소녀는 방에 갇힌 채 지내다가 주검으로 들려 나오는 주인집 딸의 정체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고 대책 없는 허기를 느끼며 자란다. 이런 가족의 뒤틀린 현재의 풍경과 과거의 기억들은 집안의 ‘거울’에 낱낱이 비친다. 어느 날 이 거울이 깨지며 가족은 이웃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며, 동시에 소식이 없던 아버지가 돌아온다.

「유년의 뜰」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거울’은 오정희가 즐겨 사용하는 소도구다. 우리 문학사에서 ‘거울’의 이미지는 흔히 참회나 환상적 나르시시즘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데 비해, 오정희의 ‘거울’은 등장 인물들의 하찮은 행동과 허위 의식, 광기와 절망 그리고 삶의 권태와 고통 등 복잡 다기한 세계를 비추는 구실을 한다.

같은 해 오정희는 집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등화 관제 훈련으로 말미암은 어둠의 시간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묘사한 「어둠의 집」과 「겨울 뜸부기」 등을 더 내놓는다. 이어 1981년에는 어느 소도시 중산층 집안의 파티를 통해 중산층 사회의 속물 근성과 허위 의식에 찬 일상, 이에 대한 모멸감을 드러낸 「야회」를 비롯해 「인어」 · 「별사(別辭)」 등을 발표하는 한편, 두 번째 창작집인 『유년의 뜰』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다. 1982년 그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라고는 없는 노부부의 삶과 심리를 그린 「동경(銅鏡)」, 결혼 뒤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바람처럼 펄럭이며” 가출을 일삼다가 결국은 치한들로부터 윤간을 당하게 되는 여주인공이 그 충격으로 말미암아 망각한 어린 시절과 전쟁이 남긴 상처를 기억 속에서 하나씩 길어올리는 과정을 그린 「바람의 넋」, 그리고 「하지」 등을 내놓으며 제15회 ‘동인 문학상’을 받는다.

1981년 서울 화곡동 친정집 뜰에서 딸을 안고 선 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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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는 1983년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늙은 악사의 추락사를 그린 「전갈」을 비롯해 「불망비」 · 「멀고 먼 저 북방에」 등을 발표한다. 1984년에는 「지금은 고요할 때」와 「순례자의 노래」 · 「새벽별」을 내놓는데, 8월부터 미국 뉴욕주립대 교환 교수로 나가는 남편을 따라 가족이 모두 올바니로 건너가서 머물게 된다. 이태 뒤인 1986년에 귀국한 그는 곧 세 번째 창작집 『바람의 넋』을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다. 이어 1987년에는 「그림자 밟기」, 1989년에는 「불꽃놀이」 · 「저 언덕」 · 「파로호」 등을 꾸준히 선보인다.

어린 시절과 전쟁이 남긴 상처를 기억 속에서 하나씩 길어올리는 과정을 그린 세 번째 창작집 〈바람의 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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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오정희는 “낡은 거푸집 하나로 똑같은 물건들을 거듭 찍어내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런 느낌을 견딜 수 없어 그는 창작 활동은 잠시 미루고, 1990년 이미 발표한 작품들을 가려 엮은 『야회』, 1993년 장편 동화 『송이야, 문을 열면 아침이란다』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짧은 소설들을 묶은 『술꾼의 아내』 등을 펴내는 데 만족한다. 그러나 아예 붓을 놓은 건 아니어서 집 근처의 산에 다녀오는 일 이외에는 거의 외출을 삼가고, 식구들이 나간 빈 집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일에 매달린다. 그러나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원고지 칸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작가를 괴롭힌다.

“평생 말뚝에 묶인 소처럼 달아나지도 못하고, 그 언저리를 빙빙 돌며 겁내고 눈치나 보며 살겠어? 부닥쳐 봐야지. 맞대결을 하면 어쨌든 결판이 나겠지.”

한밤중 일어나 냄비를 닦으며 이가 끓듯 토막진 생각만 두서없이 버글거리는 머리를 휘두르고 홀로 비장해져 중얼거리는데 누군가 비스듬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한다. “비장한 건 포즈지 문학이 아냐. 허상과 치기를 버리고 현란한 수사와 과장된 몸짓도 버리고 꿈속의 바위, 생시에도 가슴을 짓누르는 바위를 끌어안고 싸워 봐. 어렵기 때문에 해볼 만하지 않은가.”라고.
「깃광목처럼 튼튼하고 진솔하게」, 오정희 문학선 『야회』(나남, 1990) 저자 서문

오정희가 “속이 타고 막막하여 책상 위에 얼음을 갖다 놓고 깨물어 가면서, 소설 쓰기에 대한 주눅을 깨뜨리려”는 자기와의 싸움을 거쳐 1994년에 발표한 작품이 「옛우물」이다.

「옛우물」

이 소설은 여성의 정체성 위기와 여성적 현존의 의미를 탐구한 작품이다. 「옛우물」은 “만성적인 편두통과 임신중의 변비로 인한 치질에 시달리는 중년의 주부”인 일인칭 화자가 마흔다섯 살의 생일 아침을 맞으며 시작된다. 「옛우물」에서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이 끊임없이 중첩된다. 오그라든 어머니의 자궁, 죽은 친구, 아버지, 삭아가는 옛집, 매몰된 우물의 이미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탄생의 비의성과 죽음의 불모성 사이에 걸쳐 있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직관과 예감으로 가득 차 있는 소설이 「옛우물」이다.

작가는 여기서 어머니의 마지막 해산 날에 대한 회고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온 집안을 수런거리게 만드는 어머니의 해산. “이슬이 비친다거나 양수가 터졌다거나 문이 덜 열렸다거나” 하는 할머니의 수선스런 목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고통에 찬 외침”으로 불안한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을 때, 화자는 밤 사이에 어머니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밤을 지샌 고통, 피와 땀과 젖 냄새가 비릿하고 후덥덥하게 뒤섞인 공기” 속에서 할머니는 “피 묻은 짚과 태”를 태우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와 검댕이”는 할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은 정화수 대접의 물 위에 날아와 앉는다.

김혜순의 지적대로 여성적 상징물들인 “바가지, 무쇠솥, 아궁이, 장독대, 옛우물, 독, 물초롱, 흰 사발, 조왕각시 사발, 정화수 흰 대접” 사이를 할머니는 부지런히 오가며 어머니의 해산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이 공간에서 남성이란 전혀 쓸모없는 존재다. 그래서 할머니는 아버지를 이 여성적 공간에서 “마실이나 갔다 오게. 아이야 여자가 낳는 거지.”라는 말과 함께 추방한다.

남편이 러시아에서 사온 “똑같은 모양의 인형들이 크기의 차례대로 겹겹이 들어 있는” 러시아 민속 인형은 ‘나’의 안에 중첩되어 있는 여성적 실존, 즉 “보다 덜 늙은 여자, 늙어가는 여자, 젊은 여자, 파과(破瓜)기의 소녀, 이윽고 누군가, 무엇인가가 눈 틔워주기를 기다리는 씨앗으로, 열매의 비밀로 조그맣게 존재하는 어린 여자아이”라는 문맥과 완벽하게 조응한다. 러시아 민속 인형처럼 ‘나’의 안에는 여러 여자가 겹쳐 있다.

늙은 어머니는 더 출산할 수 없게 되었으며, 생산의 자리였던 자궁은 “말린 오얏처럼 쭈그러”든다. 이 닫힘은 그 자궁이 이제는 어떤 살아 있는 것도 잉태할 수 없게 되었음을, 다시 말해 영원한 불모의 닫힘으로 돌아갔음을 뜻한다. ‘나’는 그 늙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마지막 해산 과정을 엿보며 한 생명의 탄생을 “영원한 암호, 비밀”로 받아들이던, 여성적 생산의 가능성을 품어 안은 어린 여자 사이에 있다. ‘나’는 말 그대로 중년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중년이란 늙어가는 것을 서서히 의식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주인공은 “조용한 휴가와 깨끗한 물과 공기에 대해, 연금과 전원 주택에 대해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린 시절의 “심한 허기와 도벽, 노란 거품을 게워내던 횟배앓이의 흔적”들을 지우고, 남자들은 “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하고 몸이 붓기 시작하는 장년”의 안정감에 안착하며, 여자들은 그 남자들과 함께 더는 생산적일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음을 갑자기 깨닫는다. 어린 시절을 거쳐 관습과 제도에 길들여진 중년이 되어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망과 걱정을 나누고 자잘한 생활의 문제, 음식과 성”을 나누면서 서서히 늙어간다는 것, 이것이 「옛우물」의 여주인공이 마흔다섯 살의 아침에 확인하는 현존의 양상이다.

그 중년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충실한 관습, 질서” 밑에는 “텅 빈 공허, 사라짐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마치 “나는 기능을 잃어 멸종된 새”인 도도와 같이 젊음을 잃어버린 ‘나’는 사멸에 대한 예감에 사로잡혀 진저리를 친다. 이런 장면은 주인공이 강가의 찻집 유리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대목에서 날카롭게 드러난다. “유리 밖의 내 모습이 유령처럼 그 물상 위로 비비적대며 어른거렸다. 나는 훅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부릅떴다. 그것은 텅 빈 공허, 사라짐의 공포였을까.” 중년에 이른 주인공의 의식을 지배하는 죽음에 대한 예감은 자신의 모습을 ‘유령’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사라져가는 갖가지 것의 잔상이 내면에 일으키는 파문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어릴 때 해가 지고 노을이 물들 무렵이면 까닭없이 서러워 목놓아 울게 하던 것은 어찌해 볼 수 없는 운명, 어쩌면 비겁하고 허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열패감,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대목을 통해 드러나듯이, 어린 시절의 경험 속에 이미 투영되어 있는 절대의 운명과 열패감이 불러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사라져가는 것은 많다. 서쪽 하늘에 지는 저녁놀, 어린 시절, 멸종해 지구에서 볼 수 없게 된 도도새, 죽은 아버지, 죽은 친구, 신문의 부고란에서 마주친 ‘그’의 죽음, 곧 헐릴 퇴색한 연당집, 친구가 빠져 죽어 메워버린 우물, 옛우물과 함께 사라질 금빛 잉어······. 이런 것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죽음이 있다.

‘나’의 여성적 정체성의 위기는 남성인 ‘그’의 죽음으로부터 온다. 한때 ‘나’를 애욕으로 몸서리치게 만들던, “허둥대는 어미의 기색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필사적으로 젖꼭지를 물고 놓지 않”는 아이의 뺨까지 후려쳐서 떼놓고 그에게 달려가던 날들이 지나가자 ‘나’의 현존은 뜻없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추락한다. “이제 범상히 살아가는 내게 그의 흔적은 없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혼자 있는 시간에 뜻없이 내뱉는 탄식처럼 짧고 습관적인 성교를 한다. 그러나 모든 죽은 사람들이, 그들에 대한 기억이 소멸한 뒤에도 그들이 남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유전자 속에 깃들이듯 그는 나의 사소한 몸짓과 습관 속에 남아 있다”.

‘그’의 죽음이 확인된 날 ‘나’는 거울을 본다. “왜 그랬는지 어떤 마음의 움직임이 나를 거울 앞으로 이끌었는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다가간 거울에 조각조각 균열된 얼굴이 비쳤다. 갑자기 눈에 띄는 주름살도, 처음의 놀람처럼 거울이 깨진 것도 아니었다. 오랜 세월 길들여진 관습과 관행이 한순간에 깨진 얼굴이었다. 아, 내 안의 비명이 새어나오기도 전에 깨진 얼굴은 스러지고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 나타났다.” 거울에 비치는 ‘균열된 얼굴’은 정체성의 위기에 빠진 ‘나’의 마음의 혼돈과 균열을 보여준다. 이는 “길들여진 관습과 관행” 밑에 억눌려 있는 여성적 현존에 대한 의혹들이 얇아진 껍질을 뚫고 나오면서 생긴 심리적 균열이다.

그렇다면 ‘옛우물’은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다시 어머니의 해산 날로 돌아가보자. ‘옛우물’은 어머니의 마지막 해산 날 정화수 대접에 담을 물을 길어오는 곳이다. 원형 상징 체계에서 물은 생명력과 정화력의 표상이다. 양수 · 침 · 피 · 정액 등은 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것은 모두 생명과 바로 이어지는 액체다. 생명의 근원인 깨끗한 물을 샘솟게 하고 그것을 감싸 안고 있는 우물은 여성적 창조와 생산의 근원에 대한 완벽한 상징이다.

소멸에 대한 예감을 “어찌해 볼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폐경기 중년 여자의 의식 위로 중첩되며 나타나는 그 모든 죽음의 잔상들을 제압하며, 어느 순간 ‘옛우물’에서 산다는 전설의 ‘금빛 잉어’가 찬란한 빛을 뿌리며 그 존재를 드러낸다. ‘금빛 잉어’는 여성성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불멸의 생명력이다. ‘금빛 잉어’가 나타나는 순간 이 작품은 실제적 · 현재적 공간에서 환상적 · 신화적 공간으로 옮아간다.

작가가 즐겨 그리던 거울의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 충만과 고갈, 삶과 죽음의 양면을 동시에 비추는 우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비록 그 우물은 이미 소녀 시절에 메워지고 없지만, 그 때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금빛 잉어를 향한 동경과 꿈은 수십 년이 지나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강렬한 암시는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오정희는 같은 해 신작 소설 「옛우물」과 자선 소설을 한데 묶은 『옛우물』을 ‘청아출판사’에서 펴낸다. 이즈음 그는 10년 가까이 살던 춘천의 스무 평짜리 아파트에서 서른 평짜리 아파트로 늘려 이사하며, 비로소 자신만의 서재를 갖게 된다. 자신의 서재가 생긴 작가는 한결 안정을 찾고, 이런 안정된 느낌 속에서 써낸 소설 「새」 등을 1995년에 내놓는다.

인간의 근원적 존재상인 허무를 보아버린 이의 전율과 공포를 세밀하게 그려온 작가는 ‘이상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내가 문학에서 나를 아낀다면 그것은 나를 아끼는 게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언어를 통해, 그러나 결코 언어에 취함이 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문학에 임할 것을 다짐한 대로 오정희는 소설 쓰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보상을 바랄 수 없는 짝사랑, 지독한 연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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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 김윤식 · 정호웅, 『한국 소설사』, 예하, 1993
  • ・ 김치수, 「오정희론 ― 삶의 양면성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한국 현대 작가 연구』, 문학사상사, 1993
  • ・ 오생근, 「오정희 문학론 ― 허구적 삶과 비관적 인식」, 『야회』 해설 · 연보, 나남, 1990
  • ・ 정호웅, 「생명의 능동」, 『저녁의 게임』 해설 · 연보, 동아출판사, 1995
  • ・ 김혜순, 「여성적 정체성을 향하여」, 『옛우물』 해설 · 연보, 청아출판사, 1994
  • ・ 우찬제, 「‘텅 빈 충만’, 그 여성적 넋의 노래」, 『오정희 문학 앨범』, 웅진출판사, 1995
  • ・ 오정희, 「소설쓰기, 소설짓기」, 『오정희 문학 앨범』, 웅진출판사, 1995
  • ・ 「오정희 특집」, 『작가세계』 1995 여름

장석주 집필자 소개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고려원’의 편집장을 거쳐 ‘청하’ 출판사를 설립해 13년 동안 편집자 겸 발행인으로 일했다. 그 뒤 동덕여..펼쳐보기

출처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 저자장석주 | cp명시공사 도서 소개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한국사의 큰 흐름과 한국인의 생활사, 문화사의 궤적을 함께 추적한다. 20세기를 연도별로 나눠 매년 그해에 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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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오정희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장석주,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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