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
이남 복선군(福善君), 李楠개설 할아버지는 인조이고, 아버지는 인평대군(麟坪大君)이다. 복선군(福善君)에 봉하여졌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사은사·동지사·변무사 등으로 여러 번 청나라에 다녀왔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 때 김석주(金錫胄)·김익훈(金益勳) 등이 허적(許積)의 서자인 허견(許堅)이 종실인 복창군(福昌君)·복선군...
- 시대 :
- 조선
- 출생 :
- 미상
- 사망 :
- 1680년(숙종 6)
- 경력 :
- 사은사, 동지사, 변무사
- 유형 :
- 인물
- 직업 :
- 왕족, 종실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
서인의 집권, 경신환국 경신사화(庚申士禍), 庚申換局정계에서 대거 축출되는 와중에 남인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고변서 한 장이 숙종에게 제출되었다. 정원로와 강만철의 고변으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뒤에 복선군이 신 정원로의 집에 이르렀고 허견이 또 이르렀으며, 지난 여름에 허견이 글을 보내어 복선군의 집에 오게 하고, 또 청지기[廳直] 점동(點同)이라는 자로...
-
왕이 주도한 정국의 전환, 경신환국 庚申換局있던 터여서, 이 일을 계기로 서인들을 대거 요직에 불러들였다. 며칠 후에는 병조판서 김석주의 사주를 받은 정원로(鄭元老) 등이 “허적의 서자 견(堅)이 복선군(福善君)을 왕으로 삼으려고 그 형제들과 역모를 도모하고 있다.”라고 고변했다. 허견 등이 전시사령부인 도체찰사부 소속 경기 이천 둔군(屯軍)에게 매일...
- 시대 :
- 1680년
-
허견 許堅수천 그루의 재목을 도벌하여 집을 짓는다든가, 남의 처를 약탈하는 행위를 하여 비난을 받았는데, 인조의 손자이며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아들인 복선군(福善君)과 내왕이 있음을 기화로 하여, 그가 역모를 꾀한다고 종척인 김석주(金錫胄) 등으로부터 고변당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4월 12일 군기시(軍器寺) 앞길에서...
- 시대 :
- 조선
- 유형 :
- 인물/전통 인물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
저경궁 인빈 김씨의 사당, 儲慶宮인조와 인열왕후 소생인 인평대군은 복녕 · 복창 · 복선 · 복평군을 두었는데, 이 사건 전에 복녕군은 이미 죽었다. 1680년 4월 정원로가 허견 등이 복선군을 옹위하고자 한다는 글을 올렸다. “허견이 말하기를, ‘주상의 춘추가 젊으신데 몸이 자주 편찮으시고 또 세자가 없으니, 만약 불행한 일이 있으면 대감이...
- 위치 :
- 남부 호현방(조선시대)
- 소재지 :
- 중구 남대문로 39 한국은행
-
-
김석익 여량(汝兩), 金錫翼생애 및 활동사항 23세 때 빙고별검(氷庫別檢)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680년(숙종 6)에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아들 복창군(福昌君)과 복선군(福善君), 그리고 허적(許積)의 서자 허견(許堅) 등이 역모를 꾀하였다 하여 복선군과 허견 등은 주살되고 복창군과 허적 등은 사사(賜死)되었는데, 이 때...
- 시대 :
- 조선
- 출생 :
- 미상
- 사망 :
- 1686년(숙종 12)
- 경력 :
- 한성좌윤
- 유형 :
- 인물
- 직업 :
- 문신
- 성별 :
- 남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 본관 :
- 청풍(淸風)
-
홍수의 변 紅袖의 變하였고, 서인들은 남인들을 비판하여 당쟁이 격화되었다. 역사적 배경 복창군 이정과 복평군 이연은 효종의 아우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의 아들로서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楠)과 함께 흔히 ‘삼복(三福)’으로 불리었다. 그들은 효종과 현종의 사랑을 받아 어려서부터 궁궐에서 자라다시피 하였으므로, 장성한 후에도...
- 시대 :
- 조선 후기
- 유형 :
- 사건
- 분야 :
- 역사/조선시대사
도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