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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군칙 禹君則조선후기 홍경래의 난 당시에 모사로 참여한 주모자. 풍수복설가(風水卜說家).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도 태천현 출신. 가산군 동북면에 살면서 풍수·복설을 생업으로 삼았다. 당시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인 신분 제도의 질곡(桎梏),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횡포 및 관리들의 가렴주구로 피폐한 민생을 구하려는 뜻을 품...
- 시대 :
- 조선
- 출생 :
- 1776년(영조 52)
- 사망 :
- 1812년(순조 12)
- 유형 :
- 인물
- 관련 사건 :
- 홍경래의 난
- 직업 :
- 주모자, 풍수복설가(風水卜說家)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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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 지역 차별 철폐를 주장한 피지배층의 반란없다’, ‘서울 사대부는 서북인과 혼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보듯, 지역 차별에 대한 불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항쟁은 홍경래를 중심으로 우군칙(禹君則), 이희저(李禧著), 김창시(金昌始) 등이 주도했다. 용강 출신인 홍경래는 1798년 과거에 낙방하자, 평안도 출신에 대한 차별 때문인 것으로 여기고...
- 시대 :
- 18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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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洪景來등으로 일반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체험하면서 사회의 모순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가산에서 풍수로 부호의 집을 드나들던 우군칙(禹君則)을 만나 뜻이 통하자 반란을 모의하였다. 그는 시국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을 이용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당시 향촌에서 부를 축적해 하층...
- 시대 :
- 조선
- 출생 :
- 1771년(영조 47)
- 사망 :
- 1812년(순조 12)
- 유형 :
- 인물
- 직업 :
- 주모자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 본관 :
- 남양(南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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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의 발생과 경과몰락양반인 홍경래는 토호인 우군칙(禹君則)·김창시(金昌始)와 대규모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이희저(李禧箸) 등을 농민군 최고지휘부로 삼고, 가산군(嘉山郡) 다복동에 근거를 두면서 농민전쟁을 준비했다. 홍경래는 이들 세 사람과 함께 우선 평안도민의 정치참여배제 등 지역차별정책에 불만이 많은 몰락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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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지역 차별에 저항한 민중의 넋따라 집터나 묏자리를 잡아 주는 사람) 노릇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에 박천의 청룡사에서 자신보다 다섯 살 아래의 서자 출신인 우군칙(禹君則)을 만났다. 두 청년은 뜻이 맞아 현실의 비리를 지적하며 돌아가는 나라의 정세에 대해 토론했다. 그러던 중에 여진 땅에서 마적(말을 타고 떼 지어...
- 출생 :
- 1780년
- 사망 :
- 18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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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洪景來떠도는 동안 지배층의 부패상과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체험하면서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게 되었다. 유랑을 시작하면서 그는 청룡사에서 우군칙(禹君則)을 만나게 되었다. 우군칙은 명문가 출신이지만 서얼로 태어나 집을 나와 떠돌며 지관으로 명성을 얻던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부당한 사회 구조를 논하는 가운데...
- 출생 :
- 1771년
- 사망 :
- 18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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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 발생여겨 차별하는 한 희망이 없다고 여긴 홍경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결심을 하고 전국 각지를 다니며 사정을 살피고 사람을 모았다. 홍경래 주변에는 상인인 우군칙, 양반 가문 출신 지식인 김사용, 노비 출신 부호로서 무과에 급제한 이희저, 평민 출신 장사인 홍총각 등 다양한 군상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12월 난을...
- 시대 :
- 1811년
- 국가/대륙 :
-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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