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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조각 작업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야당이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기형 내각’으로 출발, 일부 각료가 투기의혹 등으로 낙마한 데 이어 ‘쇠고기 파동’이라는 복병을 만나 107일 만에 내각 총사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이 대통령이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조각 작업에 공식 돌입한 것은 취임식을 약 한달 앞둔 2008년 1월 27일. 이후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당시 당선인 비서실장이었던 임태희 의원,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 등의 주도로 20일 만인 2월 18일 우여곡절 끝에 초대 내각 명단이 확정됐으나 파행은 계속됐다.
특히 새 정부 출범 닷새 전까지 당시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 대치하면서 국회 인사청문회가 늦어지는 바람에 이 대통령은 일부 참여정부 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더욱이 무려 5천여 명을 상대로 스크린 작업을 벌였다는 인사검증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조각 명단이 발표된 후 이른바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권 인맥)’, ‘강부자(강남 부자)’, ‘S라인(서울시청 인맥)’ 등의 논란이 시작됐고, 결국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가 이 대통령의 취임식 전날 자진사퇴하면서 새 정부의 초대 내각은 일찌감치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가 야당의 압력에 밀려 사퇴했으며, 한승수 총리의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어렵게 통과했으나 장관 인사청문회도 야당의 정치공세가 이어지면서 파행을 거듭했다.
어렵사리 체제를 정비하고 이 대통령에 대한 부처 업무보고가 이뤄져 안정 국면으로 접어드는가 했던 내각은 ‘쇠고기 파동’이라는 뜻하지 않던 암초에 부닥치면서 또다시 급격하게 흔들렸다.
2008년 4월 말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논란이 불거지면서 ‘촛불집회’가 시작됐고, 이는 한나라당의 ‘재보선 불패신화’까지 무너뜨리면서 결국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이어 내각 총사퇴라는 국정 위기상황까지 초래했다.
결국 이 대통령은 7월 7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안병만 전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장태평 전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 전재희 한나라당 의원을 각각 내정하는 등 소폭 개각을 단행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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