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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기남북교향악단 합동연주회
분단 후 첫 남북 교향악단 합동연주회를 가진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 공연이 지난 6월 22일 그 막을 내렸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남측 KBS교향악단과의 두번째 합동연주회로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이로써 6월 18일 서울을 방문, 여러 차례의 리허설을 거쳐 20일 오후 7시30분 첫 막을 올린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 공연은 이날까지 모두 네 차례의 단독 또는 합동연주회로 공식 공연일정이 마무리됐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은 이날 공연에서 전날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과의 첫 남북 교향악단 합동연주회에서 연출했던 남북 대화합의 분위기를 재연했다.
또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 그리고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부처 장관 내외 등 1천7백여 객석을 가득 메운 남측 초청 관객들은 이들의 공연에 환호와 열렬한 박수로 보답했다.
합동연주회에선 부산시향 상임지휘자 곽 승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이 먼저 무대에 나와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로 서막을 연 뒤 북측 바이올리니스트 정현희가 협연자로 나선 박민혁 작곡의 바이올린협주곡 ‘사향가’를 멋진 앙상블로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또 남측 소프라노 조수미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중 ‘아 그이였던가’를, 한국 출신의 세계 정상급 첼리스트 장한나는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각각 협연, 관객들의 박수를 끌어냈다.
감동의 무대는 KBS교향악단으로부터 바통을 건네 받은 김병화 지휘의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으로 이어졌다. 북측 교향악단은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에 이어 남성고음(테너) 리영욱의 독창인 조령출의 ‘압록강 2천리’, 남성저음 허광수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돈 바질리오의 아리아 등 북한 클래식의 진수를 선보였다.
이어 장한나가 협연자로 나선 차이코프스키의 야상곡으로 무르익은 무대는 남과 북을 대표하는 조수미와 리영욱이 함께 노래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로 그 절정을 이뤘으며, 이들은 객석의 계속된 환호와 박수에 축배의 노래 하이라이트로 보답했다.
특히 피날레 무대에선 손에 손을 잡고 무대에 나온 조선국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의 남북 합동 연주단 70여명이 민족 정서가 흠뻑 담긴 관현악 ‘아리랑’으로 음악을 통한 남북 화합의 전주곡을 울리기도 했다.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 2시간 가량 진행된 음악회가 끝난 뒤에도 객석에선 기립박수와 앙코르, 브라보 연호가 한동안 그칠 줄 몰랐으며, 뒤 이어 마련된 앙코르 무대에선 남북 교향악단의 ‘고향의 봄’ 연주에 맞춰 관객들이 노래를 합창하는 ‘하나됨’을 연출했다.
이후 무대와 객석 어딘가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흘러 나오자 무대에서 손을 맞잡고 있던 남북 연주자들과 자리에서 일어선 관객들이 한 목소리로 따라 부르는 ‘통일의 대합창’을 펼치기도 했다.
이날 연주회는 KBS-1TV와 제1FM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으며, 20일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첫 단독공연은 23일 오후 11시 30분 KBS-1TV로 녹화방송된다.
한편 서울 공연일정을 모두 마친 조선국립교향악단은 23일 오전 공연 성과나 향후 계획 등과 관련, 기자회견을 가진 데 이어 서울시내 고궁과 국립국악원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지를 견학한다.
또 이날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의 환송만찬을 끝으로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뒤 24일 오전 북으로 돌아간다.
한반도 전체에 남북 통일과 화합을 위한 전주곡으로 울려퍼진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이 6월 22일 KBS홀에서 남북 음악인과 관객들의 대합창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그 막을 내렸다.
사흘간 네 차례 공연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이번 서울공연은 문화예술 분야가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고 오랜 분단으로 이질화된 남북 화합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선봉장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로서 남과 북 전체를 동시에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 상봉에 이어 문화예술 분야가 남북간 교류의 두번째 순서를 차지했다는 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정상회담 직전 남북간 화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있어서도 다름 아닌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 공연같이 문화예술계가 큰 일익을 담당했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같은 역할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이번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 공연은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여줬던 ‘감동의 무대’, ‘화합의 무대’를 재연, 그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연전 다소 서먹서먹하던 남북 연주자들은 어느새 한 몸, 한 마음이 돼 멋들어진 앙상블을 일궈냈으며, 공연이 끝난 뒤에는 손을 맞잡거나 서로의 몸을 얼싸 안는 등 남과 북은 ‘한 민족 한 핏줄’을 재확인했다.
북한의 클래식에 대해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객석을 차지했던 남측 관객들 또한 전통 악기의 리듬이 녹아 있고 민족적 정서를 흠뻑 담은 북측의 음악에 어느덧 동화된 듯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보답하는 ‘하나됨’을 연출하기도 했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은 이와 함께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남기고 있다. 전체적으로 중후하고 풍부한 사운드에 현악기와 관악기의 적절한 균형, 지휘자와 단원간의 일체감, 그리고 진지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연주는 북한의 음악 수준에 대해 상당수가 갖고 있던 의구심을 말끔히 씻기에 충분했다.
또 작품에 있어서는 ‘아리랑’이나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같이 관객들의 귀에 익숙한 민족적 정서를 담은 리듬에 태평소를 개량한 장새납과 개량 대금인 저대 등 전통 악기들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서양악기들과 융화되는 관현악곡들은 남측의 음악에도 좋은 귀감이 될 만하다.
“이번 음악회가 민족의 통일과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전주곡이 됐으면 합니다.”
조선국립교향악단의 김병화 상임지휘자가 서울 도착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 밝힌 말처럼 이번 공연이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남북의 화합과 통일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한반도 전체에 메아리지게 되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다.
월북음악인 30명 확인
대중가요 종사자를 포함, 해방과 6.25를 전후해 월북한 음악인은 30명선인 것으로 집계됐다.
평양에서 60년대 이후 발행된 조선예술, 조선예술 등 문화관련 잡지를 종합해 보면 작곡가는 이면상, 이건우, 안기영, 김순남 등이고 기악을 전공한 음악인은 문학규, 박현숙, 이인형, 이정언 등이다.
또 국악인으로는 안기옥, 공기남, 조상선, 임소향, 박동실, 정남희, 김진명 등이고 대중가수 및 작사자로는 이규남, 조영출, 이정구, 이영학, 박세영 등이 월북했다.
해방전에는 시인도 대중가요의 가사를 필명으로 많이 썼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세영과 조영출이 꼽히고 있다.
이들은 고령으로 지금은 거의 사망했거나 활동을 중단한 상태인데 작곡가로는 이면상이, 작사자로는 조영출과 박세영이, 국악인으로는 김진명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작곡가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면상은 지난 89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 최고의 작곡가로 대접 받았고 ‘꽃신’, ‘눈이 내린다’, ‘봉화산 기슭’, ‘우리 자랑 이만저만 아니라오’등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눈이 내린다’는 장중한 분위기로 인해 만수대예술단에서 무용배경음악과 기악곡 등으로 편곡됐으며 현재도 북한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조영출은 너무나 유명한 대중가요 작사자로 ‘조명암’ 등의 필명을 사용했다. ‘감격시대’, ‘청춘일기’, ‘울며 헤진 부산항’, ‘낙화류수’, ‘서귀포 70리’, ‘집없는 천사’, ‘알뜰한 당신’, ‘고향생각’ 등이 해방전 그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들이며 북한에서는 ‘얼룩소야 어서 가자’, ‘어랑타령’, ‘해당화’, ‘모란봉’, ‘천하제일 평양일세’ 등을 작사했다.
조영출은 93년 5월 사망했고 국립민족예술극장 총장, 문화성 부상,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박세영은 ‘북한 애국가’를 작사한 시인으로, 북한에서는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와 더불어 영생하는 시인”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46년 여름 북한으로 넘어갔고 월북 직후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북한의 애국가를 창작했다.
이후 ‘해변의 처녀’, ‘밀림의 력사’, ‘나팔수’, ‘귀국동포환영곡’ 등을 발표했고 지난 89년 2월 사망했다.
안기옥, 박동실, 정남희, 조상선, 공기남, 임소향, 최옥삼, 김진명 등은 모두 북한에서 ‘민족음악’(국악)을 발전시킨 공로자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서도소리의 명창 김진명은 지난 97년 사망할때까지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국악인을 양성, 북한 ‘민족음악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다.
사망 당시 북한 문화예술부(현 문화성)와 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에서는 공동명의로 발표한 부고에서 “동지(김진명)는 비록 사망했으나 주체적 음악예술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는 길이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부고는 이어 “그는 당의 주체문예사상을 높이 받들고 ‘강건너 마을에 새 노래 들려온다’를 비롯한 여러 편의 창극과 민요, ‘만경대의 봄’, ‘모란봉’, ‘바다의 노래’, ‘얼룩소야 어서 가자’ 등 수많은 민요를 창작했으며 후비육성과 민족음악연구사업에 크게 공헌했다”고 전했다.
1913년생인 김진명은 55년 8월부터 국립민족예술극장 배우로 활동해오다 59년과 65년에 공훈배우와 인민배우 칭호를 각각 받았다.
가수 이규남과 왕선아는 북한에서 ‘최영감네 평양구경’, ‘사회주의 락원일세’등을 불렀다.
한편 월북음악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들로 평가되는 김순남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북한에서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해방전후 가장 뛰어난 민족음악가로 꼽히는 김순남은 지난 48년 월북한 뒤 53년 남로당 숙청 당시 함께 숙청돼 어렵게 살아가다 86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곡 ‘진달래꽃’과 ‘산유화’ 등의 작품을 남겼다.
안기영은 북한에서 가곡 ‘마의 태자’, ‘그리운 강남’및 ‘콩쥐 팥쥐’, ‘견우직녀’, ‘은하수’등의 가극을 창작하면서 ‘민요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그와함께 월북한 딸 안남식은 현재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편 기악을 전공한 문학규, 박현숙, 이인형, 이정언 등의 활동 내용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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